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집 투성이가 된 내 조국의 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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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의 4·3칼럼> (55) ‘미국의 양심’ 세계적인 석학 노암 촘스키 MIT 교수    

제주4·3, 미국이 직접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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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비행장에 도착한 미군정 수뇌부(1948.5.5.).
‘천주교 제주교구장 강우일 주교(사진)는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 의회를 방문해 4·3사건에 미국도 책임이 있다며 상처를 치유하는 데 동참해달라고 요구했다. 강 주교는 이날 민주당 매지 히로노 상원의원과 마크 다카이 하원의원 사무실을 찾아 제주 4·3사건 정부 보고서 영문본을 전달하고 4·3사건 치유를 위한 한·미공동위원단 구성을 제안했다. 강 주교는 의원실 방문 후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정부가 2014년 4월3일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했지만 제주도에서는 4·3사건의 해결이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라며 “4·3 화해의 다음 단계를 위해 미국 사람들이 ‘4·3 정부 보고서’ 등을 보고 당시 책임을 살핀 뒤 화해를 모색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4·3 정부 보고서는 2003년 12월 채택한 것으로 4·3사건의 1차적 책임은 국군 9연대장과 2연대장에게, 최종 책임은 이승만 당시 대통령에게 있지만, 사건 발발과 진압 과정에 미 군정과 주한미군사고문단의 책임도 있다고 명시했다. 강 주교는 사건 발발 67년이 지나서야 미국의 책임을 물으러 오게 된 것에 대해 “국내에서조차 50년간 말도 못하게 하고, 연구도 못하게 한 상황에서 미국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당장 미국의 사과, 보상을 받기는 어렵겠지만 약소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당한 인간적 고통에 대해 바른 소리를 내고, 미국 정부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도록 노력하려는 과정의 일환”이라며 “미국 내 양심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강 주교의 이번 방문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미국 내 수용소에 갇혔던 일본계 이민자들의 후손들의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와이대 법학전문대학원 에릭 야마모토 교수는 수용소 운영에 대해 미국 정부의 책임을 묻고 배상을 이끌어낸 바 있다. 그는 역사 정의 바로세우기의 차원에서 제주 4·3사건 배상 문제에도 연대하고 있다. 강 주교는 4·3사건의 현재적 의미를 알아야 하는 이유로 강정 해군기지 공사를 거론했다. “제주도의 역사를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제주도민들의 의사를 충분히 수렴하지 않고 해군기지를 건설할 생각을 할 수는 없다. 그런 역사를 무시하고 단순히 군인으로서 지금 임무에만 충실하려고 기지를 건설하려 한다면 상처 치유와 화해라는 점에서 이 나라 전체가 한 발도 앞으로 나아가기 어려울 것이다.”-워싱턴 손제민 특파원’-경향신문 2015년 3월 30일

1945년 9월 9일 중앙청에서는 일장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게양되었다. ‘일제 36년’은 막을 내리고 38선 이남 남한에서 미군정 3년이 시작되었다. 당시 미국의 통치방침은 ‘맥아더 포고’에 집약되어 있다. 태평양미국육군총사령관 맥아더는 성조기가 게양되기 전에 이미 ‘조선인민에게 고함’이라는 포고 제1·2호를 발표하였다.

‘포고 제1호/ 조선주민에게 포고함/ 태평양미국 육군최고지휘관으로서 左記와 如히 포고함./일본국 천황과 정부와 대본영을 대표하여서 서명한 항복문서의 조항에 의하여 본관휘하의 戰捷軍은 本日 북위38도 이남의 조선지역을 점령함.오랜동안 조선인의 노예화된 사실과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독립시킬 결정을 고려한 결과 조선점령의 목적이 항복문서 조항이행과 조선인의 인권 及 종교상의 권리를 보호함에 있음을 조선인은 인식할 줄로 확신하고 이 목적을 위하여 적극적 원조와 협력을 요구함.

