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아카데미-나침반교실](6) 교육평론가 이범 "지식 아닌 역량 길러야" 

‘역량’은 사전적 의미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역량은 교육을 통해 키울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교육으로 아이들의 역량을 키워주고 있을까.

우리나라 교육은 미국식 대학입시와 일본식 학교 교육의 잘못된 만남, 가수 김건모 노래 ‘잘못된 만남’의 가사처럼 “그런 만남이 어디부터 잘못됐는지, 난 알 수 없는 예감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을 때 쯤”이 바로 지금이라는 지적이다.

제주도교육청(교육감 이석문)과 [제주의소리]가 공동주최한 ‘2015 부모아카데미 - 나침반 교실’이 13일 오전 9시30분 제주벤처마루 10층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강연자는 이범 교육평론가 겸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이 부원장은 경기과학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에 진학해 분자생물학을 전공했다. 이후 서울대에서 과학철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우리나라 사교육을 들었다 놨다하는 ‘메가스터디’ 창업 멤버였던 그는 5년간 과학탐구영역에서 가장 많은 수강생을 가르치다 지난 2003년 홀연히 학원가를 떠났다.

이 부원장은 당시 국세청 신고 내역을 보면 전국 모든 사교육 강사 중 수익이 2위였다고 털어놓았다. 자천타천 ‘스타 강사’였다.

그런 그가 학원가를 뛰쳐나온 이유는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를 바로 잡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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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아카데미 여섯번째 강연자로 나선 이범 교육평론가 겸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이 강연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 대입은 미국식, 학교 교육은 일본식 “어쩌라는 거야”

우리나라 학생들은 이른바 명문대학 진학을 위해 초⋅중⋅고 12년을 수능을 향해 달린다. 수능은 미국의 대입 SAT 제도를 본뜬 제도다.

우리나라는 수능제도에 힘입어(?)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학력 수준을 갖고 있지만, 사교육 시장은 커지다 못해 거대해졌고, 대학 서열화는 갈수록 심화됐다. 

이 부원장은 대입 제도와 학교 교육 방식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SAT는 1년에 8번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이번에 시험을 잘 못 보면 다음에 또 보면 되요. 가장 높은 점수를 얻었을 때 학생 스스로가 시험을 그만 볼 수 있는 것이죠. 그렇다면 미국의 학교 교육도 우리나라 방식일까요? 미국의 학교 수업은 학생들이 과목을 선택합니다.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듣는 제도인 거죠. 자신의 역량을 스스로 키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학교 교육 시스템은 일본의 방식입니다. 정부에서 정한 교육 과정에 따라 수업을 받는 것이죠”

“우리나라 학교 교육은 모든 것이 수능에 맞춰져 있어요. 지식을 전달하지 역량을 키워주지 않아요. 그렇다면 우리 아이들의 역량을 키워주려면 어떻게 할까요. 책읽기, 탐구, 토론 등 방법이 있어요.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방법입니다. 유럽이나 미국 등 선진국은 숙제가 많습니다. 우리처럼 문제풀이 숙제가 아니라 소설이나 역사 등 책을 읽거나 에세이를 쓰는 겁니다.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토론할 시간을 주나요? 탐구는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 아래에서 역량을 키우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책읽기예요”

누구나 책 읽기가 중요하단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책 읽기를 단순한 지식 습득용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이었다.

우리는 초⋅중⋅고 시절 이순신 장군에 대해서 배우고, 임진왜란을 배운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당시 쓴 ‘난중일기’를 제대로 읽어본 사람은 드물다.

공교육, 사교육 그 어디에서도 아이들에게 책 읽는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단순 지식 교육은 우리 아이들을 ‘도련님’, ‘공주님’ 엘리트로 만들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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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아카데미 여섯번째 강연에 참석한 학부모들이 이범 교육평론가 겸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의 강연을 경청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 회사는 탈스펙...취업준비는 아직도 스펙만?

이 부원장은 우리나라 회사들이 직원 채용 방식을 바꾸고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취업준비생들은 기존의 채용 방식을 고수한다는 지적이다.

스펙(SPEC)은 Specification의 약자다. 기계나 물건 등의 성능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단어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인간에게 사용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최근 기업들은 고졸 채용, 열린 채용, 지방대 우대 채용 등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다.

명문대 출신의 직원을 뽑아도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일도 잘 못하는 사람이 많다는 경험에서 비롯됐다.

