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국정화 결정 후 더욱 강경해진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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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시민사회가 지난달 4일 개최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고시 규탄 기자회견. ⓒ제주의소리DB

이름 없는 집필진

결국 국사책 국정화가 강행됐다. 애초부터 국정화를 맘먹은 정부에게 국민들의 의견수렴을 위한 국정화 행정고시기간은 단지 요식적인 절차에 불과했다. 그 기간 동안 의견수렴을 전담하는 교육부의 팩스는 아예 꺼져있었고, 국가적 긴급사태에나 꺼내 쓸 수 있다는 예비비를 편법적으로 집행해 국정화 홍보를 위한 정부의 대대적인 언론광고만이 있을 뿐이었다. 국민과의 소통을 단절해 온 이 정부의 독선적 행보의 단면이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최고 권력의 의사만이 지배하는 이 정부에게 장식적 문구에 불과했다.  

국정화 집필진의 공모 및 선정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의 보도 자료로는 응모자가 17명, 초빙자가 30명 정도라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이것만으로도 집필진의 대부분이 정부의 의사대로 결정됐다는 것을 입증한다. 정부는 집필진 중 역사전공 교수나 학자가 몇 명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국정화 강행의 직접적 단초가 된 근현대사는 과연 전공자가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 대부분의 집필진에 대한 신상을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정부의 방침도 우습다. ‘올바른’ 교과서를 쓰는 ‘올바른’ 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름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고 마치 도둑질이라도 하는 듯 자꾸 숨으려고만 드는지 이해 못할 일이다.

국민이 국민이 아니다?

여기에다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된다”는 대통령의 발언도 국정화의 논란을 전혀 식히지 못했다. 권력이 정치를 넘어 사학계의 영역인 역사의 바름과 그름까지 판단하는 권한까지 지닐 수 있는지는 여전히 납득시키지 못했다. 또 대통령이 강조하신 “정상적인 혼”은 비문(非文)의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도대체 누구에게 있다는 것일까. 그간의 맥락을 보건데 이름을 숨겨가며 비밀결사활동을 하듯 국정교과서를 쓰는 집필진 같은 사람들의 혼을 정상적으로 생각하지나 않는지 모르겠다. 이른바 ‘올바른’ 국사교육이라는 게 민주국가에서 자신의 정당한 주장마저 표명하지 못하고 권력의 입맛대로 수동적으로 따르는 국민들을 양산하는 것이라면 이런 국민들에게 정상적인 혼은커녕 민주시민으로서의 의식조차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 여당 의원들은 대통령의 말씀을 복음으로 받드는 전도사를 자처하는 모양새가 꼴사납다. 민의를 대변하는 게 본연의 책무인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을 계도하려고만 든다.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토론은 없고 종북몰이로 윽박지르려는 태도로 어떻게 국민들을 설득시킬 수 있겠는가. 심지어 한 중진의원은 “국정화를 반대하는 국민은 국민이 아니”라고 망발까지 서슴지 않았다. 비록 우리의 민주주의가 외국 언론들의 비웃음거리가 돼 버린 게 현실이지만, 국회의원은 법적으론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국민의 ‘종복(從僕)’에 불과하다. 국회의원이 국민들에게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는다고 대놓고 타박하는 것은 “개가 주인을 무는”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위임받은 권한을 만만한 국민들에게 행세하는 데만 골몰하는 사람들이 핵심 정치인으로 설치는 나라에서 누군들 살고 싶어 살고 있을까. 요즘 젊은이들의 유행어인 “헬조선”은 그냥 나오는 소리가 아니다.

남 탓만 하는 정부

여당대표도 그에 뒤지지 않았다. 그는 “선배 세대가 일궈 놓은 자랑스러운 영광의 역사가 지금의 역사교과서에서 암울하게 평가되는 것을 묵과할 수 없다”며 권력 없는 학자들과 국민들의 권위에 오만한 권력을 휘둘렀다. 특히 ‘헬 조선’이란 말이 유행되고 있는 원인을 ‘잘못된 역사교육’ 탓으로 돌린 것은 그분이야말로 ‘혼 교정’ 수술이 시급한 것 같다. 청년들이 일생을 비정규직으로 살아야 하는 신세를 한탄하는 것이 어떻게 그의 눈에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대선공약을 지키지 않은 정부가 아니라 잘못된 역사교육 탓으로 보이는 것일까. 부의 불균형이 사상최악을 달려가고 있는 데 정부는 대선공약인 경제민주화는 지키지 않고 오히려 재벌에만 특혜를 주는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청년들만이 아니라 서민이라면 누구라도 입에서 저절로 ‘금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사회의 엄연한 현실이다. 이전 정부들의 사례를 샅샅이 찾아보더라도 이번 정부만큼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남 탓만 하는 정부를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지난 달 민중집회에 참가한 국민들에게 과격하게 대응했던 것일까. 설사 그렇다고 치더라도 시위참가국민들에 대한 정부의 매는 너무나 가혹했다. 경찰은 시위대에 우리나라의 국가적 위기에 대한 모든 책임을 씌우듯 진압용 물대포를 통해 엄청난 양의 물을 쏟아부어댔다. 그날 하루에 물대포로 뿌려댄 물의 양이 작년의 총량보다도 훨씬 많았다고 한다. 더욱이 한 나이든 농민은 쌀값 폭락을 항의하기 위해 집회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살인적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지금도 사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아직도 공식적인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일보다 국민들의 혼을 교정시키는 것이 더 중요한 임무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국민이 국민이 아니”라는 여당의원의 말이 결코 허언(虛言)이 아닌 것이다. 급기야 대통령은 마스크를 쓴 집회참가자들을 IS 테러리스트에 비유해 경악한 외국 언론들의 토픽기사로 부상했다.

양미년의 마지막 달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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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그뿐만 아니다. 현재 진행 중인 세월호 참사 청문회는 세월호 유족들의 안타까운 절규에도 불구하고 지상파 방송사들의 철저한 외면 속에서 정부책임자들은 하나같이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 국회에서는 서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노동법 개정안과 국민들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테러방지 법안을 야당과의 합의절차 없이 직권 상정시키기 위해 정부와 여당의원들이 국회의장을 압박하고 있다.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그 농민의 실낱같은 목숨이 산소호흡기로 하루하루 연명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 민주주의의 현위치가 아닐까. 눈을 들어 벽을 쳐다보니 금년 양미년 달력에는 어느덧 12월의 마지막 한 장만이 위태롭게 걸려 있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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