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올해의 제주 키워드] ⑤김석범 선생…4.3 외길 문학인을 거부하는 대한민국

2015년 을미년, 청양의 해는 양처럼 온순하고, 온유하길 빌었지만 120년전 을미년처럼 한국사회와 제주사회엔 격랑이 일었다. 교수사회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혼용무도(昏庸無道)'를 꼽을 정도다.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가오는 병신년(丙申年)은 무사안녕의 해가 되길 기원하면서 <제주의소리>가 2015년 제주사회를 관통한 ‘5대 키워드’를 선정해 정리했다. [편집자 주]

그의 삶은 오롯이 제주4.3의 진실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외길에 바쳐졌다. 4.3이 일어난 지 68년. 그 시간의 대부분이라고 할 약 60년을 4.3 글쓰기를 통해 역사와 인간의 문제에 천착해온 노구(老軀)의 소설가는 조국에선 여전히 환대받지 못하는 유민(遺民)이다. 

재일(在日) 문학인 김석범(90) 선생. 평생 조국의 혼(魂)을 사그라져선 안 되는 불씨처럼 가슴에 품고 살아온 구순(九旬)의 소설가 김석범 선생을, 2015년 조국 대한민국이 또 한 번 버렸다. 

현재 일본 도쿄에 거주 중인 김석범 선생에 정부는 지난 10월 13일 여행증명서 발급을 거부했다. ‘반(反) 국가적 발언’이 이유였다. 아니다. 더 적확히는 이 정부와 극우세력의 ‘4.3흔들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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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일문학인 김석범(90) 선생 / 사진 = 김기삼 ⓒ제주의소리

반국가적 발언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면 4.3흔들기임이 더욱 선명해진다. 지난해 정부가 4.3을 국가추념일로 지정했고, 올해 첫 제정된 제주4.3평화상의 첫 번째 수상자 역시 김석범 선생이다.  

선생은 마치 ‘기억의 자살’처럼 금기시되던 4.3을 약 60년전부터 문학작품을 통해 그 진실을 알려왔다. 1957년 발표한 그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인 《까마귀의 죽음 鴉の死》은 4.3을 다룬 최초의 소설이다. 이후 20여 년에 걸쳐 완성된 대하소설 《화산도》의 마중물과 같은 의미 있는 작품이기도 했다. 

특히 화산도는 그의 필생의 대작으로, 원고지 총 2만 2000여 장. 2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의 수고로움을 더한 노작이다. 1976년부터 일본 《문학계》에 연재를 시작, 1997년에 7권으로 완간된다. 이 작품은 1997년 전(全) 7권으로 일본 문예춘추사에서 출간돼, 아사히신문의 ‘오사라기지로(大佛次郞)상’과 마이니치신문의 제39회 ‘마이니치예술상’ 등 일본 내 권위 있는 문학상을 잇달아 수상했다. 

이는 김석범 개인의 작가적 명예와 문학적 성취를 동시에 이뤘다기 보단, 해외에서 4.3의 불씨를 되살려내 국내에서 4.3을 다시 조명하게 했고, 이를 통해 정부의 4.3 진상조사와 제주도민과 4.3유족에 대한 국가원수의 공식 사과, 4.3국가추념일 지정 등 새로운 4.3의 역사를 가장 앞에서 이끈 원동력이다. 그런 그가 반국가적 발언을 했다하니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선생은 지난 4월 4.3평화상 수상 소감에서 “(이승만 정부가) 남한만의 단독정부, 반공이 국시인 대한민국, 그 정부의 정통성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제주도를 소련의 앞잡이 빨갱이섬으로 몰았다”며 “친일파, 민족반역자 세력을 바탕으로 구성한 이승만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할 수 있었겠느냐”고 열변을 토했다. 

이 발언을 두고 새누리당 하태경 국회의원을 비롯해 보수·극우 단체들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제주도 감사위원회가 4.3평화상에 대해 감사까지 진행하는 코미디까지 벌어졌다. 새로울 것이 없는 수상소감이었다. 문학작품 속에서 4.3의 진실에 대해 늘 해왔던 말이다. 

블랙코미디다. 정부의 입국 거부로 선생은 지난 10월 16일 서울에서 열린 《화산도》 국제학술심포지엄과 12월 5일 제주에서 열린 《까마귀의 죽음》 출판기념회에도 조국 땅을 밟을 수 없었다. 

그의 국적은 현재 ‘조선적(朝鮮籍)’이다. 쪼개져 두 나라가 된 남과 북, 분단된 어느 한 곳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분단 이전의 조선인으로 살고 있다. 결국 그의 육신은 실존하지만 그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재일동포 시인 김시종(87) 선생은 “4.3을 입에 오르내리지도 못하던 군사독재시절부터 4.3을 오롯이 작품에 담아온 김석범 선생이 물꼬를 텄기에 4.3진상보고서가 나왔고, 4.3이 국가추념일로 되는 단초를 놓은 것인데, 4.3의 선구자를 배척하는 이 나라, 과연…”이라고 혀를 찼다. 

김석범 선생은 말한다. “4.3 흔들기는 그들의 최후의 발악입니다. 이제는 4.3의 완전 해방의 바른 길을 막아설 수 없습니다. 그들의 최후 발악을 저 낭떠러지에 집어 던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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