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트르의 도시에 첫 발을 딛다
표트르의 도시에 첫 발을 딛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표트르의 도시에 가다] (1)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의 첫 날

러시아로 떠나는 비행기는 3월 5일 낮 12시 45분 인천공항 출발, 당일 오후 4시 35분 모스크바 세례메티에보 공항 도착이다. 시간만 보면 네 시간 정도인데, 비행기가 시간을 앞서 갔다고 해야 하는 건지 실제 비행시간은 10시간 가까이 된다. 좌석 앞 모니터에 나타난 3D화면에는 비행기가 북서쪽으로 중국 베이징과 몽골 상공을 통과한 다음 북위 60°쯤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날아간다.

공항에서 벨라루스역을 오가는 공항철도인 아에로엑스프레스를 타서 시내로 들어갔다. 늦은 오후라서 모스크바에서 하루 머물고 다음날 여행의 첫 방문지로 선택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가야하지 않을까 생각했으나 벨라루스역으로 가는 동안, 밤기차를 타면 내일 아침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도착할 수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 벨라루스역에서 콤소몰역(스탄치야 콤소몰스카야)까지는 순환선을 타면 두 정거장만에 갈 수 있었는데 노선을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한번 갈아타는 수고를 해야 했다. 2년 전 한번 갔던 기억을 용케도 되살려 콤소몰 역에서 내렸고, 지상으로 나오면  레닌그라드역이 있다. 소련 시절 레닌그라드로 불렸던 도시는 이제 원래의 이름인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바뀌었는데, 모스크바의 이 기차역은 아직 옛날의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예상했던대로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가는 밤기차가 있었다. 비대한 몸집에 무뚝뚝한 중년 여성인 매표원을 상대해서 까다로운 기차표 사는 일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어서 흐뭇했고, 여행의 순조로운 출발에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차는 밤 9시 모스크바 레닌그라드역을 출발해서 다음날 새벽 5시 상트 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역 도착이었다. ‘플라츠카르티니’라고 부르는 3등침대열차이다. 요금은 1178.9루블 한국 돈으로는 약 2만3천원 정도.

160201-01.png
▲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모스크바역과 보스타니야 광장. ⓒ양기혁

아직 어둠이 짙게 깔린 새벽 5시. 기차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모스크바역에 도착했다. 역 대합실의 커피숍에서 아메리카노 한 잔에 빵 한 조각으로 아침을 때우고, 두 시간 정도를 버텼다. 한잔에 100루블인 커피는 양이 너무 적어서 두 잔이나 마셔야했다.

완전히 날이 밝기까지는 조금 더 있어야 하고, 거리로 나서기엔 아직 좀 이른 감이 있었으나 뿌옇게 날이 밝아오고 있는 이 유서 깊은 도시의 아침거리를 걸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란 생각에 배낭을 짊어지고, 역을 나섰다. 거리는 우려했던 것처럼 그다지 춥지는 않았다. 털모자에 목도리, 파카 속에 내피를 겹쳐 입고 마음의 준비까지 든든하게 무장해서 그런지 쌀쌀한 공기가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질 정도다.

역을 나서자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역 맞은 편 건물의 옥상에 내걸린 ‘영웅의 도시 레닌그라드’라고 쓴 네온 간판인데, 그것은 이 도시가 얼마 전까지 ‘표트르의 도시’가 아니라 ‘레닌의 도시’로 불렸음을 상기시켜주고 있었다. 네온 간판 아래 써있는 호텔이름은 ‘가스뜨니챠 악쨔브리스카야’, 즉 10월 호텔이다. 1917년 볼쉐비키들의 혁명이 일어났던 그 10월을 말한다.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되고, 국가는 옛 러시아로 돌아갔음에도 맑스 레닌의 이념과 혁명의 흔적들은 곳곳에 남아있음을 볼 수 있다.
  
