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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42) 어머니 구순 / 김규중


어머니 나이 구순은

나이 이름 같지 않다

구억리, 구엄리처럼

오래된 마을 이름 같다

손자 손녀들 모여 가족사진을 찍으면

마을 행사 끝나고 팽나무 아래서

기념사진을 찍은 주민들이 현상된다

오랜 세월이 지나

마을 모습도 많이 변했다

둥근 지붕선이 납작 가라앉은

어머니 가슴 같은 빈집이 있는가 하면

어머니 생일상같이 멋진 이층집도 있다

구부러지고 좁은 길이 반듯이 펼쳐졌지만

오른손 검지 모양으로 여전히 구부러진 길도 있다

나이 이름 같지 않은

어머니 구순은

이민을 떠난 자식 걱정으로

마을 입구에는

가로등 하나 켜 놓는다


김규중 : 『시인과 사회』로 등단. 시집으로 『딸아이의 추억』, 『백록담』등이 있음.  

저만치 미수가 바라다 보이는 구순이 되면 그야말로 나고 자란 마을 이름과 다를 바 없지요. 구엄리 혹은 구억리 옆에 조그마한 초가 몇 채 들어선 마을 이름 같습니다.
구순, 하면 아홉 가지를 하늘로 뻗어 올린 아름드리 팽나무 같습니다.
손자 손녀를 대동하고 가족들이 모여 앉아 사진을 찍으면 마치 팽나무 그늘아래 한 솥밥 먹는 식솔들이 오순도순 모여 앉은 형상과 다를 바 없겠지요.

구순을 사는 동안 세상은 가파르게 변했지요. 
둥근 초가는 납작 가라앉아 빈집이 되었고, 더러는 생일상의 케이크처럼 이층집으로 변했지요. 구순의 구부정한 허리와 달리 길은 곧게 펴졌지만 그래도 오른손 검지 같은 구부러진 길도 더러 남아 있지요.
구순이 되었지만 변하지 않는 건 자식 걱정인가 봅니다. 
행여 밤길 잃지 않을까 날마다 가슴에 가느다란 등불 하나 켜놓습니다.
당신의 어머니가 그렇습니다. / 김수열

김수열: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김규중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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