<눈사람 레코드>(57) See Emily Play /  Pink Floy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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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lics / Pink Floyd (1971)
‘그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김지희의 소설 제목이다. 그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소설은 이미지로 점철된 소설이다. 서사성이 약하고 서정성이 짙다. 한유주의 소설 ‘달로’가 있긴 했지만 느낌만으로 쓴 듯한 소설이 주는 힘은 새로우면서 강했다. ‘그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는 한유주가 말하는 ‘지옥은 어디일까’ 같은 서정의 지옥을 보여준다. 건조하고 까끌까끌하다. 소설에도 맛이 있다면 이 작품의 맛은 텁텁한 무 맛 같다. 어렸을 때 무 서리를 한 적이 있다. 그때는 무가 참 달았는데 어른이 되어 먹는 무는 언제나 아무 맛도 없다. 소설은 음악에 기대고 있다. 그 음악은 ‘Kansas’의 ‘Dust In The Wind’. ‘Camel’의 ‘Long Goodbyes’가 후속곡으로 붙을 것 같다. 나는 그때 그 소설을 읽으며 ‘Pink Floyd’의 ‘Biding My Time’을 떠올렸다. 소설과 함께 음악도 기억 나는 것이 신비롭다. 기이하게도 이 소설을 읽으며 BGM으로 노래를 선곡하면 소설의 느낌이 그 음악과 어울려 선곡표 따라 다르게 읽히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이 소설을 다시 읽으며 ‘David Bowie’의 ‘The Man Who Sold The World’을 반복듣기로 들었다. 그러면 소설은 또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로는 분명 아닌데 큐브 같다. 그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소설 이전에 음악이 있었다. 나는 그 음악에 기대어 시를 쓴다. 상가리에서 만난 안민승 화가는 음악에 기대어 그림을 그린다.(화가 안민승을 만난 얘기는 57회에 이어짐) 안타까운 것은 김지희 소설가의 후속작을 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신춘문예로 나왔지만 이 소설 같은 소설을 또 볼 수 있는 호강을 누리게 해주지 않는 소설가가 야속하다. 소설은 사막화를 예언했는데 모래 대신 전염병이 돌고 있다./현택훈(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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