본관은 본관에게 부여된 태평양미국육군최고지휘관의 권한을 가지고 이로부터 조선 북위 38도 이남의 지역과 동지의 주민에 대하여 군정을 설립함에 따라서 점령에 관한 조건을 左記와 如히 포고함. 第1條 조선북위 38도 이남의 지역과 동주민에 대한 모든 행정권은 당분간 본관의 권한하에서 실행함. 第2條 정부 공동단체 또는 기타의 명예직원과 고용과 또는 공익사업 공중위생을 포함한 공공사업에 종사하는 직원과 고용인은 유급무급을 불문하고 또 기타 제반 중요한 직업에 종사하는 자는 별명있을 때까지 종래의 직무에 종사하고 또한 모든 기록과 재산의 보관에 任할사. 第3條 주민은 본관 及 본관의 권한하에서 발포한 명령에 卽速히 복종할 사.

점령군에 대하여 반항행동을 하거나 또는 질서 보안을 교란하는 행위를 하는 자는 용서없이 엄벌에 처함. 第4條 주민의 소유권은 此를 존중함. 주민은 본관의 별명이 있을 때까지 일상의 업무에 종사할 사. 第5條 군정기간 中 영어를 가지고 모든 목적에 사용하는 公語로 함. 영어와 조선어 또는 일본어간에 해석 및 정의가 불명 또는 不同이 生한 때는 영어를 기본으로 함. 第6條 이후 공포하게 되는 포고 법령 규약 고시 지시 及 조례는 본관 또는 본관의 권한하에서 발포하여 주민이 이행하여야 될 사항을 明記함. 右포고함’ - 1945年 9月 7日 於橫濱 태평양미국육군최고지휘관 미국륙군대장 더글러스 맥아더

‘포고 제2호/ 범죄 또는 법규위반/ 조선주민에게 포고함./ 본관은 本官 지휘하에 有한 점령군의 보전을 도모하고 점령지역의 공중치안질서의 안전을 기하기 위하여 태평양미국육군최고지휘관으로서 左記와 如히 포고함. 항복문서의 조항 또는 태평양미국육군최고지휘관의 권한하에 발한 포고 명령 지시를 범한 자 미국인과 기타 연합국인의 인명 또는 소유물 또는 보안을 해한 자 공중치안 질서를 교란한 자 정당한 행정을 방해하는 자 또는 연합군에 대하여 고의로 적대행위를 하는 자는 점령군군율회의에서 유죄로 결정한 후 동회의의 결정하는 대로 사형 또는 他 형벌에 처함’ - 1945年 9月 7日 於橫濱 태평양미국육군최고지휘관 미국육군대장 더글러스 맥아더

1945년 9월 12일 제7사단장 아놀드(Archibald V. Arnold) 소장이 군정장관에 임명되었다. 제주도의 군정은 11월 9일 제59중대가 상륙하면서 시작되었는데, 제주진주 병력은 장교 7명, 사병 40명 등 47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중대병력은 계속 늘어났으며, 군정중대의 지휘관은 스타우트(Thurman A. Stoout)소령이었다. 그는 제주도사(島司)에 올랐다. 미군정은 조선총독부 체제를 유지함으로써 부일 협력자들을 그대로 존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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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총독부 관장에서 미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장기가 내려지고 성조기가 올라가고 있다.(1945.9.9.).
미군정은 처음부터 4·3을 공산반란으로 몰고 갔다. 윌리암 딘(William F. Dean) 미군정장관도 오라리 방화사건이 일어난 다음날인  1948년 5월 5일 제주시찰 직후 “제주도 외에서 온 공산분자들이 일부 청년을 오도하여 산에 가서 폭동을 일으켜 관리와 선거를 지지하는 자들을 위협 살해하고 있다”며 외지인들의 선동에 의해 폭동이 일어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런데 4·3 발발 당시 9연대장 김익렬 9연대장은 미군정의 공산반란론은 전략적인 이유로 조작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회고록을 통해 “미국 본토로부터 제주도사태 발생에 대한 문책을 받은 미군정은 국제여론을 무마하고 사태를 조속히 진압하기 위해 전략상 ‘공산주의자들의 선동에 의한 반란’으로 규정해야 한다는 제의를 당시 제주 주둔 경비대 책임자인 자신에게 직접 했다”는 증언을 남겼다.

