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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16) 독 하나 빚고 싶네 / 김종호


별빛 내리는 강기슭
오래 곰삭은 흙으로
허물없이 쓰다 말
독 하나 빚고 싶네
청자 아니면 어떠랴
백자 아닌들 어쩌랴
하늘빛 옥색으로 설레지 않겠네
그리 높이 앉아서 고독하지 않겠네
종일 구시렁거리는 마누라
눈물 몇 방울 버무려서
김치도, 된장도 깊은 맛이 우러나는 것
가끔은 텁텁한 농주도 담가서
시답지 않은 세상 거나해서
콧등 시큰하게 한 자락 부르겠네
무정한 마누라 손때 묻어 정분나고
젖은 눈빛 배어 살가운 독
시름 다독이며 살다보면
꿈같은 한 세상 꿈만 같겠네

/ 독 하나 빚고 싶네 - 김종호

김종호 =『문예사조』로 등단. 시집으로 『뻐꾸기 울고 있다』, 『설산에 오르다』, 『순례자』,『소실점』등이 있음. 

모름지기 독을 빚는 일이란 흙과 물과 불의 조화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낮이면 햇빛에 몸을 말리고 밤이면 달빛에 몸을 맡깁니다. 거기에다 건듯건듯 바람이 불어 독의 살결을 어루만지며 지나갑니다.
하여 독을 빚는 일이란 인간과 자연의 만남이며 소통입니다. 한 치의 삿된 욕망도 용서하지 않는 인간에 대한 자연의 가르침입니다.
시인은 독을 빚고 싶다 합니다. 청자도 아닌, 백자도 아닌, 종일 구시렁거리는 마누라 눈물 몇 방울 버무려 독을 빚고 싶다 합니다. 그 독에 김치도 담고, 된장도 담고 싶다 합니다.
가끔은 농주도 담가 콧등 시큰한 노래도 한 자락 부르겠다 합니다.
그런 꿈같은 세상에 저도 함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김수열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김종호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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