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놀이책 Q&A’로 책과 함께 즐겁게 노는 법을, ‘어부가’로 <논어>에 담긴 가족 생활의 지혜를 전하고 있는 오승주 작가가 이번에는 ‘그림책’을 펼쳐보입니다. ‘어린이와 부모를 이어주는 그림책(일명 어부책)’입니다. 그림책만큼 아이에 대해 오랫동안 관찰하고 고민하고 소통한 매체는 없을 것입니다. 재밌는 그림책 이야기와 함께 작가의 유년기 경험, 다양한 아이들과 가족을 경험한 이야기가 녹아 있는 ‘어부책’을 통해 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즐기고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주]

[오승주의 어·부·책] (1) 심장이 두 개인 개미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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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제키엘 콰이물리나 | 앰벌린 콰이물리나 (지은이) | 최영옥 (옮긴이) | 여유당 | 2011-01-20 | 원제 The Two-Hearted Numbat

조화와 균형, 그리고 동양의 유구한 전통적 이분법인 ‘음양이론’을 완벽하게 보여주는 단순한 그림책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는 인디언의 냄새가 나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심장이 두 개인 개미핥기>(여유당)는 호주 원주민 출신 남매 작가가 들려주는 개미핥기의 모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으로 “완전한 심장이 되도록 가르쳐 주신 어머니께”라는 헌사가 인상적입니다.

깃털심장과 돌 심장이라는 두 개의 심장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주머니개미핥기(줄여서 ‘개미핥기’)는 둘 중에서 하나를 버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오랫동안 시달렸습니다. 쓸모를 몰랐던 거죠. 할머니 개미핥기는 ‘여행’을 제안함으로써 손자가 두 개의 심장을 어디에 써야 하는지 스스로 깨닫도록 배려합니다. 무서운 들개를 만났을 때 튼튼한 돌심장으로 대결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부드러운 깃털 심장이 위기에서 구해주었습니다. 부드럽게 상대방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니 싸울 필요가 없었던 거죠.

아찔한 강에 가로막혔을 때는 깃털심장으로 남의 도움을 받으려고 했지만 통하지 않았습니다. 개미핥기는 돌 심장을 쓰고 나서야 자신이 얼마나 강한 존재인지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돌 심장과 깃털 심장을 언제 써야 할지 모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 중에서는 현실에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게 참 많습니다. 아이의 가장 무서운 적은 ‘상식’일 것입니다. 상식에게 잘못 길들여지면 아이를 도와주려고 했던 일이 오히려 아이에게 해를 입히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가 될 때가 많습니다.

제가 인디언이나 원주민의 전설이 담긴 그림책에 유난히 애착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인디언들은 대부분 유럽 군인들에게 학살당하고 공동체가 붕괴된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 슬픈 사실은 강자인 유럽인의 생각이 상식이 되어 아직도 세상에 남아 있다는 사실입니다. 상식과 지혜는 다릅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상식의 도전을 많이 받습니다. <심장이 두 개인 개미핥기>에서 개미핥기가 두 개의 심장과 드디어 하나될 수 있었던 계기는 ‘자연’이었습니다. 저는 자연에 투자합니다. 아이 엄마는 아이들이 나무 위에 올라가는 것을 못마땅해 합니다. 저는 아이 엄마 몰래 나무타기를 허락합니다. 조금 위험해 보이면 나무 밑에서 지켜줍니다. 얼마 전에는 동네에 있는 계곡에서 암벽타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경험은 자연에는 풍부합니다.

위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합니다.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은 환영해야 합니다. 특히 남자 아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리 민족도 원주민처럼 강자에게 짓밟힌 역사가 있습니다. 우리 땅에는 ‘상식’이 오랫동안 입혀졌습니다. 이야기는 박제되었고, 그 안에 담긴 얼은 탈색되었습니다. 고민은 자기계발서로 합니다. 이런 환경은 심장이 두 개일 수 없다고 강요합니다.

우리 가족들은 두 개의 심장을 놓고 고민하는 개미핥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양자택일에 스스로를 밀어 넣는 일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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