제주4·3 관련 논문을 쓴 존스홉킨스대 존 메릴(John Merril)은 “초토화작전은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 발생했기 때문에 미군이 개입했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지만, 브루스 커밍스(Bruce Cumings) 등 진보학자들은 미군사안전협정에 따라 주한미군이 한국군의 작전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미국은 초토화작전에 따른 양민학살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몸매가 작아 내 누이 같고/ 허리가 길어 내 여인 같은 나라여/ 누구의 하늘도 침노한 적이 없고/ 누구의 영토도 넘본 적이 없는/ 비둘기와 황소의 나라 내 조국이여/ 누가 너를 남과 북으로 갈라놓았느냐/ 누가 네 마을과 네 도시를 아비규환의 아수라로 말들어놓았느냐/ 누가 허리 꺾인 네 상처에 꽃잎 대신 철가시바늘을 꽂아 놓았느냐/ 정전위 판문점에서 너를 대표한 자 누구이며/ 도마 위에 너를 올려놓고 초치고 장치고 포치고 자치고/ 내 조국의 운명을 요리하는 자 누구냐/ 입으로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고/ 뒷점에서는 원격조종의 끄나풀로 꼭둑각시를 앞장세워/ 제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해 싸우는 민중들을/ 계획적으로 (너희들 표현으로는 전략적으로) 학살하는 아메리카여!/ 보아다오, 너희들과 너희들 똘마니들이 저질러 놓은/ 범죄를. 범죄와 음모와 착취로 뒤덮인 이 땅을/ 보아다오, 너희들이 팔아먹은 탄환으로 벌집투성이가 된 내 조국의 심장을/ 보아다오, 살해된 처녀의 피 묻은 머리카락을/ 보아다오, 대검에 찔린 아이 밴 어머니의 배를/ 보아다오, 학살된 아이들의 청량한 눈동자를’ -김남주의 시 ‘학살·1’

‘미국의 폭력’을 주장한 브루스 커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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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루스 커밍스.
“1945년부터 1949년 6월까지 미군이 한국의 군대와 경찰을 지휘통제 했기 때문에 제주섬에서 발생한 모든 학살극과 잔혹행위에 대해 미국은 윤리적 책임 뿐 아니라 실체적이고도 법적인 책임이 있다”-브루스 커밍스, 1998년 3월 14일 제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이른바 ‘분단문학’을 통해 한반도 분단을 꾀하고 한국의 독립을 방해한 나라로 묘사되었다. 한국 지식인들은 1980년대 중반까지 특히 미군정 시기 또는 ‘해방공간’에 대한 한국현대사를 공개적으로 제대로 연구할 수 없었다. 그러나 1981년 <한국전쟁의 기원>을 펴낸 미국인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 (Bruce Cumings)를 비롯한 수정주의 학파의 영향으로 베일이 내려지기 시작했다. 금기를 깨는데 소설가들이 합류했다.”-이재봉 원관대학교 교수, 프레시안 2015년 4월 7일 

브루스 커밍스(1943년 9월 5일~)는 시카고 대학의 석좌교수로 전공은 한국근현대사와 동아시아 국제관계이다. 한국학 박사이자 동료 겸 제자인 한국인 우정은 박사(Meredith Jung-En Woo Cumings)와 결혼하여 두 자녀를 두었다. 그는 미국의 몇 안 되는 한반도 전문가이다. 1960년대 후반,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온 이래 한국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현대사 연구에 몰두해 왔다. 

그는 한반도 내 미국의 역할을 비판적 시각으로 다뤄 주한미군 철수 및 광주민주화운동 미국 개입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1981년 북한을 방문한 경험이 있다. 그가 1981년과 1990년에 펴낸 <한국전쟁의 기원>(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1, 2권은 한국전쟁을 다룬 대표적인 저서이다. 이 책은 1980년대 민주화, 통일, 반미 운동과 맞물려 커다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이 밖에도 <전쟁과 TV>(1993), <한국현대사>(1997), <양지 속의 한국>(1997) 등 다수의 책을 저술했다.  대표적인 것으로 <한국 현대사의 재조명>, <분단전후의 현대사>등이 있다.

그는 38선 확정의 책임은 물론이고 단독정부 수립에 의한 남북 분단 고착화의 책임은 근본적으로 미국에 있다고 주장한다. 해방 이후 냉전이 시작되면서 미국은 한반도에서의 계급 혁명을 저지하고 친미 정권을 수립하여 반공의 보루를 구축하는 데 있다고도 주장한다. 

