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부동산 시장이 뜨겁다. 최근 부동산과 관련된 모든 지표에서 제주는 전국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 단연 전국에서 가장 ‘핫’한 노른자위로 떠올랐다. 불과 5~6년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일이다. 집값이 치솟자 무주택자와 저소득층, 청년계층은 물론 도민 사회 전반에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제주의소리>는 이 시점에서 제주지역 전반의 집값 실태를 점검해보고, 도민의 주거복지 향상 방안을 모색해보려 한다. [편집자 주]

[제주 주거복지, 해법은] ③ 주거취약계층 직접 찾아가보니...실태파악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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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용담2동에 사는 현모 할머니의 집. 누수가 계속되고 있지만 비용 때문에 집 수리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눈보라가 몰아치던 2월말, 제주시 구도심을 찾았다. 용담2동에 홀로 사는 현모(96) 할머니의 단칸방에 들어서자 캐캐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부엌인지 수돗가인지 분간이 안가는 공간을 지나면 두어 사람이 자리를 펴고 누우면 꽉 찰 듯 한 방이 나온다.

비가 조금씩 새는 걸 그냥 두다 보니 벽지에 하나 둘씩 검은 곰팡이 꽃이 피었단다. 다리가 불편한 현 할머니는 집을 고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힘든 점을 묻자 현 할머니는 “곰팡이가 많이 펴서 불편한데,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답했다. 지붕 개량에 적어도 100여만원은 들 터인데 현 할머니가 혼자서 감당하기엔 힘들어 보였다.

현 할머니의 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지체장애 2급 서모(51)씨의 집도 상황은 비슷했다.

서씨는 “비만 오면 물이 떨어져서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특히 침대로 곧바로 물이 뚝뚝 떨어져 잠자리가 젖을 때가 많다”며 “물만 안 떨어지면 정말 좋겠다”고 말했다.

그나마 장판과 벽지 등은 깔끔했다. 지역 단체인 용담2동 장애인지원협의회에서 주거개선 봉사활동을 벌인 덕분이다. 보일러 설치와 도배도 지원협의회의 도움을 받았다. 이들이 없었다면 아마 추운 겨울을 버티기 힘들었을 터다.

근처에 있는 최모(68) 할머니 가정도 누수로 걱정을 하고 있었다. 부엌은 이미 곰팡이가 내려앉은데다 사방이 눅눅해지면서 제 구실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역시 집수리에 직접 나서기엔 수백만원대의 비용을 감당하기 녹록지 않은 상황.

그나마 이 지역은 다행이다. 집 수리를 이어온 이 지역 복지협의체가 작년 제주도 최우수 협의체로 뽑힐 정도로 꾸준히 활동하는데다 9년째 꾸준히 주거개선 봉사활동을 펼치는 장애인지원협의회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청소, 도배, 장판 교체부터 에어컨과 보일러 설치, 지붕 수리까지 지원해왔다. 9년간 지원한 가구만 102가구나 된다. 당국의 역할을 자생단체가 대신 수행하고 있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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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용담2동에 사는 현모 할머니의 집. 단칸방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부엌 겸 세면실을 지나야 한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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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용담2동 최모 할머니의 부엌. 계속된 누수로 곰팡이 가득 폈다. ⓒ제주의소리

그러나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다른 구도심 지역의 경우 당국의 지원이 요원할 수 밖에 없다.

김용호 용담2동 장애인지원협의회장은 “구도심 지역에는 연세(年貰) 100만~200만원, 한 칸 짜리 집을 빌려사는 노인 분들이 많다”며 “대부분의 집주인들은 집을 수리해주지는 않는다”고 귀띔했다. 워낙 임대료가 저렴하다보니 임차인 입장에서도 ‘집을 고쳐달라’고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화북동 동마을도 살펴봤다. 이곳에 사는 공모(63)씨는 폐지나 고물을 주워 생활하다 4년전부터 몸이 좋지 않아 아예 일손을 놓고 있다. 지인을 통해 연세 100만원짜리 집에 살고 있다. 보일러가 없어 바닥은 차가웠다. 벽도 군데군데 균열이 발생했다. 그러나 역시 집수리나 보일러 설치는 엄두를 못내는 상황.

이곳도 화북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의 도움으로 올해 내로 보일러 설치와 집수리가 가능할 거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김경빈 화북동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은 “아직도 화북동 지역에 이런 가구가 많다. 올해만 7~8군데 집수리 등 주거개선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며 “이들은 대부분 연세 100만~200만원짜리인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현재 제주지역에서 맞춤형 수선유지급여를 통해 당국으로부터 집수리 지원을 받는 가구는 제주시 49가구, 서귀포시 39가구. 용담2동에서만 작년 한해 민간 주거개선사업 등을 제공받은 곳이 44가구라는 점을 감안하면 ‘새발의 피’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맞춤형 수선유지급여를 통해 매달 1인 가구 13만3000원에서 4인 가구 19만5000원까지 임대료를 지원받을 수 있으나, 1년치 임대료를 내고나면 남는게 없다.

가장 큰 문제는 현재 제주지역 저소득층에 대한 정확한 주거실태가 파악되고 있지 않다는 점.

주거급여수급권자가 1만2276가구라는 점은 통계에 잡히지만 이들의 실제 생활여건과 심각도, 집의 노후도 등을 파악한 자료는 전무하다. 당국은 “주거실태를 따로 조사한 자료는 없다”고 했다.

국토교통부에서 2년 단위로 전국 주거실태조사를 벌이고 있으나 제주 전체 표본은 510가구. 제주의 지역별, 계층별 특성을 반영한 자료라고 보기에는 미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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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시 화북동 공모씨의 집. 벽에 균열이 생겼으나 수리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집에는 보일러도 없어 방바닥이 차갑다. ⓒ제주의소리

실태조사는 저소득층 주거환경개선을 위한 토대다.

지난 달 사단법인 한국주거복지포럼이 개최한 ‘제2회 주거복지 우수사례 공모전’에서 주거환경부문 최우수상을 받은 홀몸어르신 맞춤형 공공원룸주택 ‘보린주택’은 철저한 실태조사가 수상의 밑거름이 됐다.

사업 주체인 서울시 금천구는 2013년 9월 조사를 통해 ‘지하’에 거주하는 기초생활수급자 홀몸어르신이 514가구가 있으며 이들이 채광과 환기가 안되는 열악한 주거환경에 처해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특히 이들 중 57.6%가 생계비 43만원 중 월평균 17만원을 월세로 지출한다는 점까지 파악해냈다.

이를 바탕으로 기존 서울시와 SH공사의 임대주택 정책의 한계까지 짚어냈고, 이는 대안 정책 수립으로 이어졌다.

15년째 제주 전역에서 집수리 봉사활동을 벌이고 있는 기술자들의 모임 사마리아인 봉사회의 현기홍 회장은 “지금까지 집을 수리한 곳이 200가구가 넘지만 아직도 이런 도움이 필요한 사각지대가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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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홀몸어르신 맞춤형 공공원룸주택인 '보린주택'. 금천구는 서울시, SH공사와의 협업을 통해 지하에 거주하는 홀몸어르신 맞춤형 공공원룸주택을 제공했다. ⓒ한국주거복지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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