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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45) 어떤 자세 / 김광수

나무 한 그루 죽었다

한 줌 재가 되어

괭이자루가 되어

떳떳이 살아났다

세상의 모든 것들

언젠가는

남을 위해 도와주려는

그런 자세로 있다

눈 덮인 마당에 들어선

바람도 그랬다

반겨주지 않고

관심도 주지 않아

섭섭해 하면서도

그저 바람일 뿐이라며

허공을 맴돌다

눈에 파묻혀 떨고 있는

풀잎에 다가가

떠돌며 얻은

미온의 입김을 불어넣어

꽃피워 올렸다 봄을


김광수 :『문학21』로 등단. 시집으로 『끼리끼리 공화국』,『바닷가 동백나무』등이 있음.  

지상에 살아있는 것들의 전생을 생각합니다.
지금의 삶이 의미가 있다면 그의 전생이 아름다웠기 때문이겠지요.죽은 나무를 생각합니다. 
세상의 그늘이 되어 한 생을 넉넉하게 살아온 나무는 죽어
어느 가난한 집의 아궁이에 들어가 뜨겁게 삶을 동여맵니다.
그러는 사이 아랫목은 따뜻해질 것이고 그 온기로 추운 계절을 건널 수 있겠지요.

바람의 생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누가 눈여겨보지 않아도 바람은 낮은 곳을 떠돌다가 눈에 파묻혀 떨고 있는 풀잎에
입김을 불어넣어 봄을 피울 수 있도록 따뜻한 손길을 내밀겠지요.
당신의 삶 또한 틀림없이 그러하리라 믿습니다. / 김수열

김수열: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김광수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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