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어·부·가](29) 아이답다는 것

 인류 역사 속의 성인(聖人)들은 한결같이 어린이는 곧 어른의 거울이라고 가르쳤다. 어린이가 갖고 있는 문제는 대부분 그 부모가 갖고 있는 문제점일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 어른 중심의 세계에서 어린이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서있는 불안한 존재이고, 그 가족은 마음의 길을 잃어 방황하기 일쑤다. 지난 2013년 [제주의소리]에 ‘오승주의 책놀이책 Q&A’를 연재했던 오승주 씨가 다시 매주 한차례 ‘오승주의 어·부·가’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만나기로 했다. 최고(最古)의 고전 <논어>를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부르는 배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이번 연재코너가 어린이·청소년을 둔 가족들의 마음 길을 내는데 작은 힘이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편집자]  

데자뷰

저는 아이를 부모의 타임머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타임머신 삼고 유년 시절을 돌이켜볼수록 아이와 소통이 잘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삶, 생활, 문화, 환경, 스트레스를 부모의 것과 비교해 본다면 아이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모 세대에 비해서 아이들은 어쩌면 더 가난해졌는지도 모릅니다. 용돈을 많이 받아서 지갑은 두둑해졌는지 몰라도 영혼만큼은 작아졌습니다.

자연과 더 멀어졌고 자신만의 시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2~30년 전에는 아이들에게 놀 시간이 더 많이 있었죠. PC방 같은 곳도 없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자연에서 놀았습니다. 자연은 최고의 스승이자 친구잖아요. 아이답게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지금 아이들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부모님들이 맞벌이를 하시기 때문에 아이의 시간을 묶어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초등 1학년 아이의 경우 학교가 끝나면 ‘방과 후 교실’을 하거나 ‘돌봄 교실’에 있으면서 한동안 시간을 보냅니다. 나머지 시간 동안 몇 개의 학원을 돌아다닙니다. 부모님이 퇴근한 이후에야 아이는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많은 가정에서 벌어지는 일이죠. 공부방의 아이들은 자본주의를 사는 가족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감정적으로 불안정한 학생들이 반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불안정의 원인은 대부분 부모의 방치입니다. 부모는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가정을 꾸릴 수 있고, 아이는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받아야만 아이다운 모습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마치 입 안에 걸린 가시처럼 대부분의 부모님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환경이 바뀐 부분은 어쩔 수 없습니다. 관건은 한정된 시간 동안 얼마나 좋은 시간과 경험을 하느냐 하는 점입니다. 아이들은 좋은 환경에서 자랐건 안 좋은 환경에서 자랐건 생명력을 유지하며 자신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부모가 볼 때 안 좋게 보이는 특징도 있을 것입니다.

제 첫째 아이는 눈물이 많고, 둘째 아이는 쉽게 흥분하고 화를 냅니다. 공부방에 다니는 한 친구는 선생님의 말문이 막힐 정도로 말을 잘 하고, 다른 친구는 장난을 잘 칩니다. 이런 특징들이 아이를 ‘관리’한다고 생각하면 단점이 되지만, 아이 자체로 바라볼 때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지금부터 공자가 어떻게 자신의 제자들의 성향을 키웠는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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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보석이 되기까지

공자 본인도 부족함이 많고 열등감 투성이 인간이었지만 그의 제자들은 정도가 더 심했습니다. 공자는 명문 귀족의 자식들을 가르친 게 아니라 농부, 상인, 장인, 군인 등 신분이 낮거나 평범한 자식들을 가르쳤습니다. 공자 스스로도 낮은 신분 출신이었습니다. 당시는 신분제가 급변하고 사회 제도가 무너지던 춘추시대 후기였습니다. 고대의 예법을 연구한 공자가 볼 때 제자들은 불완전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공자는 제자들을 사랑했습니다.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거친 특징들을 이해하고 잘 성장시키려고 노력했죠. 공자들은 제자들을 잘 키워서 정치에 입문시켰습니다. 정치는 특정한 소수자끼리 전수하는 교과서가 아니라 넓은 세계에서 다양한 에너지를 모아야 완성되는 예술이니까요.

