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극명한 시각차 드러내..."메르스 청정지역 유지에 지혜 모아야"

교육당국이 메르스 확진자가 제주 여행 기간에 거쳐간 호텔, 관광지 직원 자녀들에게 등교 자제를 요청한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비교육적 처사라는 비판과 동시에 선제적 대응이라는 격려가 나오는 등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비교적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온 원희룡 지사와 이석문 교육감이 메르스 사태로 맞붙은 모양새가 됐다.

논란은 22일 오전 '메르스 대응 및 경제위기 극복 간부회의'를 주재한 원 지사의 발언에서 촉발됐다. 

원 지사는 "일반 행정에서도 불필요한 피해를 배려하면서 신중하게 처리하는데 교육현장에서 일부 학부모들의 성화도 있었겠지만 비교육적 조치를 했다'며 "도정은 이 사태를 중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 지사는 특히 "아무런 근거없이 영업중지 협조 업체들을 중심으로 직원 자녀라는 이유로 등교 거부를 요구한 일부 학교들이 있다"며 "어린 학생들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주는 경우가 일부 있었다"고 지적했다. '등교 거부 요구'는 등교 자제 요청(?)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원 지사가 공식 석상에서 이처럼 격앙된 반응을 보인 것은 이례적이다. '아무런 근거없이' '비교육적 조치'라는 표현도 눈에 띈다. 이번 메르스 정국에서 '선제적 대응'으로 호평을 받았던 제주도교육청으로선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근거만 따지면 교육당국이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도 일리는 있다.   

제주도교육청이 격리를 요청한 대상은 메르스 양성반응자도, 확진자도, 밀접 접촉자도 아니다. 엄밀히 말해 격리대상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22일 현재 도교육청이 자체 격리 요청한 학생과 교직원은 285명.  유치원 16곳, 초등학교 33곳, 중학교 17곳, 고등학교 21곳에 다니는 학생 또는 교직원이다.

1명을 제외한 284명은 제주를 여행한 뒤 서울에서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141번 환자가 다녀간 신라호텔과 식당, 관광지와 동선이 겹치거나 경유업체 직원의 자녀라는 이유로 격리 대상자로 분류됐다.

도교육청은 이들에게 방역 당국이 최대 잠복기로 설정한 2주에다 48시간을 더해 자체 격리를 요청했다.

도교육청은 이같은 조치가 잠복기가 지난 뒤 발병할 수도 있는 만일의 상황에 철저하기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 22일 오전 '메르스 대응 및 경제위기 극복회의'에서 원희룡 지사가 교육당국의 비교육적 행태에 대해 지적했다. 제주도청 사진 제공.

하지만 원 지사의 발언으로 교육청의 앞선(?) 조치가 한순간에 도마에 오르게 됐다.

이석문 교육감은 원 지사와 전혀 다른 시각을 드러냈다.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차라리 과잉 대응하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이 교육감은 오전10시 기획조정회의에서 “최근 제주를 다녀간 메르스 141번 환자로 인해 도민사회에 불안감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진정세에 들어섰다고 예측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며 “7월 말까지는 메르스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단 1%의 경계도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메르스 만큼은 과잉대응이 더 좋다. 조금의 문제 소지가 발견되면 신속하게 차단해야 한다"고 거듭 철저한 경계태세를 강조했다.

제주도정과 교육당국의 수장이 등교 자제 요청에 대한 상반된 입장을 드러내자 온라인에서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전국적으로 교육당국이 자체적으로 정부 차원의 격리 대상자가 아님에도 격리를 요청한 곳은 제주 뿐이지만, 비슷한 사례는 있다. 

최근 경기도 수원의 한 사립유치원이 메르스 집중치료병원 의료진의 자녀라는 이유로 원아를 당분간 등원시키지 말아달라고 요청해 학습권 침해 논란이 일었다.

경기도교육청은 해당 원아가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해당 유치원에 권고했고, 결국 유치원 학부모운영위원회는 회의를 통해 등원을 결정했다. 

▲ 이석문 교육감이 지난 8일 메르스와 관련해 제주도교육청의 선제 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교육청의 등교 자제 요청이 막무가내식은 아니다.

격리 대상 학생들에게 격리 기간에 숙제를 내 해당 학생들이 수업에 뒤처지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다는게 교육청의 설명이다. 

또 메르스 사태가 진정되면 도교육청 소속 정신과 전문의를 투입, 격리됐던 학생들을 일일이 상담한 뒤 합당한 조치를 취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혹시 모를 따돌림에 대응한다는 취지에서다.

등교 자제 요청이 비교육적 처사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의견은 보건당국 내부에서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보건전문가 A씨는 ‘전염병’ 대응과 관련해 ‘과잉’이라는 단어는 적절치 못하다고 딱 잘라 말했다. 한번 퍼지면 걷잡을 수 없는게 전염병이므로 모든 방안을 동원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논리다.

그는 “메르스는 신종 전염병이기 때문에 별 다른 매뉴얼이 없다. 하지만 정부에서 1군 전염병 체제로 대응하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콜레라, 장티푸스, 세균성 이질 등과 함께 1군 전염병 매뉴얼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 1군 전염병은 전염 속도가 빠른 질병이 대부분”이라며 “결핵이나 한센병 등 질병은 5군이다. 1군 전염병 메르스 대응에 ‘과잉’이라는 단어는 옳지 못한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보건 계열 종사자로서 메르스 여파로 경제에 타격이 심하다고 하지만, 무엇보다 도민 안전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학생들이 메르스로 인한 격리가 끝나고 등교 했을 때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사후 대책을 주문했다.

▲ 제주국제공항에 설치된 메르스 대응 발열감지기.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2일 오후 4시를 기해 141번 환자가 제주를 떠난 지 만 2주가 지났다. 방역당국의 판단대로라면 최대 잠복기(14일)가 지났기 때문에 141번 환자에게 감염된 제주도민은 없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르다는게 중론이다.  

171번 확진자(60)는 정부가 발표한 잠복기간 보다 10일이나 흐른 23일 째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22일에는 격리 조치가 해제된 후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가 발생했다는 새로운 소식도 들렸다.

하루 최대 4만명의 관광객이 찾는 제주. 141번 환자처럼 관광객이 메르스 잠복기에 제주를 여행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과잉 대응 여부를 놓고 갑론을박 하기에 앞서 끝까지 청정 제주를 유지하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한다는 지적이 도민들 사이에서 설득력을 얻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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