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093_187255_4400.jpg

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28) 바다 억새 / 홍경희


가을이면
온몸으로
바람이 되는 여자
눈 밑 다크서클
눈물을 감추고서
뒤축도 다 닳아버린
우울증을 앓는 여자

해초 줄기에서
탯줄 얻어 태어난
섬사람
그 운명이
바다를 찾아오듯
사라봉 절벽 앞에 와
억새꽃으로 피었다

바다 앞에 서면
제 가슴도 절벽이라
세간에 참았던 울음
파도 소리 풀어놓고
목쉰 채
부르는 소리
엄마- 엄마- 엄마야-

귀 기울이면 뿌리 타고
오르는 연물 소리
장단이 거칠수록
춤사위 너울 치고
끝끝내
굴절된 고통
어골문만 새기는


홍경희 :『제주작가』로 등단. 시집으로 『그리움의 원근법』이 있음.

제주의 여자는 다분히 운명적입니다.
해초 줄기에서 탯줄 얻어 태어난 여자라면 더욱 그러합니다.
가을이 되면 그런 여자는 벼랑 끝에 아스라이 매달린 억새가 됩니다.
억새가 되어 마침내 참았던 울음을 토해냅니다.
엄마- 엄마- 엄마야- 

파도에 실려 숨비소리인 듯
물질소리인 듯 아니면 담 넘어 넋 달래는 연물소리인 듯 너울너울 들려옵니다.
살아온 세월만큼 연물가락 거칠어지고
거칠어진 연물만큼 춤사위는 너울거립니다.
가을 억새를 무척이나 닮았습니다. / 김수열

김수열: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홍경희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