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㉙> 바이칼 여행기

DSC01128.jpg
▲ 바이칼호의 모습. ⓒ 이종형

나의 버킷 리스트에 생전에 가야 할 첫 여행지로 시베리아의 거대한 호수, 바이칼을 올린 것은 굿 박사이자 시인인 내 친구 문무병의 영향이다. 그는 오래 전부터 바이칼을 동경해왔는데, 그것은 바이칼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2500만년), 가장 깊고(1637m), 가장 넓은(3만1000㎢) 호수여서가 아니라, 한국 샤머니즘의 원조이기 때문이다.

나에겐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시베리아는 왕년에 8권의 전집을 다 읽어치운 위대한 도스토예프스키 문학의 산실이다. 네플류도프가 카츄사를 따라간 ‘부활’(톨스토이)의 배경이요, 춘원 이광수의 ‘유정’의 무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시베리아가 과거 유배지였고 버려진 땅, 잊혀진 땅으로 외면당하다가 20세기 들어 ‘자원의 보고’로 각광받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제주도와의 친연성을 느끼게 한다.

시베리아 그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이누나! 2015년 7월 17일, 시인·작가·평론가 등 문인을 포함한 17명의 답사팀이 인천공항을 떠났다.

□ 시베리아의 로맨스

7월 17일 자정에 우리는 앙가라강(江)을 끼고 바이칼의 초입에 자리한 인구 60만의 시베리아 최대 도시 이르쿠츠크에 도착했다. 다음 날 오전, 답사팀은 쩨까브리스트박물관(일명 ‘발콘스키의 집’)을 방문했다. 제정 러시아 시절 니콜라이 1세에 항거한 600여명의 귀족 장교들은 혁명이 실패하자 대부분 시베리아에 유배되었다. 알렉산더 2세 때 유배에서 풀려난 발콘스키와 그의 아내 마리아가 살았던 집을 재현한 게 쩨까브리스트박물관이다. 유배인들과 함께 시베리아까지 따라갔던 부인과 약혼자들의 애틋한 사랑 얘기는 당시 러시아 유배문학의 모태가 되었고 ‘시베리아의 로맨스’는 만인의 심금을 울렸다.

그런데 내가 바로 그 로맨스의 주인공이 된 사연은 이렇다. 오후에 앙가라 강변을 산책하다가 ‘청혼의 다리’에 이르렀다. 자물쇠들이 다리 난간에 쭉 매달려있는데, 연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언약하고 열쇠를 강물에 던진다고 한다. 이 다리에서 청혼하면 성공한다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독신인 나는 즉시 그녀에게 청혼했다. 강릉 출신의 24세 처녀로 유학생인 그녀는 “사랑에는 국경도, 나이도 없다”면서 흔쾌히 수락했다. 이 살 떨리는 감격과 환희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으랴!

KakaoTalk_20150727_125730526.jpg
▲ 바이칼호의 모습. ⓒ 이종형

□ 시베리아 대평원과 브리야트 족의 성황당

답사팀은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메카인 알혼섬을 향하여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5시간 동안 달려도 달려도 보이는 것은 끝없는 지평선과 망망한 대초원뿐이다. 러시아인의 대륙적 기질과 웅숭깊은 러시아문학은 이처럼 넓은 땅덩어리에서 기인하는 게 아닐까?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고리끼, 고골리, 파스테르나크, 솔제니친...기라성 같은 작가들을 배출한 토양은 러시아의 저 광활한 대지가 아닐까?

초원의 중간쯤에서 우리는 브리야트족의 성황당을 보았다. 바이칼호 원주민인 부리야트족은 몽골족으로 인종, 언어, 신앙, 풍속면에서 우리와 비슷한 것이 많다. ‘세르게’는 부리야트족의 정신적 지주인데 우리의 솟대나 성황당과 같고 제주도의 신당에 있는 신목(神木)의 기능을 한다. 그들은 나무와 덤불에 ‘세멜가’라는 부적을 달아매 장식하는데, 그 부적은 다섯가지 색깔의 길다란 천 조각으로 우리가 신목에 지전과 물색을 달아매는 무속과 흡사하다. 아마도 몇 천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부리야트족과 우리는 한 형제였을 것이다.

