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22) 놀이의 언어, 놀이의 시간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시간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마음가짐

아이들이 공부방에 오면 최소 50분 정도를 공부해야 합니다. 어떤 아이의 경우는 거뜬히 할 일을 하고 가지만, 많은 아이들에게 50분은 고역입니다. 안타깝게도 바른 자세로 앉아서 해야 할 일을 하는 습관이 몸에 밴 어린이는 많지 않습니다. 좋은 습관은 고속도로처럼 아이를 데리고 즐겁고 놀라운 곳으로 데려다 줍니다.

하지만 습관의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서는 가정에서부터 잘 다듬어져야 합니다. 공부방에서도 습관의 고속도로를 타고 50분을 알차게 보내다가 가는 친구들이 더러 있죠. 아이들에게 시간을 잘 활용하게 만들고, 낭비되는 시간이 없게 하기 위해서 계획표도 만들고 체크리스트도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시간과 친해지지 않는 친구들이 적지 않습니다.

갈 시간이 가까워지면 어디 가야 한다며 저를 압박합니다. 저는 집에서 주사위 두 개를 준비해서 확률 게임을 제안했습니다. 5학년 1명, 3학년 1명, 4학년 남자아이 1명씩 있었는데 주사위 두 개를 던져서 모두 자기 학년의 숫자와 똑같이 나오면 뽑기도 시켜주고 보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대신 36라운드 안에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확률 시간에 나오잖아요. 주사위를 던져서 한 숫자가 나올 확률은 6/1이고, 두 개를 던져서 어떤 숫자 두 개가 나올 확률은 1/36이죠. 3학년이 3-3이 나올 확률도, 4학년이 4-4가 나올 확률도, 5학년이 5-5가 나올 확률도 역시 각각 1/36입니다.

아이들은 왜 36번을 던져야 하는지 잘 모르지만 나중에 오늘 있었던 일이 생각나겠죠. 당장 가야 한다는 아이들이 놀이에 몰두합니다. 36라운드가 다 끝났는데 목표했던 숫자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서로의 숫자만 나왔죠. 3명 모두 확률보다 안 나온 셈입니다. 가야 할 시간이 됐다고 안달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끝을 보려는 승부사의 모습만 남았습니다. 결국 또 한 번의 경기를 하고 나서 3학년 어린이가 승리를 하고 나서야 아이들은 돌아갔습니다. 아이들은 ‘시간’을 이야기했지만 역시 ‘마음’이 문제인 것입니다. 공자는 마치 심리학자처럼 아이들의 이 마음을 포착했죠.

그가 하는 행동을 살펴보고, 왜 그러는지 관찰하고, 어떤 점을 편안히 여기는지 깊이 헤아린다면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사람이 어떻게 자신을 숨길 수 있겠는가!
- <논어>, 위정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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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즐거우려면 놀이로 변신해야

확률게임은 간단한 수학적 원리를 놀이에 응용해 아이들의 흥미를 끌어낸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만든 수학 놀이 중에서 ‘배수 게임’도 있습니다. 약간 도톰한 책을 펼치기 전에 왼쪽 페이지를 선택할지 오른쪽 페이지를 선택할지 먼저 고릅니다. 4, 6, 8, 10의 배수는 왼쪽에서만 선택할 수 있고, 3, 5, 7, 9는 양쪽 모두 선택할 수 있습니다. 1과 2를 제외한 8개의 숫자를 부를 수 있고 숫자가 높을수록 점수를 더 많이 받는 놀이입니다. 팀을 정해서 총점을 계산하면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습니다. 책을 펼쳤을 때 나온 숫자가 자신이 부른 숫자의 배수가 맞는지 안 맞는지를 순간적으로 판단할 수 있고, 친구들과 함께 지혜를 짜낼 수도 있습니다.

아직 숫자의 관념에 익숙하지 않은 초등 저학년이나 중학년에게 도움이 되는 놀이입니다. 제가 졸저 『책 놀이 책』을 쓰고 나서 3년간 전국을 누비며 어린이를 만나고 가족을 만난 경험으로 얻은 게 있다면 바로 ‘놀이 문법’입니다. 아이들의 언어는 놀이입니다. 놀이는 어른에게도 물론 잘 통합니다. 노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놀이는 시간을 초월할 수 있고, 아이들을 몰입시킬 수 있습니다. 저는 학교 과목이나 여러 가지 공부를 놀이로 재창조하는 일을 좋아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놀이를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흔히 어른들이 이야기하는 “공부가 재밌어서 하나요?”에 대해서 멋지게 반론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아이들의 학창시절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제가 학교에 다닐 때보다 훨씬 불행해진 것 같습니다. 이것은 미래의 어두운 그림자입니다. 이 문제가 교육에만 한정되겠습니까? 감나무 아래서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또 시간이 가기만을 기다린다면 시간은 결국 나를 외면할 뿐입니다.

부모들을 대신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저는 무척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아이들이 제게 와서 머무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마냥 흘러가는 것 같아서 무거운 좌절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시간을 낭비하고 소홀히 하는 모습을 보이면 제가 다 초조해집니다. 두렵고 또 두려운 게 흘러가는 시간이고,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남의 시간, 그것도 남의 자식의 시간입니다.

마치 운명의 시간처럼 시침은 무겁게 우리를 짓누르고 있습니다. 정말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납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에는 밝고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집중하려고 합니다.

[140자 Q&A 상담코너]

18. 아이가 부모보다 물건을 사랑합니다.

Q = 아이가 속상한 일이 생기자 자기가 사랑하는 장난감을 안고 울더라고요. 몹시 섭섭했습니다.

A = 사람이든 동물이든 물건이든 위로를 받을 수 있다면 고마운 일입니다. 부모가 위로를 해주지 못한 데서 생긴 일이니 원망할 것도 섭섭할 것도 없습니다. 아이가 무슨 악의가 있겠습니까. 연못에 물고기를 넣으면 어항이 되고, 쓰레기를 버리면 쓰레기통이 될 뿐이지요. 부모 스스로를 탓하고 나서 아이 원망을 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dajak97@hanmail.net 앞으로 육아고민을 보내주세요. 자녀와 본인의 나이와 성별을 써주시면 가명으로 처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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