현대사의 기점이 되는 1945년 8월 15일은 해방된 후 한반도는 혼란을 겪는다. 패전국인 일본의 식민지였던 상황과, 외세에 제대로 대항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혼란을 틈타고 신탁통치안이 논의되었다. 한반도는 분단의 위기와 제주도에서는 일제시대부터 온 적대감정과 미군에 대한 적대감정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감정들이 제주 4·3항쟁의 원인이 되었다. 제주4·3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이 아직도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민중학살에 앞장섰던 자들이 지금도 이 땅의 민중을 지배, 수탈 착취하는 자들과 그 궤를 같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 민중항쟁의 기록은 왜곡되어 있고, 드러나 있지 않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브루스 커밍스는 “4·3이 발발한 뒤 제주도는 미국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다. 이 끔찍한 사건을 진압하는데 로스웰 브라운 등 일부 미국 관리들이 직접 관련되어 원조· 지시· 감독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고통스럽다. 미군 정찰기가 떠다니고 통신부대가 카메라로 폭동진압 현장을 공동 촬영하는 등 미국 개입 흔적이 있다.”고 말했으며, “제주도 사람들에 대한 (배상이) 첫 번째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대학살은) 2차 대전 후 아름다운 섬에서 자기결정권과 사회정의를 위해 싸운 제주도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한 미국정부의 능력을 증거한 첫 번째의 대사건이었기 때문이다.”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노암 촘스키 교수의 제주4·3에 대한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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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암 촘스키.
“제주도에서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 발생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 그리고 1954년 9월 21일까지 있었던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무고하게 희생되었습니다. 저는 위원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조고가 제주도민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고하게 희생된 영령들을 추모하며 삼가 명복을 빕니다.”-제주4·3사건에 대한 노무현 대통령 발표문(2003년 10월 31일) 

‘본인은 대통령의 사과 소식을 듣게 돼 기쁩니다. 본인은 그와 관련된 어떠한 기사도 보지 못했습니다. 본인은 적어도 미국 대통령이 그 곳에 가기를 희망합니다. 미국이 이 끔찍한 비극에 대해 많은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할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인은 부시의 측근 가운데 누가 이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들의 범죄행위를 매우 쉽게 잊습니다. 그렇지만 본인의 견해로 사과는 다른 범죄행위에서처럼 단지 첫 조처일 뿐입니다. 한국에서 향후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할지는 본인이 말할 일이 아닙니다. 향후 조처들은 미국에서 취해져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문제는 너무 이론적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첫 번째 조처가 양식을 가진 미국인들에게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도전적이기 때문입니다.’- 노엄 촘스키가 노무현 대통령의 43사건에 대한 사과와 관련한 의의를 2003년 11월 26일 제주4·3연구소의 요청으로 보내온 내용

‘미국의 양심’ 노암 촘스키(Noam Chomsky, 미 M.I.T.) 교수가 제주4·3사건과 관련 "끔찍한 비극에 대해 미국이 많은 책임이 있으며, 미국 대통령이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메시지 내용이 공개됐다. 이 메시지는 노암 촘스키가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의 4.3 사건에 대한 사과 이후 제주4.3연구소가 2003년해 11월 26일 관련 입장을 요청한 데 따른 답변 형식으로 보내온 것이다. (사)제주4·3연구소에서 발행한 <4.3과 역사> 제3호 특별기고 형식으로 실린 촘스키의 메시지에는 ‘제주4.3에 대한 미국의 책임론’과 ‘미국 대통령이 입장을 표해야 한다’는 직접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진보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노암 촘스키의 4·3 관련 공식 입장 표명은, 미국에서는 한국전쟁 전문가로 알려진 브루스 커밍스에 이어 두 번째로 4·3의 세계화를 위해 매우 진일보한 일로 평가된다. 1948년 11월 중순께, 대규모의 강경진압작전이 전개되었고, 1949년 3월까지 진압군은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상했다. 제주4·3으로 최소 3만 명이 죽었다는 사실은 이제 공론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 문제이다.