□ 신들의 고향-알혼섬

저녁 무렵 답사팀은 샤휴르따에 도착하여 바지선을 타고 알혼섬으로 이동했다. 바이칼호는 주변에 27개 섬을 갖고 있는데, 그 중 가장 큰 섬이 알혼섬이다. 알혼섬의 면적은 제주도의 1/2, 길이는 제주도의 동서 길이와 같은 70km이다. 스탈린 시대에 강제노동수용소였던 이 섬에는 4000여명의 주인이 산다.

저녁을 먹고 ‘부르한 바위’를 구경했다. 알혼섬이 바이칼의 중심이라면 이 바위는 알혼섬의 핵심이다. 이 바위 근처에 13개의 세르게가 세워져있는데 바이칼의 무조신(巫祖神)을 비롯한 여러 강신(江神)들을 모시는 성소다. 이 바위는 신성한 곳이므로 누구도 올라가거나 훼손할 수 없도록 법령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과거 이 바위를 지나갈 때는 말에서 내려 경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소비에트 시대에 공산당의 종교탄압을 피해 시베리아의 성직자들이 부르한의 동굴에 피신했다고 하니, 4.3때 토벌군의 학살을 피해 동굴로 피신했던 제주도민들의 참상이 떠올랐다. 바이칼의 백야(白夜)는 어둠의 장막이 내리지 않고 어스름이 남아 있는 밤 10시까지 계속된다. 백야에 호수를 배경으로 의연히 서 있는 바위는 신령스럽다 못해 외포심을 자아낸다.

초원의 영웅 징기스칸의 어머니는 부리야트인이고 말혼섬이 고향이다. 그래서 징기스칸이 부르한 바위에 묻혔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KakaoTalk_20150727_125735711.jpg
▲ 바이칼호의 모습. 한 가운데 사자바위와 악어바위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 이종형

□ 별빛 가득한 캠프 화이어

이 날 밤, 백야의 알혼섬에서 우리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보드카를 마셨다. 음주가무는 한국인의 통과의례. 김병택 평론가는 청년처럼 노래했고 김석희 소설가는 송창식의 ‘사랑이야’를 열창했다. ‘나가수’라는 애칭을 지닌 나기철 시인은 그의 애창곡 ‘러시아 혁명가’를 불렀고 김광렬·양영길 시인은 여자처럼 수줍게 노래하는 타입이다. 이석범 소설가는 굵직한 바리톤이고 김수열 시인은 술이 취해야 노래가 나온다. 현분도는 노래보다는 연애의 기술이 탁월하다. 나는 ‘영아는 내 사랑’을 불렀다. 영아는 내 사랑/언제나 그녀는 황홀한 소녀/그리워라…‘(아아! 내 생애 단 한 번 사랑이었던 영아를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이 날 밤의 압권은 이종형 시인의 안내로 은하수를 관찰한 일이다. 이 시인은 “지상에 불 하나를 끄면 하늘에 별 열이 보인다”면서 캄캄한 곳으로 데리고 가, 북두칠성·북극성·카시오페아·큰곰자리 등을 가리켰다. 그때 하늘에 사금파리를 뿌려놓은 것처럼 하얗게 빛나는 은하수를 보았다. 광대무변한 우주에는 천억 개의 은하수가 있고 각각의 은하수는 천 억개의 별을 거느리고 있다고 한다.(티끌 같은 지구라는 별에 사는 인간은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가?) 아프리카나 남미, 사막지대 등 오지에서만 볼 수 있다는 은하수를 여기서 만나다니! 나는 울고 싶었다.

은하수를 건너 내 영혼의 안식처인 하늘나라로 가고 싶다. 하늘엔 빛나는 별, 지상엔 술과 노래, 이 순간에 우린 제왕이 부럽지 않았다.

