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⑦ 예술가 떠나자 활력잃은 덤보...원도심정책 재검토해야

새해 첫 달 제주시 원도심에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교차한다. 좋은 소식은 국토교통부가 선정한 ‘2016년도 도시재생공모사업’에 제주시 계획이 뽑혀 향후 5년간 200억원이 투자될 계획이라는 것이다. 

나쁜 소식은 2010년 구 코리아극장에 둥지를 틀고 칠성로 재생에 기여해온 제주영화문화예술센터가 2017년 3월 이후 현공간의 임대계약이 힘들다는 소식이다. 건물주가 바뀌면서 그동안 저렴한 임대료로 유지됐던 공간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고 한다.

▲ 제주영화문화예술센터가 들어선 건물과 왓집. 원도심 재생의 두 주체가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20세기 후반 이후 낡은 도시공간을 활성화시키는 데 문화예술만한 것이 없다는 점이 여러 곳에서 증명됐다. 뉴욕, 런던, 도쿄, 파리 등 오래된 도시의 일부는 점차 슬럼화 될 수밖에 없고, 허름한 동네에 예술가들이 들어와 사람냄새를 풍기고 동네가 북적거리고 결국에는 중산층이 들어와 사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이 떠나고 새로운 중산층이 점유하는 현상)이 진행되곤 했다. 

가난한 예술가가 찾는 동네는 필연적으로 재생됐고, 궁극적으로 부동산 값이 오르고, 도시가 활성화되곤 했다. 한때 활황이었던 지역이 슬럼화를 거쳐, 문화예술의 기를 받아 결국 다시 활성화된다는 공식이 만들어진 것이다. 

이 공식을 만든 사례를 들여다보면 여러 주체가 개입돼 비슷하면서도 다른 방식으로 지역마다 다르게 진행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주도로 대규모 예산을 투여한 곳이 있는가하면, 지역주민과 예술가가 주도한 사례도 있고, 국공립 문화공간과 사립 문화공간이 적절하게 개입해 시너지 효과를 낸 곳도 있다.
 
뉴욕 덤보(DUMBO)는 민간이 주도한 도심 재생이 두드러지는 곳이다. 덤보는 맨해튼에 가까운 브루클린 강변에 있다. 정확히 맨해튼 다리와 브루클린 다리 사이에 있는 동네로 20세기 초반 공장과 창고로 활황을 누리던 지역이다. 제조업이 뉴욕에서 철수하면서 이 동네도 슬럼화 되기 시작했고, 낡은 건물이 들어선 거리에 가난한 예술가와 주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반, 덤보에 온 가난한 예술가 중에 캐나다 출신의 조이 글리든이 있었다. 예술가 동네에 문화공간이 필요하다고 느낀 글리든은 건물주를 만나 전시공간을 타진했고, 이미 1970년대 이후 맨해튼 소호가 예술가 덕택에 예술지구로 성공한 사례를 지켜본 바 있는 부동산 소유주는 흔쾌히 건물 1층을 무료로 내준다. 

그렇게 탄생한 덤보 아트 센터는 1997년부터 2012년까지 이 동네의 주요 문화공간이었다. 대부분의 뉴욕의 대안공간처럼 덤보 아트 센터도 각종 재단의 기금을 받아서 전시를 개최하고, 전시홍보와 직원 월급 등 유지비를 확보했다. 1998년부터는 덤보 아트 페스티발을 개최해 거리미술, 전시, 오픈 스튜디오, 공연 등 다채로운 행사로 수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 모으기도 했다. 

