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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18) 안경 끼고 잠든 아내 곁에 / 문충성


안경 끼고 잠든 아내 곁에

고양이처럼 웅크려 잔다

안경 끼고 자면 잠속에서도

잘 보이는 것일까 저승까지도

그래서 알 수 없는 헛소리

코를 골고 가르랑가르랑

그 곁에서 나는 아내

머리칼 냄새에 취해

고양이 잠을 잔다 이따금

코 고는 소리로 열리는

아내의 잠은 가난하지만

눈물겨워라 내 잠속까지

비집어들어 나를 흔든다

안경 끼고 자면 안 보이던

우리들 사랑도 보이는가

사십 년 동안 쌓아온 새하얀

우리들의 한숨과 빈손


문충성 :『문학과지성』으로 등단. 시집으로 『제주바다』,『바닷가에서 보낸 한 철』, 『허물어버린 집』등이 있음. 편운문학상 수상.

사십 년을 넘도록 한 이불을 덮고 살아온 시인의 아내가 잠을 자고 있나 봅니다.
곤한 탓인지 미처 안경도 벗지 않은 채 가르랑가르랑 콧소리를 내면서 말입니다.
시인은 아내 곁에 고양이처럼 누워 생각에 잠깁니다.
안경을 끼고 자면 언젠가 함께 가야 할 저승도 보일는지요.
안경을 끼고 자면 지나온 우리들의 사랑도 보일는지요.
새하얀 우리들의 한숨과 빈손도 보일는지요.

아내의 머리칼 냄새에 취해 까무룩 잠이 든 고양이와
안경 낀 채 알 수 없는 헛소리를 하는 아내의 모습이 눈에 밟힙니다.
가르랑가르랑 야아옹야아옹 가르랑야아옹 가르랑야아옹. / 김수열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문충성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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