□ 시베리아의 진주, 성스런 바다-바이칼 예찬

다음 날(7.19) 아침, 숙소 뒤편에 있는 언덕 꼭대기까지 숨차게 올라갔다. 언덕에서 내려다 본 바이칼은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시베리아 중남부에 위치한 바이칼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유산이다. 제주도 면적의 17배, 남한의 1/3이고 길이는 635km, 폭이 80km이다. 2000km에 달하는 바이칼 호변(둘레)을 따라 40여개의 도시가 점점이 박혀 있다.

지구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1500여 종의 고유생물이 살고 있는 진화박물관이자 생태환경의 보고이다. 바이칼 호수는 중앙아시아 또는 유라시아 유목민족들의 발원지이자 이동경로로서 중요한 역사·문화사적 의의가 있는 곳으로 일찍이 육당 최남선은 바이칼 일대를 우리 민족문화의 발상지라고 했다.

서울대 의대 이홍규 교수는 한국인의 유전자 분석 결과, “한국인 주류는 바이칼호에서 온 북방계 아시안이 70~80%, 20~30%는 남방계”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니까 이번 답사 여행은 배달 겨레의 뿌리를 찾는 역사탐방길이요, 민족문화의 원류를 찾는 순례길이다. 그리고 러시아문학의 깊이와 넓이를 체험하는 문학기행이다.

러시아인들은 이 호수를 ‘시베리아의 진주’, 성스런 바다‘, ’거룩한 바다‘로 부른다. 굿 박사 문무병은 ’천해(天海) 하늘올레‘라고 불렀다. ’하늘로 가는 바다‘, ’하늘에 이르는 바다‘라는 뜻이다. 코발트색 호수와 제주하늘보다 더 파란 무공해의 하늘이 맞닿아있는 광경을 바라보노라면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다.

10월초부터 바이칼 호수에 눈이 내리고 11월부터 얼기 시작하는 얼음은 1m 이상 두께로 얼어붙다가 4월이 되면 녹기 시작한다. 바이칼의 겨울은 길고 혹독하게 춥다. 그래서 이 동토(凍土)의 설국이 유형지가 된 것이다.

KakaoTalk_20150727_125736127.jpg
▲ 부르칸(부르한) 바위. ⓒ 이종형

□ 바이칼 유람선과 반야 체험

다음 날(7.20.), 이틀 밤을 보낸 알혼섬을 떠나 바이칼 호수가의 항구도시인 리스트비얀카로 이동하여 유람선에 탑승했다. 유람선에서 러시아의 3가지 상징-바이칼·오물(생선)·보드카-이 어우러진 선상 파티가 열렸다. 일행 중 몇 사람은 오염된 호수물을 퍼마시기도 했다.

배에서 내린 일행은 러시아 전통사우나인 ‘반야’를 체험했다. 한증막에 들어가 땀을 뺀 뒤, 자작나무 가지로 온몸을 때리고 밖으로 나와 호수의 찬 물에 1분 정도 몸을 담궜다가 샤워로 마무리한다. 일행은 모두 ‘개운하다’고 했는데 아마 그건 자작나무 채찍질이 혈액순환에 도움이 됐다고 여겨진다. 나는 지난 날의 모든 죄와 허물을 참회하는 마음으로 죽비를 내리치듯 벌거벗은 몸을 힘껏 때렸다.

□ 쏘오냐와의 아쉬운 이별

다음 날(7.21.)새벽 3시에 이르쿠츠크를 출발한 답사팀은 7시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이르쿠츠크 공항에서 가이드와 나는 아쉬운 작별의 포옹을 했다. 그녀는 자신을 ‘쏘오냐’로 불러달라고 했다. 고백하건대, 3박 5일간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나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꼬리니코프의 연인 쏘오냐를 사랑하기로 결심했다.

164127_186070_1757.jpg
▲ 장일홍 극작가.
쏘오냐는 8월에 부모의 허락을 받고 제주도로 날 찾아오겠다고 약속했다. 어쩌면 쏘오냐와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인지도 모른다. ‘한 여름밤의 꿈’이어도 좋다. 그러나 그 달콤한 사랑은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와 함께 추억의 앨범 속에 끼워져 영원히 살아 있으리라.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나폴리를 보고나서 죽어라”고 말했다. 나는 감히 말한다. 바이칼湖를 보고나서 죽어라!! / 장일홍 극작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