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광훈 녹색연합 정책위원

 석광훈 녹색연합 정책위원이 21일자 한겨레 '왜냐면'에 '4.1 제주도 전역 정전사태'와 관련한 글을 기고 했습니다. 그는 이번 정전사태의 원인이 중앙집중형 전력생산공급체제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제주에 LNG를 도입 하되, 대규모 발전소보다는 소규모 분산형 발전으로 전환해야 함을 제시했습니다. 또  재생가능에너지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석광훈 위원의 양해를 구해 전문을 싣습니다.

2003년 미국과 이탈리아에서 대정전 사태가 일어났을 때 한전은 이들이 전력산업 민영화나 송전망 노후화 때문에 일어났다며 그런 일은 국내에서 일어날 수 없다고 장담하였다. 그러나 이런 호언장담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 1일 제주에서 광역정전이 일어났으며 이를 전후로 부산, 여수, 대산에서도 큰 정전이 잇따랐다.

국내 전력산업이 민영화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제주와 육지 사이에 해저선로가 건설된 지 10년도 안되었다는 점에서 한전은 할 말을 잃었다. 정부는 제주도 정전사태 이후 19일 만에야 원인을 발표했다. 수심 30미터 깊이에 101㎞나 이어진 해저선로에서 정확한 고장원인을 확인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송전망 사업자인 한전은 재발 방지방안으로 기존 2회선으로 된 해저선로를 2개 회선을 증설하여 두 배로 늘리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이번 사태는 제주가 외부 송전선에 수요 전력의 절반에 이를 정도로 너무 많이 의존하는 구조에서 비롯되었다. 전력망에서 송전선로 융통전력이 수요의 절반을 넘게 되면 고장 때 주파수 조정 등 망 운영자의 방어수단이 무력화되고 정전이 광역화하기 쉽기 때문이다. 일본의 규슈, 홋카이도 같은 섬들은 본토와 해저선로를 통한 전력융통 규모를 섬 전체수요의 5% 안으로 하고 있다.

 홋카이도의 전력수요는 제주의 10배이지만 보통 때 해저선로로 본토와 융통하는 규모는 100메가와트 정도로 제주의 경우(150메가와트)보다 오히려 작다. 게다가 비용 측면에서 볼 때 기존 해저선로의 건설비 3500억원에, 한전이 남동해안의 발전단지에서 제주로 장거리 송전을 함에 따라 해마다 1천억원 정도의 손실을 보고 있다. 이러한 손실을 다시 두 배로 키우겠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큰 낭비다.

그렇다면 송전선로 증설보다는 제주의 발전설비를 늘리는 방안을 검토해야 하는데, 제주도는 정부에 300메가와트의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 건설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제주에 발전소를 건설할 때도 그 용량이 제주 전력망에 비해 너무 클 경우 기동·정지 때마다 전력망에 주는 충격으로 안정성을 해치게 된다. 결국 제주에 필요한 발전설비는 제주도가 요구하는 한 두 기의 대형 발전소가 아니라 다수 기의 분산형 발전소다.

최근 수도권의 아파트 단지들에서는 소형 열병합 발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수도권 공급용 송전망 보강에 해마다 막대한 예산이 사용되므로 이런 추세는 국가적으로도 바람직하며 주민들도 난방비와 전기료를 동시에 절약할 수 있다.

특히 제주와 같이 대형 발전소 터를 찾기가 마땅치 않은 청정 관광지역에서 주거지에 설치되는 소형 열병합 발전은 더욱 유용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제주에 액화천연가스 공급과 함께 분산형 고효율 발전설비를 늘리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또한 현재 제주도 발전량의 1% 수준인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 석광훈
이번 사건은 남동해안의 고리·월성 원전이나 서해안의 태안·당진 석탄발전 같은 몇몇 발전단지에서 수도권이나 제주 같은 수요지로 원거리 송전하는 중앙집중형 전력체제가 갖는 전형적인 문제를 보여주었다. 이처럼 ‘공급지 따로, 수요지 따로’ 식의 구조는 사회적으로도 오염부담자와 수혜자를 분리시켜 형평성 문제를 일으킨다. 정부는 이번 사태를 교훈 삼아 국가 전력수급 정책의 개선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석광훈/녹색연합 정책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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