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23)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의 양육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아버지를 고발하는 자식의 이야기

조심스럽지만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야겠습니다. 누나 두 명을 둔 남동생으로서의 경험, 그리고 많은 아줌마들을 만나서 속사정을 들어본 경험을 토대로 ‘여성의 남성 선택과 아버지의 관계’에 관한 가설쯤 되겠습니다. 물론 필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한 글이니 과학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A라는 여성은 엄격한 아버지 밑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옷이나 화장품 등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며 자랐습니다.

A 여성은 자신에게 잘 대해주는 남자를 만나 결혼했습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절제를 모르는데다가 감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B여성은 술 먹고 도박에 빠진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그가 만난 남성은 절약정신이 투철하고 무엇보다도 술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자 꼭 써야 할 곳에도 돈을 쓰지 않는 남자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여성들이 남성들을 선택하는 주요한 기준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물론 정신적으로 아버지의 그늘을 완전히 극복한 여성의 경우는 남성 선택에 있어서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훨씬 많다고 생각합니다. 『논어』에는 부모와 자식의 안타까운 이야기가 나옵니다.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마을에 정직하기로 소문난 사람이 있습니다.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그는 기꺼이 증인이 되었습니다.” 공자가 대답했다. “우리 마을에 정직하다고 평가받는 자는 좀 다릅니다.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서 죄를 덮어주고, 자식은 아버지를 위해 덮어줍니다. 정직이란 그 안에 있는 것 아닐까요.”
- <논어>, 자로 편

‘정직’에 관한 두 사람의 대화지만 저는 부모와 자식 사이가 안타깝게 보였습니다. 결국 자신을 고발하라고 가르친 사람은 부모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예부터 동서양을 불문하고 부모와 자식은 공동 운명체였습니다. 예컨대 플라톤의 저작인 대화편에서 누군가를 지칭할 때는 ‘소프로니코스의 아들 소크라테스’라는 식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을 함께 불렀죠. 자식과 부모가 한편이 아니라 적이 된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못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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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ixabay

지금 자식이 부모를 사랑합니까

부모를 사랑하고, 형제자매를 사랑한다는 ‘친친(親親)’은 동양철학의 핵심 중의 핵심입니다. 『논어』와 함께 사서(四書)로 존경받는 『중용(中庸)』에는 “인(仁)이란 사람답다는 뜻이니 부모님이나 친척을 내 몸처럼 여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20-5장)이라고 했죠.

동양 사상에서 친친(親親)과 박애(博愛)는 치열하게 경쟁해 왔습니다. 친친(親親)은 공자를 따르는 학자들이 주장한 사상이며, 박애(博愛)는 묵자(墨子)를 따르는 사람들이 주장했습니다. 친척을 먼저 챙기는 사상은 차등애(差等愛)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처럼 차등애는 자기들끼리만 잘 지내며 병폐가 되기도 하죠. 저는 친친(親親)과 박애(博愛) 모두 위대한 사상이라고 생각하지만, 친친(親親)이 더 인간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박애(博愛)는 멀고 친친(親親)은 가깝죠.

이제부터 유년시절로 돌아가봅시다. 우리들의 아버지 이야기요. 아버지로부터 사랑을 받으셨나요? 혹시 엄한 아버지는 아니었나요? 아버지가 친척들과 처자식을 살갑게 잘 챙기면 자식들도 역시 그렇게 합니다. 반대로 아버지가 가족에게 차갑게 굴면 그 역시 가족의 전통과 문화가 되어 버립니다. 엄격한 아버지도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가족들을 사랑하는 것이지만, 처자식이 그 마음을 알 길은 없습니다. 저는 어릴 적에 아버지로부터 살가운 보살핌을 받기도 했고, 차가운 대우를 받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모델을 찾는 것이 무척 힘들었죠.

저는 시인 백석의 시집에 나오는 「오리 망아지 토끼」라는 시에서 아버지의 모델을 찾았습니다. 그 시는 어린 백석이 아버지와 함께 오리와 토끼를 사냥했던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장날 아침에 어미를 따라 지나가는 망아지를 보고 아버지에게 갖고 싶다고 막무가내로 떼를 쓰자 아버지는 커다란 소리로 “망아지야 오너라!” 하고 두 번 소리를 칩니다.

망아지를 줄 수는 없지만 아들이 망아지가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을 충분히 헤아린다는 조그만 동작에서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아이가 생떼를 부려도 이런 아버지라면 아이 가슴에 사랑이 깊이 새겨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지들은 자식을 훌륭하게 기르려고 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에 따라 양육합니다. 그러다가 간혹 ‘사랑’을 놓치기도 합니다. 저는 이것이 이성의 양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의 양육입니다. 사랑의 감정이 언제나 묻어나도록 표현하는 것만이 좋은 아버지의 모델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부책]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

격주 간격으로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을 게재합니다. 특히 아이에게 다가가고 싶은 부모님들은 꼬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권 한 권 만지작거려봅니다.

5. 까마귀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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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소년 | 야시마 타로 (지은이) | 야시마 타로 (그림) | 윤구병 (옮긴이) | 비룡소 | 1996-07-10 | 원제 からす たろう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라는 유명한 시어가 있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발견하고 알아봐준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정말 좋은 기질과 잠재력은 쉽게 눈에 띄지 않습니다. 때로는 어리바리하고 뭔가 나사 하나가 부족해 보이죠. 눈 밝은 사람만 발견할 수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학교에서 왕따를 당하던 한 아이는 새로 온 이소베 선생님이 알아봐준 덕분에 드디어 빛을 찾아가기 시작하죠.

머루가 산의 어디에 자라는지, 꽃이름들은 무엇인지 땅꼬마만은 알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벌어진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기도 합니다. 아이의 아름다운 기질을 발견하는 눈은 어떻게 길러질까요? 아이 같은 마음, 평온한 마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부모님들은 대개 아이에게 기대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크고 작은 실망을 하게 됩니다.

실망의 눈으로 바라보면 아이의 아름다운 점을 놓치죠. 마치 남의 자식을 바라보듯 순수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이상한 아이라고 해도, 자신만의 눈으로 까마귀 소년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이소베 선생님처럼요.

dajak97@hanmail.net 앞으로 육아고민을 보내주세요. 자녀와 본인의 나이와 성별을 써주시면 가명으로 처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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