계강자가 공자에게 자문했다. “자로에게 정치를 맡길 만한가요?” 공자가 답변했다. “우리 유(자로)는 과가하게 결단해내니 정치를 맡겨도 무방할 것입니다.” “자공은요?” “우리 사(자공)는 세상 이치에 밝으니 역시 흠잡을 데가 없겠죠.” “염구는요?” “우리 구(염구)는 다재다능하니 역시 정치를 맡겨도 좋겠죠.”
- 「옹야」 편

위에 거론한 세 명의 제자는 공자의 자부심과도 같습니다. 정치를 맡겨도 될 정도의 좋은 자질은 하루 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죠. 예컨대 자로의 과감한 결단력은 거칠고 공격적인 성향을 공자가 갈고 다듬은 결과입니다. 좋은 자질과 안 좋은 자질, 장점과 단점의 뿌리는 하나죠. 이 양면성을 이해해야만 아이를 훌륭한 사람으로 키울 수 있습니다. 공자는 “군자는 사람의 아름다운 자질을 키워주고, 나쁜 자질이 자라지 못하도록 한다.”(「안연」 편)고 말하면서 소인(小人)은 거꾸로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자식의 안 조흔 특징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요?

바로 부모입니다. 부모의 덕은 바람이고, 자식의 덕은 풀입니다. 풀은 바람이 부는 대로 나부낄 뿐이죠.(「안연」 편 각색) 자식을 통해 부모 자신의 결함이 드러납니다. 이때 자식의 나쁜 점을 마치 남의 일 대하듯 한다면 절대 고칠 수 없습니다. 자식의 나쁜 점을 고치는 유일한 방법은 그 뿌리인 부모의 나쁜 점을 바로잡는 것입니다.

자식이 훌륭하게 자라길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하지만 실제로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낸 부모는 스스로를 돌아봅니다. 그런 부모님께는 배울 게 참 많죠. 자식의 안 좋은 점을 흉보고, 마치 남 얘기하듯 하는 걸 보고 ‘개구리 올챙이 적 모른다’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자식은 부모 하기 나름입니다.

[어부책]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

2주에 한 권씩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어야 할 그림책”을 게재합니다. 특히 아이에게 다가가고 싶은 부모님들은 꼬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권 한 권 만지작거려봅니다.

10. 겁쟁이 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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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서니 브라운 (지은이) | 김경미 (옮긴이) | 비룡소 | 2006-08-08 | 원제 Silly Billy

어렸을 적 부모님은 참 무서웠습니다. 때로는 더 없이 인자한 모습이지만, 제가 잘못했을 때는 엄격하게 다스렸습니다. 저도 부모가 되고 나서 아이들에게 그런 모습으로 대하는 걸 느낍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손자들에게 다정하게 대합니다. 그림책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손자, 손녀의 관계가 다정하게 그려집니다. 『겁쟁이 빌리』뿐 아니라 『우리 할아버지』 같은 작품을 보면 손자, 손녀와 소통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이 감동적으로 그려집니다. 제가 아이에게 할아버지처럼 될 수는 없지만, 할아버지의 푸근한 느낌을 줄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 부모는 뭐든지 될 수 있는 존재니까요. 우리 아이들에게는 할아버지가 없습니다. 외할아버지와 친할아버지 모두 일찍 돌아가셨으니까요. 저는 아이들이 할아버지를 기억했으면 하는 마음에 자장가를 ‘할아버지의 시계’로 불러줬습니다.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이 노래만큼은 기억할 정도로 불러 주었습니다.

『겁쟁이 빌리』에 나타난 엄마, 아빠와 할머니의 모습은 다릅니다. 엄마와 아빠는 상식적으로 반응하고, 아이의 말을 엉뚱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할머니만큼은 수용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지혜를 다 짜내서 좋은 해결 방법을 찾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어른은 이런 모습일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을 엉뚱하다고 치부하지 않고 진지하게 들어주는 어른, 생각을 모아서 더 나은 생각을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어른. 빌리는 할머니와의 대화에 힘입어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마음 편히 잘 수 있었습니다. 아이의 생각을 긍정하고, 아이를 편안히 해주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기중심주의를 버려야 합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부모 스스로가 아이 앞에서 자기중심적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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