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비오 게젤(Silvio Gesell)은 케인즈의 유동성선호 이론에 영향을 미친 사람으로 평가되기도 하는 20세기 초 독일의 경제학자다. 그는 프라이겔트(Freigeld) 즉 모든 현찰에 유효기간을 표시해 그 기간 내에 사용하지 않으면 휴지조각이 되도록 하는 법안을 제안했다. 돈을 가지고 있지 말고 될수록 빨리 사용하도록 만들기 위한 고육지책은 과거에도 필요했던 모양이다.

마이너스 금리는 은행에 예금하면 이자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이자를 내는 것이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인데 돈의 사용을 장려한다는 점에서는 프라이겔트와 목적하는 바가 같다. 금리가 제로로 내려가면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으므로 통화정책이 막바지에 간 것이라고 걱정했던 것은 옛말이다. 금리가 영(零) 이하로 내려갈 수 있다는 상상력이 등장하면서 판도가 바뀌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마이너스 금리가 이미 현실로 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이 작년 6월에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기 시작함으로써 유로화를 사용하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시중은행이 중앙은행에 돈을 예치하면 이자를 물어야 하고, 자기의 통화를 계속 사용하고 있는 유럽의 다른 나라들 중에서는 덴마크가 9월, 스위스가 12월, 그리고 스웨덴이 금년 2월부터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마이너스 금리는 중앙은행이 시중은행들에 대해 적용하는 금리에 그치지 않고 독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네덜란드, 스위스 등의 경우에는 국채 시장수익률이 금년 상반기부터 마이너스 영역으로 진입하고 있다. 채권에 투자해 돈이 늘어나는 게 아니고 줄어드는 것이다.

금년 6월에 발표된 세계은행의 글로벌경제전망 보고서는 이와 같은 기현상의 배경을 낮은 인플레이션, 안전자산 선호, 및 ECB의 채권매입 활동, 세가지로 정리했다.

상상력을 넘어 현실로 나타나

유로화로 발행되는 독일 등의 국채는 유로 존 해체 등 유사시에 독일 마르크와 같이 안전한 화폐로 전화될 것이라는 기대로 프리미엄이 붙었고, 유로화가 아닌 통화로 발행된 스위스, 덴마크 등의 국채는 이들 통화가 강세라는 점이 프리미엄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원금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환율에서 이익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10년 만기 스위스 국채를 매입해 원금에서 1%의 손실을 보더라도 스위스프랑 환율이 5% 상승하면 4%의 순이익을 거둔다.

외견상으로는 마이너스가 아니더라도 실질금리 면에서 마이너스로 되는 경우는 빈번하게 경험되었던 바다. 명목금리가 물가상승률을 밑도는 경우는 투자 원리금의 구매력이 투자 이전보다 적어지게 된다. 단지 물가상승률이 사후적으로 확인되는 지표이기 때문에 실제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인지 언뜻 피부에 와 닿지 않았을 뿐이다.

저금리 또는 마이너스 금리의 매력은 우선, 사업자에게는 대출을 받아 투자를 하도록 부추기며 소비자들에게는 돈을 쓰게 만들어 수요를 증가시킨다는 데 있다. 그래서 인플레이션을 조성해 실질금리를 마이너스로 만들었고 이제 물가가 뜻대로 오르지 않자 명목금리 자체를 마이너스로 가져가자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연내 금리인상을 예상하는 사람들이 어느덧 소수로 전락하는가 했더니 미국도 중앙은행이 시중은행의 예치금에 대해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니애폴리스 연방준비은행의 나라야나 코철러코타 총재는 10월 8일 C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시중은행들이 연준에 맡겨 놓은 예치금에 대해 0.25%의 이자를 주고 있는데 이것을 중단하고 적은 금액이라도 금전적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그는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2015년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 순위에서 6위로 선정된 인물이다.

돈을 쓰게 만들려는 고육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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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
여유자금을 제발 중앙은행에 놔두지 말고 대출해 주라는 하소연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은행의 대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희망은 순진한 것이다. 부실대출로 인한 손실의 폭이 더 크다고 생각되면 은행들은 굳이 대출을 늘이지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소비자 대중이 어느 정도는 돈을 가지고 있다는 전제도 오류가 아닐까? 미국의 최대 체인점 월마트나 맥도날드의 신입사원들이 법정 최저임금인 시간당 9달러를 겨우 받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의 핵심과 정면 대결하려는 해법은 보이지 않고 임기응변과 전대미문의 처방들이 난무하고 있다. /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

* 이 글은 <내일신문> 10월 28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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