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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43) 바람은 못다 한 어머님의 말씀 / 김순선



바람 부는 날은
가끔 어머니 생각을 합니다
바삐 길을 가다
문득, 일러주고 싶은 말이 있어
가던 길 되돌아와
당부의 말씀 남기듯
창문을 흔듭니다

어떤 날은
슬며시 찾아와 놀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숨 가쁘게 달려와 헐떡이듯
세차게 흔듭니다
어떤 날은
야단치듯 노하셔서 덜컹덜컹
꾸짖기도 합니다

오늘은 크리스마스 전날 밤 스쿠루지를 찾아간
유령 같은 바람으로
어서,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애원하듯
나무들도 양팔 들어 온몸 흔듭니다


김순선 : 『제주작가』로 등단. 시집으로 『위태로운 잠』, 『저, 빗소리에』등이 있음. 

바람찬 날이 많아졌습니다.
어떤 날은 바람 끝이 시리도록 매섭습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어머니는, 어떤 날은 슬며시 찾아오기도 하고 어떤 날은 숨 가쁘게 달려오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노하셔서 덜컹덜컹 꾸짖기도 하십니다.

어느덧 누군가의 어머니가 된 시인도
바람찬 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시인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창가에 다가서 있겠지요. 
행여 감기에 걸리지나 않을까, 밤길에 헛디디지나 않을까, 바람 아래 달빛이 되어
시린 눈 비비면서 방안의 불빛이 고요해질 때까지 창가를 서성이겠지요. 
하얗게 밤을 지새겠지요. / 김수열

김수열: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김순선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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