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399_189827_4216.jpg
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32) 오래된 숯가마 / 홍성운


참나무 한 단쯤은 등짐 지고 넘었을 거다
관음사 산길을 따라 몇 리를 가다보면
숲 그늘 아득한 곳에
부려놓은 숯가마 하나

못다 한 이야기가 여태 남았는지
말문을 열어둔 채 가을 하늘을 바라본다
숯쟁이 거무데데한 얼굴
얼핏설핏 떠오른다

큰오색딱따구리 둥지 치는 소리야
적막강산 이 산중을 외려 위무하지만
무자년 터진 소문에
발길 모두 끊겼으니

시월상단 한라산 단풍은 그때 화기로 타는 거다
누군가를 뜨겁게 했던 내 기억은 아득하여도
한 시절 사리 머금은
그 잉걸불 오늘도 탄다

홍성운 : 『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 시조집으로 『숨은 꽃을 찾아서』, 『상수리나무의 꿈』, 『오래된 숯가마』등이 있음. 

오늘은 당신을 관음사 들머리 한라산 가는 길, 오래된 숯가마로 안내합니다.
물론 지금이야 관음사 입구까지 차량 운행이 가능하지만 
숯쟁이 거무데데한 얼굴들이 참나무 한 단을 지고 오르던 
그 시절에는 어림없는 일이었겠지요. 
쉬엄쉬엄 올라 천연 냉장고에 다름없는 구린굴을 지나 
꼬닥꼬닥 걷다보면 숯가마터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관음사 숯가마터.
정확히 언제부터 시작됐는지는 모르지만 무자년 이후 한라산이 통제되면서 
숯가마는 글자 그대로 터만 남아 있을 뿐이지요.
그러나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10월 상단 숯가마터에 가면 
그 당시 화기로 여지껏 살아남아 붉게 붉게 타오르는 단풍이 
당신을 뜨겁게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이 가을 꼭 한 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 김수열

김수열: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홍성운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