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금리를 올리는 것을 금리 정상화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만 7년을 끌어오고 있는 미국의 제로 금리는 비정상적인 금리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지난주 금리 정상화의 시기를 또다시 늦추면서 미 중앙은행이 든 이유는 중국과 인플레이션 두 가지였다. 시장은 혼돈에 빠졌다. 정상화를 두려워할 만큼 상황이 비정상적으로 안 좋은 것인가?

그러자 요 며칠, 그 금리 동결 결정에 참여했던 미국 각 지역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이 차례로 등장하여 미국의 경제가 중국의 저성장에 타격 받을 만큼 취약한 것은 아니라면서 위 두 가지 이유 중의 하나의 의미를 축소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정상화의 길을 늦추는 이유로 오직 인플레이션이 남게 된다. 금리 인상은 물가가 너무 오를 때 쓰는 처방인데 지금은 물가가 오르지 않는 디스인플레이션 또는 디플레이션을 걱정할 때이므로 물가상승률이 적정 수준에 이를 때까지는 금리를 올리지 않는 것이 옳다는 이야기다.

미국 내외의 많은 훈수 꾼들도 섣부른 조기 금리인상으로 오랜만의 경기회복에 찬 물을 끼얹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언제까지냐고 묻는다면 그들도 물가가 적정 수준에 이를 때까지라고 말한다.

그러면 물가가 오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가가 그토록 중요하다면 물가가 오르지 않는 이유도 중앙은행이 밝혀 줄만도 한데 제닛 옐런의 기자회견 내용에는 그에 대해 일언반구 설명이 없다. 물가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한결같이 소비자물가를 지표로 채택하고 있다. 그러면 소비자물가는 왜 오르지 않는가?

소비자들이 물가가 더 내릴 때를 기다려 지출을 미루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허구다. 소비자들은 지출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전세계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내수 부족이다. 내수부족은 소비자 대중의 구매력이 허약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소비자물가가 오르지 않는 이유

구매력 부진의 원인은 가까이 자본주의의 속성에서 찾을 수 있다. 생산의 여러 요소 중에서 자본을 일인칭으로 중심에 놓고, 자본의 시각에서 사물을 보면 인간의 노동은 일개 비용항목으로 전락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인건비를 최대한 줄이는 것이 경영을 잘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이는 사회 전체적으로 구매력 총량이 줄어드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19세기 초 기계파괴로 치달았던 영국의 러다이트운동이 일찍이 우려했던 바가 그 이후 더 강화되고 있다.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으로까지 진전된 테크놀로지의 발달이 인간의 노동을 무용지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금리 또는 시중의 채권매입 등의 방법으로 통화공급을 크게 늘리는 것이 이런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동안 늘어난 통화량이 달러화의 가치를 전반적으로 떨어뜨려 자산의 가격을 올리는 자산 인플레이션(asset inflation)을 낳고 그것이 나아가 자산가에게는 이익을, 급여생활자에게는 불이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추론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한계 소비성향(propensity)은 소득수준에 반비례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소득의 양극화가 진행될수록 내수는 부족해질 수밖에 없다.

소비자물가가 오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면서 소비자물가가 오를 때까지 저금리를 유지하겠다는 발상은 무엇인가? 오른 쪽 다리가 가려운 사람이 왼쪽 다리를 긁으면서 다리 가려운 것이 나으면 다시 걷겠다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내수 부족 문제에는 속수무책

한가지 억지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자산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버블은 언젠가는 깨지게 마련이지만 언발에 오줌 누는 격으로 당장의 파국을 면하면서 시간을 끌어 불황의 새로운 해법이 출현하기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라면 의미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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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
1930년의 세계대공황의 해법은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이 제공했다. 다른 해법을 찾아야 한다면 우선 경제활동을 자본 중심에서 사람 중심으로 변화시키는 종업원지주제 또는 협동조합, 그리고 기계를 넘어 인간의 섬세함이 부각되는 하이터치 경제 등의 길이 어슴프레 떠오른다.

그러한 사회로의 진전은 경제학 이외의 모든 사회과학적 접근이 필요하고 사람과 문화의 가치가 지금보다 더 높아지도록 하는 다방면의 노력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제로 금리가 시간을 벌기 위한 목적이라면 중앙은행만 바라보고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깝게 흐르고 있다. /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

* 이 글은 <내일신문> 9월 23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 게재됐습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제주의소리>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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