제주4·3은 언제 일어났는가? 제주4·3은 미군정 시대 일어났다. 제주4·3 당시 군·경을 장악한 당사자는 누구인가? 미군정은 당시 통치 주체이자 권력 담당자였고, 또 민간인 대량학살을 가져온 강경 진압과 초토화 작전을 입안하였으며, 작전권을 쥐고 있었다. 그 중심에 바로 존 하지 중장이 있었다.

노암 촘스키 역시 “끔찍한 비극에 대해 미국이 많은 책임이 있으며, 미국 대통령이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메시지 내용을 발표하였다. 여기에는 ‘제주4·3에 대한 미국의 책임론’과 ‘미국 대통령이 입장을 표해야 한다’는 직접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미국 대통령의 측근 가운데 누가 이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지 의문”이라며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범죄 행위를 매우 쉽게 잊는다”고 미 정부와 권력의 속성을 비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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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의 기원'.
2012년 11월 6일 미국하와이문화센터에서는 섬 평화문화 콜로키움이 열렸다. ‘정의를 통한 사회적 치유:미군점령 평화시대의 한국제주 양민대학살’이 주제였다. 이 자리에서 에릭 야마모토(Eric Yamamoto) 하와이대 교수가 발표한 내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는 미국 정부가 제주4·3의 대량학살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음을 역설했다. 한국과 미국의 학자, 그리고 자신의 연구로 제주4·3이 명백하게 밝혀졌기 때문에, 오바마 미국정부가 사과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곁들였다.

미국정부는 세계대전 후 미국계 아시아인에 대한 강제구금의 피해자 12만 명에 대하여 배상을 하였다. 1993년 하와의 불법전복과 인권학살에 대하여 하와이 원주민들에게 사과했다. 미국정부가 전후 최고의 인권탄압인 제주4·3에 대하여 사과하고 정의를 통한 사회적 치유에 관심을 갖고 나가야 한다.

“노엄 촘스키(86) MIT 교수가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에 대한 무력 행정대집행 중단을 호소하는 편지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냈다. 한국정책연구소 연구원 시몬 천 정치학 박사에 따르면 촘스키 교수는 박 대통령 앞으로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현장에 있는 농성장을 강제 철거하는 행정대집행을 중지해달라는 내용의 긴급 서한을 발송했다. 촘스키 교수는 4.3항쟁에 대해 언급하면서 “70년이 지난 오늘 같은 폭력의 역사가 제주도에 재현되고 있는 듯 하다”면서 “1월31일 한국군의 지원을 받는 1천명이 넘는 용역과 경찰들이 마을 주민들과 평화 행동가들을 무력으로 해산시키는 행정대집행을 강행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강정 주민들에 대한 무력 행정대집행을 막아주길 진심으로 바란다”며 “대통령님은 과거의 정책에서 벗어나 사회 화해와 통합으로 국민들을 이끌고 인권과 정의를 존중하겠다는 약속을 지켜주길 희망한다”고 호소했다. 시몬 천 교수는 영국 출신 평화 운동가와 노벨 평화상 후보였던 엔지 젤터 등을 포함한 여러 국제학자들도 해군의 강정마을 행정대집행 반대 평화적인 방법으로 해결하길 바란다는 편지를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내고 있다고 전했다.” -민중의소리 2015년 1월 31일

“언론의 움직이는 방식은 대충 이렇습니다. 우선 프로파간다 시스템의 기본사상을 표현하는 일련의 전제조건들을 작성합니다. 그런 전제조건은 냉전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경제 체제나 국가안보에 관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언론은 이 전제조건의 틀 안에서만 논의를 진행시킵니다. 그리하여 언론의 논의라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는 전제조건을 더욱 강화시키고, 나아가 의견의 스펙트럼은 언론이 미리 짜놓은 그 전제조건뿐인 것처럼 대중들을 세뇌합니다. 그것은 노골적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암묵적으로 사전에 전제되어 있는 그런 방식을 따라 진행됩니다. 그것은 주류에 편입되어 있는 사람들을 위한 논의의 틀을 제공하는 겁니다.”-노암 촘스키,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1’ 중에서 

