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인문학 기자단 '와랑'] 5박6일 강정평화대행진에 다녀와서/송채원 보물섬학교 9학년

20150727_102541.jpg
▲ 제주시청 기념탑에서 일행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다. ⓒ송채원
지난 7월 27일 오전, 평화를 위해 노랗게 무장한 사람들이 제주시청에 모였다. 동진과 서진으로 나뉘어 각각 강정으로 출발한 ‘2015 강정생명평화대행진’ 행진단이다. 내가 속한 보물섬은 이번 대행진에 동진으로, 세 번째로 함께했다. 나는 올해가 첫 참가였다. 그 동안 강정에 대해 잘 몰랐던 데다 5박6일 동안 걷는 것도 처음이었다.

첫째 날엔 좀 헤맸다. 제주시청에서 함덕고까지의 길은 시내권이고 교통량이 꽤 되기 때문에 걷는 내내 사람들의 이목을 이끌었다. 그게 응원의 눈빛이든 질타의 시선이든. 교통에 불편을 끼쳐 불만을 토로할 수도 있고 쓸데없는 짓이라고 할 수도 있고 반갑게 인사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 속에서 내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보물섬에 다니지 않았다면 나는 저 사람들의 일부였을 것이다. 과연 나는 응원의 박수를 보냈을까? 자신이 없다. 강정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여기 걷는 사람들에 대해 모르기 때문에.

이튿날, 걸으며 우연히 듣게 된 2개의 이야기로부터 나는 서서히 바뀌어갔다. 하나는 어떤 여자 두 명이 제주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한 분은 제주 사람인 듯 했는데 마침 바로 옆에 밭이 있었다. 저 초록색(밭 작물)과 검정색(돌담)의 조화가 너무 좋다고, 어딜 가더라도 제주도의 저 모습은 자랑하고 싶다고 했다. 농작물과 돌담은 흔히 보이는 풍경인데 ‘색깔’의 조화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보니까 정말 예뻤다. 빨강과 파랑처럼 흔히 쓰는 조합은 아는데 초록과 검정의 조화는 새로웠다. 게다가 제주 자연의 색이라 더 색감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야기는 이렇다. 북촌리마을회관에서 쉴 때 내 옆에 동진 단장님이 있었고 다른 한 편엔 여자 분을 보았다. 여자 분이 단장님께 이것저것 물어보던 중이었다. 대화를 듣고 알 수 있었다. 더운 여름에 걷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절박하게 알리기 위해서라는 것. ‘절박’이라는 그 단어가 콕 박혔다. 한층 깊어져 다시금 걷는 의미가 되새김질 됐다.

3일 째 되는 날은 정말 더웠다. 폭염주의보가 내려서 점심에 예정되어 있던 수요시위도 미뤄지고 원래 돌아서 갈 길을 단축할 정도였다. 폭염 속에 여전히 여러 생각을 하며 걸었다. 그 중 강정에 짓고 있다는 해군기지에 대한 생각은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같이 얘기를 나누는 그 분위기가 걸으면서 제일 잘 만들어지는 것 같다. 강정에 대해서 다른 사람이랑 단 몇 번이라도 얘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만 머리 굴리고 있으니 점점 과열되고 있었다.

넷째 날에 그 피로와 더위에 복잡한 생각이 쌓여서 걷다가 엉엉 울어버렸다. 점점 뒤로 쳐지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걷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다 지쳐서, 걷기 힘든 줄 안다. 다른 의심의 여지, 틈도 없이 여기선 당연한 거다.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이니까 몸이 힘들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런데 강정생명평화대행진이니까 마음이 더 힘들었다. 그간의 답답함이 더해져 눈물이 나버렸다. 순간 이렇게라도 안하면 정말 안 되는 세상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무기력해졌다. 이렇게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하나둘 알게 되고 그렇게 조금씩 나아지는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한다고 바뀌지 않을 것 같은 막막함이 자꾸 들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동안 희생되는 사람들, 당연한 권리를 위해 고생하는 사람들이 너무 불쌍하고 안타깝고 미안했다.

강정 말고도 밀양 송전탑, 용산 참사, 비정규직 정리해고, 세월호 참사 등 연대 의식이 강하게 느껴졌다. 거대한 힘에 맞서려면 그 수가 많을수록 좋겠지만 하나만 맞서기도 힘들 텐데 그 사람들이 지쳐버리면 어떡하나 걱정도 됐다. 역사가 말해주듯, 숭고한 희생들이 있기에 사회가 발전할 수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5박6일을 희생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언젠가 우리에게 더 큰 희생이 요구되면 겸허히 받아들일 자신이 없었다.

그런 나를 위로해준 사람들이 있었다. 막막함이 완전히 사라지도록 ‘수술’을 해주진 않지만 스스로 이겨내도록 ‘면역력’을 키워주는 주작(선생님). 이렇게 걸어도 절대 안 바뀔 것 같다고 박박 우기며 우는 나를 달래면서 같이 바꾸자고 새끼손가락 걸어준 평화나비 언니. 행진단을 유독 좋아해주시고 반겨주셨던 위미 쪽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들. 수고한다고, 악수해주시고, 토닥여주셨다. 그리고 이차선 도로에 차가 주차되어 있어서 부득이하게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멈추게 해야 했던 상황이 있었다. 그 때 어떤 안전요원 분이 지시봉을 위로 올리고 나서 90도로 죄송하다고 반복해서 허리를 숙였다. 그러기 쉽지 않았을 텐데 존경스럽고 멋졌다. 무엇을 위한 발걸음인가를 직접 두 눈으로 보았다.

마지막 날에 걷다가 갑자기 딱 바다가 보이면서 해군기지 공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 급작스러운 만남이라 당황스럽고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후로 내내 많이 긴장됐다. 떨리고 무섭기도 했다. 강정에 들어서고 서진을 기다리고, 만날 때 심장 뛰는 게 느껴질 만큼 최고조로 긴장했다. 이 때 경기도에서 온 안전요원이랑 얘기를 했는데 모르는 사실도 알게 되고 신기했다. 강정마을에 있다는 게 저녁이 다 되서야 실감이 났는데 덕분에 그 동안 긴장이 완화될 수 있었다.

서진이랑 만날 때도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였는데 하이파이브를 하려는 손부터 훅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 뒤로 사람들이 끝없이 왔다. 누군가 말했던 것처럼, 정말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는데 반가웠다. 평소 안면이 있던 볍씨학교 친구들은 더욱 반갑게 인사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같이 밥을 먹고 율동을 준비했다. 평화콘서트로 5박6일의 대장정은 마무리되었다.

나의 막내 고모와 가족들이 강정에 산다. 8년 동안이나 싸워왔다는데 무려 내가 8살 때부터라는 거다. 그렇게 오래된 줄은 몰랐지만 이 일을 모르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평소에 여쭤보기도 하고 관심도 가질 걸 그랬다. 그랬다면 구럼비도 볼 수 있었을 텐데.

6일 동안 하루가 다르게 생각이 바뀌고 마음이 바뀌고 정말 격변의 일주일이었다. 이만큼 많이 걸은 것도 처음이고 길 위에서 배운 것도 많았다. 분명 내가 변화하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지만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사람, 사회를 바탕으로 나의 길을 걸어 나갈 것이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