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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가 우리 곁으로 온다. 매주 한편씩. 시보다 사람이 큰 시인 김수열. 제주 섬에서 나고 자란 그가 30여년 정들었던 교단을 떠나며 시를 담은 도시락(島詩樂)을 들고 매주 월요일 아침, 독자들과 산책에 나서기로 했다. 살다가 시가 된 제주 시인과 그들의 시를 김수열 시인이 배달한다. 섬(島) 시인들이 토해 낸 시(詩)가 주는 소박한 즐거움(樂)이 쏠쏠할 테다. 시 낭송은 시를 쓴 시인이 직접 맡고, 김수열 시인은 시 속에 살아 숨 쉬는 소리를 끄집어내 우리에게 들려주기로 했다. 우리의 일상과 너무나 가까운, 우리의 생각과 너무나 닮은 시인의 목소리로. 한 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가슴을 든든히 채워줄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 산책’에 <제주의소리> 독자들도 함께 동행하길 기대한다. [편집자] 

[김수열 시인의 도시락(島詩樂) 산책](46) 달맞이 / 김혜승


두 해 전이었어요. 정월 대보름에 산방굴사를 찾았지요. 108배를 하던 중에 툭, 염주 줄이 끊어지는데, 숨이 멎는 듯 내려앉는 심장이라니

불교용품점에 가서 수리를 부탁했지요. 그런데 보살님이 비용을 받지 않는 거예요. 무심히 돌아와 부처님 옆에 염주를 올리고 기도했습니다. 그해 우리 가족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면서요.

비용을 천 원이라도 내고 왔더라면 명이 더 이어졌으려나…

기어게 살암시믄 살아진다. 살면서 새끼들은 버리지 말라이, 새끼만 버리지 않으면 되여.

밑도 끝도 없이 마음이 가라앉는 날이면 찾아가는 산방굴사
우연히 만난 할머니와 속내를 풀어내고 내려오는 길
사계마을 향해 온몸 기울어진 소나무 사이로 둥근달 환하다.


김혜승 : 『문예운동』으로 등단. 시집으로 『서랍에서 치는 파도』가 있음. 

예감이라는 말을 생각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기 전에 암시적으로 또는 본능적으로 미리 느끼는 감정이지요.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빌어보지만 그 어떤 일은 숨이 멎을 틈도 없이 일어나고야 맙니다.
염주줄이 끊어진 것도 그렇고 끊어진 염주줄을 수리하는데 비용을 받지 않는 것도 이상한 예감으로 다가옵니다.

살암시믄 살아진다고, 새끼들만큼은 버리지 말라는
다시 찾은 산방굴사에서 우연히 만난 어느 할머니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내려옵니다.
소나무 사이로 둥근 달이 환하게 그를 감싸 안습니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가야할 것 같습니다.
이 밤도 달이 환했으면 좋겠습니다. / 김수열

김수열: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어디에 선들 어떠랴』, 『생각을 훔치다』, 『빙의』 등이 있음. 제4회 오장환문학상 수상.

* 시·시낭송 / 김혜승 시인
* 도시락(島詩樂) 배달 / 김수열 시인
* 영상 제작 / <제주의소리> 박재홍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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