여러 갈래로 길이 난 역 앞 광장을 돌아가다가 다른 길에 비하여 번화하고 잘 정비된 도로에 이르자 처음 보는 길임에도 바로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었는데,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심장으로 이르는 대동맥이라 할 수 있는 ‘넵스키 대로(넵스키 프로스펙트)’이다.

그 길을 따라가면 그 끝에 첨탑이 솟아있는 해군본부가 있을 것이고, 그 옆으로는 네바강가에 서있는, 지금은 에르미따쉬 박물관으로 불리는 겨울궁전도 있을 것이다. 책에서 사진으로만 보던 것들이 마치 눈앞에서 영화화면이 펼쳐지듯이 그 위용을 뽐내며 현실로 다가왔다.

비슷한 높이로 키를 맞추고 있는 석조건물들이 나란히 늘어선 거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겨갔다. 이제 막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바쁘게 거리로 나오는 시간에 배낭을 짊어진채 두리번거리며 여유롭게 넵스키대로를 거닌다는 것도 썩 괜찮은 여행의 시작이란 생각이 들었다. 세계 여행 안내서인 론리 플래닛 가이드북엔 이 도로를 걷는 것이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경험하기위해서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라고 쓰여있다.

160201-02.png
▲넵스키 대로의 아침. 원래 사진은 훨씬 어둡게 찍혔으나, 컴퓨터로 조금 밝게 만든 것이다. ⓒ양기혁
160201-03.png
▲ 1860년대 넵스키 대로의 풍경, 도로의 끝에 희미하게 보이는 첨탑이 해군본부이다. ⓒ양기혁
160201-04.png
▲ 넵스키 대로변의 아름다운 석조건물. 건물 외벽과 위쪽으로 정교한 조각품들이 장식되어있다. ⓒ양기혁

대로의 석조건물들은 수많은 조각들로 외벽을 장식하고 있어서 그 자체로 건축과 조각이 합쳐진 정교한 예술작품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이다. 표트르 대제 시절 당시까지 단절되었던 유럽의 앞선 과학기술과 문화들이 도입되기 시작했는데, 특히 이 도시의 건설과 함께 시작된 건축과 시각예술 분야에서의 혁명적 변화들은 온전히 자신의 이름을 딴 이 도시에 담겨지게 되었다.

18세기 초부터 시작된 도시의 건설이 어느 정도 틀을 갖추자 1712년 표트르 대제는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 곳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볼쉐비키 혁명이 일어날 때까지 200 여 년 간을 러시아의 수도로서 정치, 행정 그리고 교역의 중심지이며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서,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서구적 러시아로 변모하는 상징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 도시를 ‘유럽으로 난 창(窓)’, 또는 ‘북방의 베니스’라고 불렀으며, 해수면 보다 낮은 늪지대에 건설된 이 도시를  발트해의 바다 속에서 솟아나온 도시로 신화화하기도 했다.

160201-05.png
▲ 카잔 성당. ⓒ양기혁

폰타카 강에 이어 두 번째 운하(그리보예도바 운하)를 건넜을 때 마치 고대 그리스 신전 같기도 하고,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을 방불케 하기도 하는 반원형의 웅장한 사원이 나타났는 데 카잔성당(카잔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다. 전체적으로 탁하고 어둡게 보이는 이 성당은 안드레이 보로니킨이라는 농노출신 건축가가 설계하여 1801년부터 10년에 걸쳐서 지어졌는데 넵스키 대로를 사이에 두고 반대편에 쌍둥이 성당을 지을 계획이었으나 계획이 실현되지는 못했다. 기적을 보여주었다는 성당안의 성모 마리아 이콘(성상화)앞에는 매일같이 수많은 정교회 신자들이 줄을 서서 입맞춤을 한다고 한다. 성당앞의 동상은 1812년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했을 때 러시아군을 지휘하고, 나폴레옹군을 패퇴시킨 쿠투조프 장군이다. 쿠투조프는 이 곳에서 장례식이 치러졌고, 유해가 이 성당에 묻혔다고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