▲ 덤보의 거리, 젠트리피케이션이 된 후의 모습, 2014년 여름.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필자가 글리든을 만난 것은 2003년경, 한국문화원에 기금을 받고자 찾아왔을 때였다. 당시 덤보에는 글리든의 센터 이외에도 여러 개의 문화공간이 자리를 잡고 있었고, 덤보 아트 페스티벌 역시 성황리에 개최되고 있었다. 그러나 오른 임대료 때문에 예술가의 작업실이 줄어들고 있었고, 리모델링한 건물에는 맨해튼에서 넘어 온 화이트 컬러 직장인들이 살고 있었다. 글리든은 2006년 덤보를 떠났고, 2012년 덤보 아트 센터는 문을 닫았다. 덤보 아트 페스티벌 역시 2015년 종료된다. 덤보의 재생에 기여했던 문화공간과 행사의 종료는 올라간 임대료 때문은 아니었다. 브루클린의 공무원들이 계속 유지해달라고 요청했고, 임대료 역시 무료였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술가들이 떠나자 문화공간의 존립 이유가 사라졌고, 페스티벌 역시 지나치게 비대해지자 기업체의 개입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변한 동네에서 과거처럼 운영비를 확보할 추진력 있는 인물을 찾는 것도 어려웠다.     

제주시 원도심 활성화에도 민간주도의 재생이 필요한 때이다. 관 주도로 임대한 공간의 경우 유독 빨리 임대료 문제에 봉착하는 것 같다. 제주영화문화예술센터의 경우 임대 7년 만에 공간을 옮겨야 하는 위기에 처했고, 2012년 시작된 관덕로 6길의 문화예술의 거리도 유사한 위기에 처해 있다. 

관이 주도적으로 빈 점포의 임대료를 지원하고 예술가, 예술단체를 유치하면서 어느 정도 문화예술 거리의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했으나 문화예술의 거리가 형성되기도 전에 오른 임대료 때문에 2015년 들어 빈 점포를 찾지 못해 더 이상 예술가 유치가 힘들게 됐다고 한다. 그나마 이미 입주한 단체와 예술가도 향후 임대계약이 끝나면 현재의 임대료로 계속 상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한다. 

반면에 자생적으로 생겨난 민간주도의 문화공간은 원도심 곳곳에서 어려운 여건에도 조금씩 지원금을 찾아서 꾸려나가고 있다. 뉴욕 덤보의 예처럼 민간주도의 재생은 참여자 모두에게 자긍심을 준다.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예술가와 부동산 소유주들이 현실적으로 타협하면서 동네를 일구어 나갈 때 지속력이 커진다. 지나치게 관주도로 인위적으로 진행할 경우 수혜자들의 욕망을 자극하면서 문화예술의 자생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 아라리오 미술관 동문모텔 I이 들어선 거리. 슬럼화된 골목에 우뚝선 빨간 건물이 미술관이다. 사진=양은희. ⓒ제주의소리

대신에 여러 주체들이 참여해 원도심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관의 역할일 것이다. 밤이면 휑한 원도심에 예술가들이 살면서 온기를 퍼뜨릴 수 있도록 원도심 곳곳에 숨어있는 낡은 폐가를 구입, 개축해 ‘예술가의 집’으로 제공하고, 제주도와 시가 보유한 원도심의 자투리 땅을 예술가에게 무료로 빌려준다거나, 부동산 소유주들이 스스로 공간을 예술가와 문화단체에 무료로 임대하고 동네를 활성화하는데 앞장서도록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새해 초 영화문화예술센터의 소식은 기존의 원도심 정책을 재검토할 때라는 신호일 것이다.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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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시절 미술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영어교육학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예술과 철학에 대한 호기심을 포기할 수 없어서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까지 공부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졸업한 뒤 서울, 뉴욕 등 세계를 다니며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 그동안 큐레이터, 갤러리 디렉터, 프로젝트 매니저, 교수 등 미술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하면서 예술과 사회의 역학관계를 체험하고 연구하고 있다. 11년간 체류한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조명한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를 저술했으며, 『개념미술』(2007)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현재는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를 돌면서도 언제나 마음은 고향을 향해 있었다. 특히 요즘 문화예술의 섬으로 떠오르는 고향 제주를 주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를 통해 글로벌 시대의 제주의 문화예술 비전을 고민하는 일은 또다른 고향사랑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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