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21) 더하기의 시간과 빼기의 시간1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왜 일요일은 빨리 지나갈까?

토요일 특강을 하면서부터 강의가 하나 둘 늘어나더니 오후 다섯시 정도 되어야 끝이 납니다. 시험 보충이라도 있는 날에는 저녁에야 집으로 가지요. 그래서 요즘 제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토요일 저녁 시간입니다. 시간에는 이렇게 감정이 묻어 있습니다.

이 감수성이 시간에 대한 태도를 결정합니다. 사람은 감정에 크게 영향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감정적으로 느끼는 시간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이 살아가는 시간에 대해서 별 감정을 가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무의미한 시간이 될 것입니다.

반복적인 일상, 매일 풀어야 하는 문제지, 수험생들의 보충수업, 직장인들의 일상. 학생이고 어른이고 조금씩은 가지고 있는 허무함은 허송세월에 대한 안타까움도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시간 앞에 놓여 있죠.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시간 앞에 자신감이 없으면 생활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죠. <논어>에는 특히 ‘순간’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학문에 뜻을 둔다고 하면서도 옷차림과 음식에 신경을 쓴다면 말 섞을 만한 위인은 아니다.”(「이인」 편)라는 말처럼 한 순간을 살아도 뜻 깊게 사는 것은 삶에 대한 올바른 태도였습니다.

공자는 제자 중에서 특히 안회(顔回)를 사랑했습니다. 공자가 제자와 대화하는 모습을 가만히 관찰하면 제자의 삶과 인격, 관계가 반영되죠. 다른 제자들과 대화를 나눌 때, 또는 그 제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선생님의 느낌으로 말하지만 안회는 특별했습니다. 공자가 안회와 대화를 나누거나, 안회에 대해서 생각할 때는 심리상태가 변화하는 것을 <논어>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안회 스스로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같은 시간에 대해서 안회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일화를 살펴보겠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안회는 대단히 지혜롭구나! 달랑 물에 밥 말아먹고 몸뚱이를 뉘이기도 민망할 정도의 방에서 잔다면 누구나 우울할 수밖에 없을 텐데, 회에게는 그런 생활이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구나. 안회가 지혜롭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 <논어>, 옹야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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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기의 시간과 빼기의 시간

친구와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더하기의 시간과 빼기의 시간이 다르다는 걸 알았습니다. 친구는 하루에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아서 책 읽을 시간이 좀처럼 나지 않는다고 푸념했죠. 저는 책을 몸에 붙이고 다니면서 하루에 1분이나 5분의 틈을 파고들어 책을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1분, 5분이지만 점점 책 읽는 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죠.

요즘은 ‘틈새독서’라는 말을 쓰지만, 저는 이 말 안에 더하기의 시간과 빼기의 시간에 관한 지혜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루 24시간, 또는 일주일 정도의 칸을 종이에 만든 다음에 해야 할 시간을 빼보십시오. 하루 24시간이 금세 채워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빼기 시간입니다. 다시 처음의 시간표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하고 싶었던 것이나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시간들을 넣어 보십시오.

예컨대 저는 독서 시간이 너무 없어서 버스로 출근하는 날 하루 책 읽기나 아침 이른 시간에 글쓰기 등을 넣었습니다. 더하기의 시간은 구멍과 같습니다. 그 시간이 나에게 필요하다면 나의 시간표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습니다. 처음에는 조그만 크기였다가 점점 크기가 커집니다. 감정이 묻은 시간, 특히 자신이 사랑하는 시간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시간표에서 노는 시간이 빠진다는 걸 상상할 수 있을까요?

아이들을 관찰한 결과 어떤 시간들은 더하기로 분류하고 어떤 시간은 빼기로 분류하더군요. 공부방에 가서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학생은 거의 없을 테니 저는 빼기로 분류될 수밖에 없습니다. 출발이 좋지 못하죠. 이미지가 굳어지기 전에 반드시 전환을 시켜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른에 비해서 더 논리적이기 때문에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이유가 제대로 설명이 된다면 굳이 빼기로 분류되진 않죠.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벌어지는 시간의 싸움에서 저는 매번 실패하며 좌절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때로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역사탐방을 가거나, 동네 곳곳을 찾아 상장을 주는 특별한 이벤트를 벌이거나 하는 고민을 행동으로 옮겼을 때 아이들의 눈빛이 빛났습니다. 더 많은 것을 욕심낼 수는 없겠죠. 소크라테스가 자신의 정체성을 ‘등에(Gadfly)’라고 했죠. 등에는 우둔한 소의 등에서 피를 빨아먹는 쇠파리입니다.

당시 그리스의 사람들은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성가셨던지 등에 쳐다보듯 했다고 합니다. 저도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아이들과 가족들의 무미건조한 시간을 한 움큼 뜯어먹어서 상처를 내고 ‘트멍’을 만드는 한 마리의 등에가 되고 싶습니다. 이렇게 만들어낸 틈은 생명력을 가지고 가족들의 시간을 흔들 것입니다. 더하기의 시간을 늘리는 방법은 다음에 소개하겠습니다.

* 1주일에 1회 게재되던 ‘오승주의 오승주의 어·부·가’는 필자 사정으로 앞으로는 2주일에 1회 게재됩니다.

[어부책]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

격주 간격으로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을 게재합니다. 특히 아이에게 다가가고 싶은 부모님들은 꼭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권 한 권 만지작거려봅니다.

4. 따로따로 행복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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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로 따로 행복하게 | 배빗 콜 (지은이) | 보림

부모가 다투는 모습을 본 아이들이 받는 충격은 아이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지는 정도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부부싸움을 하면서 아이들을 의식하지만, 이내 안하무인(?)이 된 채 싸움에만 열중하고 계시지는 않나요? 가족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재치 있고 솔직하게 풀어낸 배빗 콜이 쓴 <따로 따로 행복하게>는 부모의 이혼을 바라보는 아이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이혼율과 이혼 증가율이 전국 평균과 비교해 높은 편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부모의 이혼이나 다툼은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부부가 뜻이 안 맞아서 헤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자신들이 낳은 아이를 항상 고려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dajak97@hanmail.net 앞으로 육아고민을 보내주세요. 자녀와 본인의 나이와 성별을 써주시면 가명으로 처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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