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의 바다] 아홉 번째 강연 허남춘 제주대 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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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남춘 제주대 박물관장이 아홉 번째 '인문의 바다' 강연을 맡았다. ⓒ제주의소리
1만8000 신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제주. 이는 비단 뭍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섬인 만큼 제주 곳곳에 다른 지역에서는 만날 수 없는 독특한 해양신화들을 품고 있다.

지난 29일 열린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APOCC, 원장 주강현)과 [제주의소리]가 공동으로 진행하는 '인문의 바다' 아홉 번째 차례에 허남춘 제주대 박물관장이 '인문의 바다에서 해양신화를 말하다'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허 관장의 설명에 따르면 제주의 신화 대부분은 신이 땅에서 솟아난다. 신이 천상계에서 하강하는 신화는 많지만, 땅에서 솟아난 이야기는 드물다. 대만, 인도네시아 등 비교해 봐도 제주만큼 풍부한 곳이 없단다. 비교 연구를 하려면 세계의 신화학자들이 제주를 기점으로 삼을 정도다.

탐라국 건국신화에는 땅에서 솟아난 원시적 요소와, 문명을 받아들여 나라를 세운 고대적 요소가 섞여 있다. 탐라국 삼여신이 망아지와 송아지, 그리고 오곡종자를 가져왔다는 것은 고대문명을 전했다는 의미이다.

고려 왕건의 탄생신화인 [군웅본풀이]가 제주에도 남아 있다는 것은 당시 제주 민중의 세계관을 드러낸다. 군웅이 우리나라와 제주에만 국한하지 않고 중국(강남천자국)과 일본(일본국)에서도 신격으로 활약하는 내용이다.

허 관장은 "당시 제주 민중의 세계관은 한반도가 있고 양쪽에 일본과 중국이 있다고 하는 지리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뜻으로 탐라국이 지녔던 해상능력도 가늠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여러 신화에서도 탐라국의 해상 능력을 엿볼 수 있다. 

허 관장은 "송당본풀이에서 궤네깃도(문곡성)은 강남천자국에서 출자하는데, 강남천자국은 중국을 가리키는 것이다. 제주는 바닷길로 늘 중국에 닿았다. 강남천자국이 중요한 신이 오는 출발점이 되는 이유는 무엇이냐면 좀 더 권위 있는 신격의 등장"이라고 말했다.

탐라는 중국과 일본만을 교역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교역처일 가능성이 크다. 해발 1950m의 한라산은 시인거리가 약 100마일이나 되어 주변 해역을 항해하는 선박들에겐 자기 위치를 측정하고, 항로를 결정하는 데 매우 이상적인 등대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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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남춘 제주대 박물관장이 아홉 번째 '인문의 바다' 강연을 맡았다. ⓒ제주의소리
허 관장은 "1928년 산지항 축조공사 시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로 탐라가 일찍부터 고대국가로 발전하고 정치적 역량과 군사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며 "탐라는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백제, 신라, 일본, 중국과 외교관계를 갖고 왕래하며 교역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허 관장은 "탐라국은 중세화 되지 못해서 망했지만 그렇기에 민속신앙과 신화가 잘 지켜졌다. 중세화된 지역들은 고대 신앙이나 신화가 사라져버렸다"며 "기록에 남지 않아도 구전신화에서 탐라의 역사를 복원할 수 있다. 기록성과 더불어 구비성도 중시해야 한다"며 탐라 역사의 복원을 강조했다.

허 관장의 설명에 따르면 제주만큼 풍부하고 다양한 신화는 드물다. 그리스로마신화는 기록으로 남은 신화지만 제주는 여전히 노래로 불리는 살아있는 신화다. 다양한 신을 모시는 심방과 다양한 당골(신앙민)을 갖추면서 여전히 380개 정도의 신당이 남아있다.

허 관장은 "바다를 통해 식물과 사람과 문명이 오고갔다. 제주 신화 속에 해양문화가 담겨있다"며 "역사적 기록과 함께 살펴본다면 제주는 태평양을 향한 교두보"라고 말했다.

이어 허 관장은 "대륙의 한 자락에 머무는 반도에서 벗어나 해양의 시대에 걸맞은 해양 정책과 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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