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아카데미-나침반교실](5) 고병헌 성공회대 교수 “자녀에게 존재로서 감동시켜라" 

‘고전’이란 오랫동안 많은 사람에게 널리 읽히고 모범이 될 만한 문학이나 예술 작품을 말한다. 고전에는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의 지혜가 담겼다. 그 지혜는 어디서 나올까. 개인의 경험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많은 경험을 통해 지혜를 습득한 어른이 자녀에게 ‘고전’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무릇 부모란 자녀의 거울과 같은 존재로서 "존재로서 감동시키라"는 고병헌 성공회대학교 교양학부 교수의 조언이다.

제주도교육청(교육감 이석문)과 [제주의소리]가 공동주최한 ‘2015 부모아카데미 - 나침반 교실’이 14일 오전 10시 제주벤처마루 10층 강당에서 열렸다.

성공회대 평생학습사회연구소장인 고 교수는 미국에서 교육학 석사를 취득했다. 이어 고려대학교에서 교육철학 및 교육사 박사 학위를 딴 평생교육과 교육 철학 분야의 권위자다.

이날 고 교수의 강연 주제는 ‘자녀교육의 희망은 부모의 삶 뒤에서 꽃피운다’. 성경에서 불교경전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을 종횡무진 넘나들며 120분 가까이 쉼표 한번 없이 열띤 강연을 토해내 참석한 부모들의 눈과 귀를 단박에 붙잡았다. 

“우리 다같이 생각해봐요. 자녀가 자신과 같은 삶을 살기 바라나요? 아니면 더 나은 삶을 살기 바라나요”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었을까. 수강자 모두 후자를 택했다.

“더 나은 삶이죠”

그러나, 우리는 자신보다 더 나은 삶을 자녀들이 살아주길 원하면서 지혜가 아닌 단순 지식쌓기를 자녀들에게 강요하고 있지는 않을까. 결국 자신과 같은 삶을 반복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한국 가정 교육의 모순이 되풀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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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열린 2015부모아카데미 <나침반 교실> 다섯번째 강연에 초청된 성공회대 교양학부 고병헌 교수.

◆ 같은 말의 반복, 자녀는 사랑으로 들을까? 짜증으로 들을까?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에게 같은 얘기를 자녀에게 2~3번 반복한다고 짜증이 난다고 말하겠죠. 그렇다면 여러분 어린 시절을 기억해봐요. 여러분의 부모가 같은 말을 계속 하면 기분이 어땠나요? ‘아, 내가 잘해야지’ 했나요? ‘아, 또 똑같은 말이구나’라며 짜증을 냈나요. 정답은 스스로 알 거예요”

재밌는 얘기에 미소를 짓던 수강자들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중요한 사실을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고 교수는 ‘카리스마’라는 단어를 강조했다.

기독교에서 쓰이기 시작한 카리스마는 하느님이 부여한 일시적 권능이라 설명할 수 있다. 카리스마에는 거역할 수 없는 힘이 있다.

고 교수는 “여러번 말하지 않아도 돼요. 카리스마 있게 자녀에게 한 번만 말해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모두 이해를 해요. 그 이상 넘어가면 그것은 ‘짜증’나는 말이 돼요”라고 말했다.

즉,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말을 할 때 ‘절실함’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 절실함이 부모의 권위를 지켜준다는 의미.

“우리나라에는 부모가 없이 모두 학(虐)부모만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이 어린 시절 힘들었던 경험이 있었는데, 자녀에게 똑같은 행동을 강요하죠. 스스로 불안함을 이기지 못해 자녀를 닦달해요. 다시 말할게요. 여러분이 만약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다면 지금 이룬 삶을 그대로 원할까요? 아니면 경제 등 측면에서 어렵더라도 좀 더 인간답게 살고 싶나요”

역시나 답은 후자였다. 뒤이어 던진 고 교수의 한 마디는 수강자들의 폐부를 정확히 찔렀다.

“‘새로운 삶’을 원하나요? 허나 우리 부모들 나이에서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 더 빠를 수도 있는 상황이에요. 그만큼 부모들은 역경을 거쳐 지금까지 왔죠. 그렇다면 우리 자녀들은 어떤가요? 다시 태어날 필요 없어요. 지금부터 하면 되니까요. 정말 ‘축복’이에요. 그런데 자녀가 하고 싶은 일, 인간답게 살고 싶은 것을 부모가 막는다는 생각은 안해봤나요?”

그의 말 뜻은 명확했다. 어린 시절 너무나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해 성인이 된 지금까지 마음 한 켠에 담아두는 대부분의 부모들.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그런 아쉬움을 간직하고, 부모가 됐지만, 자식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할 뿐이지, 정작 자녀가 하고 싶은 일을 진지하게 고민해주기는 커녕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는 것. 슬픈 얘기었다.

▲ 2015 부모아카데이 <나침반교실> 5회 강연에 참가한 부모들이 강의에 집중하고 있다. 
◆ 부모와 자녀는 소울메이트?

"자녀의 존재는 부모를 깨우치기 위함이다." 

난데없는(?) 고 교수의 말에 수강자들이 당황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은 수도 없이 들어 왔지만 그 내면에 깃든 의미를 곱씹어 보지 못한 결과다. 결국 자식이 부모의 스승일 수 있음을 간과 말라는 꼬집음이다.  

