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금리인상 이야기가 나온 지가 꽤 오래 되었다. 제로금리를 곧 정상화한다고 운을 떼고는 정작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상황이 2년째 되풀이되고 있다.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도, 그리고 금융전문가들뿐 아니라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금리인상 시기에 대한 관심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일반인의 경우, 한편으로는 은행금리에 만족하지 못한 자금들이 약간씩 위험한 금융자산에 투자되어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초 저금리라는 점에 용기를 내어 각종 사업에 착수한 사람들의 부채 규모가 만만치 않게 커져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금융전문가들, 특히 채권형 자산운용을 하는 기관들의 경우도 펀드의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해 은행차입을 크게 늘렸거나 자금의 일부를 금리선물, 옵션 등 파생상품에 투자한 결과, 금리 리스크에 과도하게 노출되어 있어 금리인상에 대한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다.

그런데 어데어 터너 전(前) 영국 금융감독청장은 금리인상 시기에 연연하는 뭇 사람들과는 한 차원이 다른 화두를 꺼낸다.

그는 우선 금리인상을 최대한 늦춰야 한다는 주장에 동참하면서도 저금리에 의존하는 정책은 자칫 자산가격 거품을 조장할 뿐 실물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정작 필요한 정부의 재정지출은 기왕의 부채비율이 높다는 이유로 엄두를 내지 못해 왔는데 이러한 족쇄에서 벗어나는 방법으로 '머니타이제이션'(monetization), 즉 '정부 부채를 중앙은행이 떠안아주기'를 주문한다.

이는 과거에도 몇몇 논객들의 입에서 간간히 흘러나왔던 아이디어로서 정부나 중앙은행이나 어차피 한 국가기관의 소속이니 양자 사이의 채권 채무는 없던 것으로 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는 발상이다.

그것이 드디어 터너 청장과 같은 비중 있는 자에 의해 발설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정부부채는 재정지출의 족쇄

머니타이제이션은 20세기 초 바이마르 공화국의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낳은 주범으로 낙인찍혀 있는 것으로서 이제까지 철저히 터부(taboo)시 되어 왔다.

독일 연방은행의 젊은 총재 옌스 바이드만은 유럽중앙은행이 미국 연준에 이어 대규모로 정부채권 매입에 나서자 이를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의 수작에 비유하기도 했다(내일신문 2012. 9. 27자 본 칼럼).

터너 청장은 작년 3월에 처음 "머니타이제이션 터부를 재고(再顧)해야 한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더니 이달 6일에도 같은 언론매체(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그 주장을 칼럼으로 실었다.

일본은행은 정부부채의 29%에 해당하는 309조 엔의 국채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금액은 일본 GDP의 63%에 달하는 크기다. 일본은행은 아마 영원히 이 국채의 상환을 정부에 요구하거나 이를 시장에 되팔려고 내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 상태는 이미 정부의 부채와 중앙은행의 채권이 상계처리되고 있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점을 기정사실화 하면 일본 정부의 부채비율은 GDP의 214%가 아니라 151%로 낮아진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 동안 연준이 매입해 보유하고 있는 정부채권은 2조4000억달러로 이는 미국 정부부채의 19%, 미국 GDP의 14%에 해당한다. 이것을 상계 처리하는 순간 미국 정부의 부채비율은 GDP 대비 75%에서 61%로 뚝 떨어지게 된다.

긴축재정, 연금축소, 세율인상 등 어떤 오스테리티(austerity)도 이보다 더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부채비율이 개선된 만큼 재정 지출을 늘일 여유가 생긴다는 것이 터너 청장이 권고하는 해법이다.

부채비율 간단히 낮출 수 있어

각국 중앙은행들이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명분하에 시중 채권을 대대적으로 매입했을 때 이미 이런 각본이 마련되었다고 넘겨짚는 것은 지나친 상상일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매입한 채권을 다시 시중에 내놓지 않으면 늘어난 유동성은 회수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또한 최근 벤 버냉키 미국 전 연준의장까지 나서서 미국이 1%의 금리인상을 견뎌낼 힘이 있는지 분명치 않다는 발언을 하는 것을 보면 이들 통화당국의 정책방향이 통화적 요인에 의한 인플레이션 조장에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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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
콩나물 값이 안 오른다고 통화가치가 안정된 것은 아니다. 통화의 가치는 떨어지고 있고 이에 따라 자산의 값은 오르게 마련이다. 자산 중에서도 망하지 않는 회사의 주식, 부동산, 귀금속, 그리고 원자재 중에서 보관 비용이 크게 들지 않아 자산 노릇을 톡톡히 할만한 것들의 가격 동향을 오래도록 주시해야 할 것 같다. /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

* 이 글은 <내일신문> 10월 14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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