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인문학 기자단 '와랑'] 고입선발고사를 치르고 나서/김수빈 서귀중앙여중 3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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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학년도 고입선발고사 시험지와 수험증. ⓒ김수빈
지난 18일, 나는 수능 때보다 더욱 매서운 추위를 뚫고 ‘고입시험’을 봤다. 덜컹대는 버스 맨 뒷자리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빼곡하게 예상문제들을 정리해놓은 수첩을 연신 들여다봤다. 어느새 시험을 볼 학교에 도착하고, 버스에서 내려 선생님들의 응원과 코코아 한 잔을 받아 들고선 고사장으로 들어갔다. 정신없이 9과목의 시험을 보고, 긴가민가하던 문제들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며 학교를 빠져나왔다. 시험이 끝나도 그날을 생각하면 손에 땀이 고인다.

도대체 고입 시험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나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고입 시험의 정식 명칭은 ‘고입선발고사’이다. 말 그대로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보는 시험이다. 흔히 연합고사라 말하기도 하며, 평준화 지역과 비평준화 지역에서 실시된다. 평준화 지역은 지원하고자 하는 여러 학교를 1지망, 2지망 순서로 쓰고 무작위로 뽑는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뺑뺑이’를 돌리는 것이다.

반면 비평준화 지역은 한 학교만 지원할 수 있으며 만약 그 학교에 뽑히지 못하면 학생 수가 비어 추가모집을 하는 외곽지역의 고등학교로 갈 수밖에 없다. 나는 비평준화 지역인 서귀포에 거주하기 때문에 평준화 지역의 아이들보다 좀 더 긴장했다. 그러나 이번 고입은 문제가 쉽게 출제되었다. 나를 비롯한 내 주변의 아이들은 거의 20점 이상 점수가 올랐다. 고입도 점점 수능처럼 쉽게 출제되는 것 같다. 저번 고입이 쉬웠으니 이번 고입은 어려울 거라며 내 잠을 설치게 했던 긴장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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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입 시험을 준비하느라 팔자에 없는 줄 알았던 독서실도 다녔다. ⓒ김수빈
현재 제주도에서는 내신 50%, 고입 시험 성적 50%를 반영해 총점을 매긴다. 그러니까 내신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진다면 시험을 잘 봐서 내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면 되는 것이다. 그것이 고입 시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고입 시험 준비를 하면서 학업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고입의 장점보다는 단점인 부분이 더욱 잘 보였다. 조금 놀려고 해도 ‘3학년이니 공부해야지, 고입 걱정해야지’하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잔소리는 내가 정말 중학교 3학년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줬다. 한번도 다닐 생각을 해본적 없던 독서실도 고입 시험 때문에 처음으로 다녔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지만, ‘집-학교-독서실-집’의 굴레 안에서만 하루를 보내는 것을 그다지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번에 고입을 본 3학년들은 일명 ‘밀레니엄 베이비’라 그런지 학생 수가 굉장히 많았다. 가고 싶은 시내권의 학교 수는 적고, 학교의 인원은 한정되어 있고, 그 학교에 떨어지면 곧장 외곽행이다. 그러니 올해 경쟁은 유난히도 치열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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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여섯 살 수험생에게 고입 경쟁의 무게란. ⓒ김수빈

며칠 전, 2018년도부터 고입 시험이 폐지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러니까, 올해 초등학교 6학년들은 내신 100%의 성적을 가지고 고등학교를 간다는 뜻이다. 몇몇 지역을 뺀 대부분의 지역에서 더는 고입을 보지 않는 상황에 제주도도 고입 시험을 폐지해야한다는 의견은 좋았지만, 그에 대한 제주도교육청의 근거 중 ‘사교육비 증가’에 대해선 공감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처럼 이렇게 교육열이 대단한 나라에서 고입 시험 하나 안 본다고 사교육비가 증가하는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고입 시험을 폐지한다고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내신 100%로 고등학교를 가기 때문에 학생들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면도 있다. 그로인한 스트레스는 어쩌면 고입을 보는 스트레스와 맞먹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모든 일에는 다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좋게 본다면 고입 시험을 폐지함으로써 학생들이 원하는 ‘시험 없는 세상’에 한 발짝 더 다가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유비무환이라는 말도 있듯이, 고입을 폐지해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 미리 대책을 세워놓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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