고 교수는 "우리 사회는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지나치게 미화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이라고 합니다다. 사회 현상을 봤을 때, 무조건적인 사랑이라 부를 수 있나요? 오히려 자녀가 부모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고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이어 고 교수는 돈을 빼앗고, 앵벌이하던 어떤 학생들의 실화를 예로 꺼냈다.

"학교를 그만둬 학생들의 돈을 뺏고, 앵벌이하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흔히들 '일진'이라 부르죠. 일반적인 시각으로 '못된' 아이들로 보이겠죠. 그들 부모를 찾아가 봤습니다. 경악했습니다. 그 부모에 비하면 오히려 아이들이 '착해' 보일 정도였습니다. 이후 그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려했어요. 아이들이 먼저 꺼낸 얘기가 뭔 줄 아나요? '검정고시를 보고 싶어요' 였어요.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던 아이들은 검정고시를 통과했어요. 검정고시를 통과하자 이 아이들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어요.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열심히 일했어요. 그렇게 첫 월급을 받고 하는 말은 저의 가슴을 후볐어요"

"선생님,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 죄송해요. 월급이 얼마 안되는 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받아보니...선생님, 첫 월급이니 부모님의 선물을 사야될 것 같아요. 그런데, 부모님 선물을 사면 남는 돈이 없을 것 같아요. 선생님께 선물을 드리지 못해 죄송해요"

한없이 부족한 부모였지만 그렇더라도 자신의 부모에 대한 자녀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느낀 순간이었다.

고 교수는 "우리는 정말 질긴 인연일 수 있어요. 전생에 부모, 자식 관계가 바뀌었을 수도 있고, 형제였을 수도 있고요. 또 다음 생에는 어떻게 이어질지 모르죠. 부모와 자녀는 질긴 끈으로 이어졌어요"라고 말했다.

부모들의 표정이 풀렸다. 자녀가 부모를 깨우친다는 의미를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즉, 자녀가 있어야 부모가 있다는 것. 그렇게 부모 역할을 배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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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부모아카데미 '나친반교실' 다섯번째 강연을 마친 성공회대 고병헌 교수(오른쪽)가 객석의 부모들과 자유로운 대화 형식으로 자녀교육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전하고 있다. "존재로서 감동시켜라" "자신은 부모의 소울메이트다"라는 등의 울림이 큰 메시지를 전해줬다. 왼쪽은 진행을 맡은 김봉현 [제주의소리] 편집부국장.

◆ 대나무에 마디가 있는 이유

고 교수는 ‘인간의 삶은 대나무와 같다’고 직언했다.

봄, 여름에 성장하는 대나무에 마디가 존재한다. 그 마디는 추운 겨울이 지나면 생겨난다. 마디가 없으면 오히려 대나무는 잘 부러진다. 힘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비와 바람을 견뎌내야만 더 건강하고, 멋있는 대나무로 자랄 수 있다. 인간의 삶처럼.

“요즘 학(虐)부모들은 자녀를 온실에 가두죠. 학교에 데려다 주고, 끝나면 데리러가고, 학원에 데려다주고, 운동시켜주고, 밥 차려주고..”

“자녀들은 비와 바람을 겪지 못하면서 성장을 해요. 언제까지 자녀를 온실에 가둬둘 수 있을까요? 언젠가 온실을 빠져나가 비와 바람을 처음 접했을 때 자녀들은 견뎌낼 수 있을까요? 자녀를 온실에 가둬두는 것이 정말 옳은 일일까요?”

계속되는 물음에 부모들은 더 이상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 없었다. 고 교수는 부모가 자녀의 징검다리가 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모진 풍파를 어떻게 견뎌야 하는지 부모가 가르쳐줘야 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모진 풍파를 견디는 방법. 어떻게 가르쳐줘야 할까.

고 교수는 “여러분이 자녀의 얼굴을 마주보면서 이럴 땐 저렇게, 저럴 땐 이렇게 라며 설명해줄 때와 풍파를 견뎌내는 모습을 직접 보여줄 때. 어떨 때 자녀가 더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자, 앞으로는 우리 자녀들에게 풍파를 어떻게 견디는지 몸소 보여주도록 함께 노력하죠”라고 말을 맺었다.

박수가 쏟아졌다. 잊고 지낸 존재로서 부모와 자녀의 의미를 되새기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강연이 끝난 뒤, 김봉현 [제주의소리] 편집부국장의 진행으로 고 교수와 참석자들이 묻고 답하는 ‘즉문즉답’ 토크콘서트가 이어졌다.
  
부모아카데미 <나침반 교실>은 아이들 교육에 가장 중요한 존재는 ‘부모’라는 관점에서 시작됐다. 부모의 인성지도와 대화법 등으로 자녀들에게 큰 역할이 된다는 의미다.

다음 강연은 오는 8월13일 오전 09시30분 제주벤처마루 10층 대강당에서 교육평론가인 이범 씨가 ‘교육 트렌드’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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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회대 고병헌 교수가 14일 열린 '2015 부모아카데미-나침반 교실'에서 '자녀교육의 희망은 부모의 삶 뒤에서 꽃 피운다'를 주제로 강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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