스펙과 업무 능력은 결코 비례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최근 모 대기업에서 신입 직원을 채용할 때 출신 대학을 가렸어요. 어떻게 됐을까요. 원래대로라면 명문대라 불리는 'In 서울’ 대학 출신이 즐비했겠지만, In 서울 출신이 절반, 나머지는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 출신이었습니다. 스펙은 다른 사람이 시킨 것만 해도 생겨요. 엄마가 어학 연수를 보내주면 유학 스펙이 생기고 토익학원을 보내주면 당연히 영어 점수도 오르겠죠. 이렇게 자란 아이들이 ‘도련님’ ‘공주님’ 인재인거죠”

이 부원장은 대기업 채용 담당자들이 2종류의 사람을 조심한다고 말한다.

바로 ‘강남’과 ‘명문대’ 출신이다. 강남의 명문대 출신이라면 우리나라 최고의 스펙을 자랑하는 인재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이직률이 높고, 업무 능력도 거기서 거기라는 설명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최근 신입 직원을 뽑는 회사는 거의 없어요. 검증된 경력직을 채용하는 것이 더 낫죠. 인턴 제도가 악용되긴 하지만, 그리 나쁜 것은 아니죠. 그 사람의 능력을 본다는 건데요. 그렇다면 회사는 시험 성적이 좋은 인턴 직원을 뽑을까요? 아니에요. 회사에서 뒷정리 잘하고, 성실한 인턴을 뽑죠. 개인의 심성은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부터 집에 들어가면 아이들에게 설거지 시키고, 빨래 시키세요. 스스로 할 수 있어야 돼요” 이 부원장의 말에 학부모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공감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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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아카데미 여섯번째 강연자로 나선 이범 교육평론가 겸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이 강연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 마지막 아이러니, 교육열은 세계 최고인데...

‘저출산’ 문제가 언급됐다. 아이들에게 가슴으로 다가가는 부모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수강자들에게는 다소 생뚱(?)맞은 단어였다.

이 부원장이 저출산 문제를 언급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우리나라 경제 기반이 무너져 결국 우리 아이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것.

우리나라 출산률은 1부부 당 1.2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최하위다.

많은 전문가들은 저출산 문제로 노동 인구가 줄어들어 오는 2030년이면 잠재 경제 성장률이 0~1%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원 같은 경우는 마이너스(-) 성장률을 예측하고 있다.

불안한 고용과 수억원을 호가하는 부동산, 교육과 보육에 지친 부모들. 저출산 문제를 야기하는 이유다.

“1980년대 대기업 연봉을 100만원으로 잡았을 때 중소기업 직원들은 90만원을 받았어요. 큰 차이는 없죠. 지금은 60만원대에요. 누구나 대기업을 꿈꾸죠. 모 대기업 연봉은 9400만원입니다. 1차 하청 업체의 연봉은 5700만원, 2차는 3400만원, 3차 2300만원입니다. 극심해지죠. 이런 상황에서 누가 중소기업에 들어가려 하겠습니까. 그런데 중소기업이 망하면 우리나라도 망해요. 경제 기반이 무너지는 것이죠”

작은 움직임이 눈사태를 부르듯 다소 사소해 보일 수 있는 이유로 나라 경제가 파탄날 수 있다는 설명에 수강생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수강생들의 자녀가 2030년대를 살아갈 미래 세대이기에.

이 부원장은 사회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에 당장 해결할 순 없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아이들의 ‘그릇’이라고 강조했다.

“문제를 계속 풀고, 시험을 자주 본다고 아이들이 성장하진 않아요. 그릇에 물이 얼마나 담기는지 재보기 위해 계속 물을 넣었다 뺐다할 필요가 없는 것이죠. 어떻게 그릇을 더 크게 만들까 고민해야 합니다. 역량을 키우는 것. 그것이 우리 아이들이 미래에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방법입니다”

수강자들이 단순 지식 교육이 아니라 자녀의 ‘역량’을 키워주는 것을 공감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강연이 끝난 뒤, 김봉현 [제주의소리] 편집부국장의 진행으로 이 부원장과 참석자들이 묻고 답하는 ‘즉문즉답’ 토크콘서트가 이어졌다.
  
부모아카데미 [나침반 교실]은 아이들 교육에 가장 중요한 존재는 ‘부모’라는 관점에서 시작됐다. 인성지도와 대화법 등으로 자녀들에게 길잡이가 돼주자는 취지다.

다음 강연은 오는 27일 오전 10시 제주벤처마루 10층 대강당에서 열린다. 이날 강연자 노규식 박사는 ‘중2병, 완전 정복’에 대해 강연할 예정이다.

※ 나침반교실 ‘진로,진학,교육트렌드의 변화 2부’는 소리TV를 통해 시청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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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아카데미 여섯번째 강연자로 나선 이범 교육평론가겸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이 강연을 끝내고 김봉현 [제주의소리] 편집부국장 사회로 수강생들과 일문일답을 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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