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17) 우영팟 공양 / 김세홍


등 굽은 팔순 노파가 사는

키 낮은 슬레이트 지붕 아래

밤낮으로 파수를 보는

옥수수, 상추, 깻잎, 쪽파들이 서 있는 우영팟

가끔, 앉은뱅이 양은밥상 위에 햇살 여문

공양으로 열반하여

이슬 사리를 남기기도 하는

성긴 울타리를

문패로 대신한 집

/ 우영팟 공양 - 김세홍


김세홍 : 『한라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소설 무렵』이 있음. 

한 폭의 정물을 보는 듯합니다.
시인은 정물 밖에서 정물 안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키 낮은 슬레이트 지붕 아래 등 굽은 팔순 할머니가 살고 있습니다.
혼자인 듯한 할머니는 외롭지만 외롭지 않습니다.
그 우영팟에는 할머니의 숨길로 싹을 틔우고 할머니의 손길로 푸르러진 옥수수며 상추며 깻잎이며 쪽파들이 해와 달을 벗삼아 할머니의 곁을 지키고 있으니까요.
어디 그뿐인가요? 그네들은 때가 되면 어김없이 앉은뱅이 양은밥상에 올라 할머니의 말벗이 되고 온몸이 됩니다.
성긴 울타리가 문패를 대신하는 그 집,
지금도 안녕하신지, 성긴 울타리만 남은 건 아닌지 안부를 묻기가 두렵습니다. / 김세홍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김세홍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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