촘스키, 강정마을 행정대집행 중단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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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회포럼에서 연설하고 있는 노엄 촘스키.
“친애하는 박근혜 대통령님: 아시다시피 1948년과 1949년 사이, 40,000명 가까운 제주 도민들이 당시 미국 임시 군사 정부하의 한국군에 학살되었습니다. 그 학살은 50 퍼센트가 넘는 제주 도민들의 주택을 파괴 했고, 40,000 도민들을 피난민으로 일본에 이주하게 했으며, 생존자와 자손들, 가족들에게 비극의 기억과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70년 지난 오늘, 비극과 폭력의 역사가 제주도에 재현되고 있는 듯합니다. 1월 31일 한국군 지원을 받는 1,000명이 넘는 용역과 경찰들이 3,000여명의 해군과 가족들을 위한 새로운 주택을 건설 현장 앞에서 24시간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마을 주민들과 평화 행동가들을 무력으로 해산시키는 행정대집행을 강행할 계획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강정 주민들에 대한 무력 행정대집행을 막아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대통령님은 과거의 정책에서 벗어나, 사회 화해와 통합으로 국민들을 이끌고 인권과 정의를 존중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습니다. 그 약속을 지켜 주길 빕니다. 인도적인 원칙에서 1월 31일 강정 주민들에 계획된 공격을 중지해주십시오, 노엄 촘스키”

노암 촘스키 명예교수가 박근혜 대통령에 친서를 보내 강정마을을 향한 행정대집행 중단을 촉구했다. 그는 박 대통령에게 행정대집행 중단을 요청하는 친서를 보냈다. 그는 4만 명 가까이 희생된 제주 학살 사건을 언급한 후 70년이 지난 오늘 비극과 같은 폭력의 역사가 제주도에 재현되고 있는 듯하다고 밝혔다. 강정에서 수천명의 용역과 경찰을 동원해 평화 행동가들을 무력으로 해산시키려는 행정대집행을 중단할 것을 박 대통령에게 강하게 요청했다.

촘스키 교수가 제주해군기지 건설 계획에 대해 ‘평화 유지에 매우 불길한 징조’라고 밝혔다. 그는 “제주에서 평화의 상징이 될만한 놀라운 과정들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소식에 감동적”이라며 해군기지 반대 활동에 대한 지지를 표명했다. 그는 촘스키 교수는 “제주해군기지 건설로 평화를 위협할 매우 불길한 계획들을 전해 들어 상당히 충격적”이라며 “반대 운동을 하는 제주도민과 평화운동가들의 노력에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고 말했다. 또 “미국에서도 제주해군기지 반대운동을 지원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제주도는 1948년 미군의 강점아래 조국의 분단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항쟁을 일으킨 이후, 약 3만 여명(전 주민의 약 1/9에 해당하는)의 무고한 주민들이 잔인하게 학살당하는 역사적 참사가 일어난 현장이다. 4.3항쟁에 미 정부 역시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단 한번도 인정된 적도 미 정부가 희생자 가족에게 사죄를 표명한 적도 없다. 지난 2003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이 4.3항쟁에 대해 국가차원에서 이를 공식 사과하였고, 이후 제주도는 평화의 섬으로 명명되기까지 했다.’ - 2011년 7월 11일 ‘제주 평화의 섬 지지 성명서’에서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제임스 페트라스(James Petras) 뉴욕주립대학 교수, 리처드 레빈스(Richard Levins) 하버드 메디컬 스쿨 교수, 조지 카치아피카스(George Katsiaficas) 웬트워스 공과대학 교수 등 미국의 지식인 25명은 지난 2011년 7월 11일 ‘제주 평화의 섬 지지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제임스 페트라스는 ‘세계화의 가면을 벗겨라’ 저자이며,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신좌파의 상상력’ 저자로 유명하다. 

그들은 제주도 강정마을에 새로운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10여 년이 넘게 제주 주민들이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도 군사기지화 계획을 재고해달라는 요청을 거부한 채, 주민들의 저항에 폭력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성명서를 시작했다.

‘우리는 제주도를 비무장지대 평화의 섬으로 지켜내기 위해 투쟁하는 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에게 깊은 존경을 보낸다. 우리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비폭력 투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며, 해군기지 건설을 즉각 취소할 것을 요구하는 그들의 투쟁에 적극 동참한다.’ - ‘제주 평화의 섬 지지 성명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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