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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24) 곽예남 할머니의 눈물 / 양영길

힘없는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난
그 죄값으로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벌나비 춤을 추는 따스한 봄날
텃밭에 나가 일하다가
일번 헌병들에게 끌려가
고향 산천 한 번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채이고 찢기면서
머언 먼 중국 등지에서
그 놈들에게 짓밟힌 육신
60년 너머 중국 땅에 살면서
한 맺힌 사연 삭이고 잊으면서
우리말도 잊었단다
고향 땅 단양과 형제 이름만 알고
우리말도 할 수 없었단다
그래도 알아듣기는 알아들어
당신네 나라 사람임을 알고 부여잡은 손
꺼이꺼이 흘리는 눈물
60년 세월을 흘려도
아직도 마르지 않은 이 눈물
아~ 대한민국은
할머니를 위해
얼마나 울어야 할까
잘 산다고 잘 나간다고 으스대는
대한민국은
할머니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우리말을 잊고 살던 
남이 할머니의
아리랑 노래가
아직도 구천을 떠도는데
아~
대한민국은
곽예남 할머니의 눈물 앞에서
꿇어앉아 속죄의 눈물을 흘려도 좋으리
흘린 눈물 강물이 되어도 좋으리


양영길 : 『중앙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바람의 땅에 서서』, 『가랑이 사이로 굽어보는 세상』등이 있음. 

1944년 ‘조선’의 국적을 갖고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60여 년을 중국에서 무국적자로 살다가 2004년 마침내 대한민국 국적을 갖게 된 곽예남 할머니를 기억하시는지요?
곽 할머니는 그나마 운이 좋은 경우라 합니다. 모방송국의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국적을 얻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중국에는 ‘제2의 곽예남 할머니’가 우리 정부와 우리들의 무관심 속에 무국적자의 신분으로 가난 속에서 죽어가고 있다 합니다.

아시아인권의원연맹과 국회인권포럼이 선정한 ‘2015 올해의 인권상’ 수상자로 ‘위안부 할머니들’을 선정했는데 시상식장에서 한 할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합니다.
“국회의원들이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투쟁해서 일본이 공식적으로 사죄하고 국제적으로 배상하도록 해주세요. 너무 섭섭합니다. 오늘 상 주시는 것 별로 안 반가워요.” / 김수열

김수열 :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양영길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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