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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23) 달리고 싶은 자전거 / 김성주


자전거를 탄 아이들이 빠져나간 광장

어둠이 점령군으로 왔다

자전거 하나, 달리고 싶은 꿈을 꾸며 모퉁이에 쓰러져 있다

전지전능하신 하늘이 주위를 살피며 조심스레 자전거를 타 본다

양 무릎이 피멍으로 물들며

광장을 비틀비틀 한 바퀴나 돈다

멀리 새벽 종소리 들리고 두런두런 살아가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하늘이 황급히 오르고

광장엔

살 부러진 자전거 하나


김성주 : 『자유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비․바람의 길』, 『공백』 등이 있음.

전지전능한 하늘도 가끔은 심심하신가 봅니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하늘은 하늘에서 내려와 아이들이 빠져나간 광장에, 
달리고 싶은 꿈을 꾸며 누워 있는 자전거를 조심스레 깨워 비틀비틀 광장을 돕니다.
전지전능하다지만 양 무릎에 피멍이 드는 것으로 봐서 꼭 그렇지도 않은가 봅니다. 

새벽 종소리가 들리고 인간의 시간으로 돌아올 무렵이면 
하늘은 하늘로 올라야 하는데 고작 한 바퀴밖에 돌지 못한 것 같습니다.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합니다.

무릎보호대를 하고 자전거 타는 하늘이 보고 싶으면 어둠이 내려앉은 광장으로 가보시지요.
혹은 이른 아침 광장 한 켠에 살 부러진 자전거가 누워 있다면 간밤에 하늘이 다녀갔다는 틀림없는 흔적이겠지요.  / 김수열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김성주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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