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개불알풀꽃
꿈, 희망, 생명……. 봄은 역시 활력을 가져다주는 긍정의 계절이다. 무심코 짓밟고 지나던 잡초에 꽃이 피어 되레 우울한 내 가슴을 어루만진다. 발길을 멈추고 무릎을 구부렸다. 마치 신선의 세계에서 내려온 별들이 오종종 모여앉아 봄날 일기를 쓰는 것 같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식물들에도 글씨체가 있다. 예를 들면, 붓꽃은 궁서체, 등심붓꽃은 명조체, 광대나물은 안상수체, 요 녀석 개불알풀꽃은 굴림체다. 나는 과연 어떤 글씨체로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며칠 전, 혜승이가 내 일터로 놀러 왔다. 오래간만에 왔는데 밥이라도 사 줘야지 싶다. 근처 식당에 갔다가 돌아오는 외도초등학고 뒷길. 서쪽 모퉁이 클린하우스 옆 텃밭 입구에서 파랗게 빛나는 개불알풀꽃을 만났다. 접사로 끌어당길 때마다 녀석은 봄날 일기를 쓰면서 히죽히죽 웃는다. 동안의 삶이 녹록지만은 않았던 내게 뭔가를 들려주는 것만 같다.
마치 봄소식이라도 전하려고 온 전령마냥 파랗게 빛나는 꽃. 아마도 이들의 소리는 눈으로 들어야만 하는 것 같다. 노숙의 계절로 보낸 시간이 만만치는 않았으련만, 천진난만함이 묻어나는 그 미소를 보자니 왠지 코끝이 맵다.
개불알풀꽃. 썩 정겨운 이름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얄궂기까지도 하다. 씨앗이 맺히면 그 모양이 개의 음낭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사실 일제강점기에 붙은 이름이다. 지금은 국내 식물학자들 간의 이견으로 “봄까치꽃” 혹은 '봄까지꽃'이라 많이 불린다. 개인적으로 난, 봄이 될 때부터 봄이 저물 무렵까지 피기 때문에 "봄까지 피는 꽃"이라는 의미로 가졌다는 ‘봄까지꽃’이 정겹게 느껴진다.
봄꽃은 따사로운 햇볕만으로 피지 않는다. 때론 찬바람도 맞으며 볕과 같이 어우러져야만 핀다. 이 작은 풀꽃의 가르침을 나는 오늘 눈으로 듣는다. 삶이란 희로애락이 곁들여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개불알풀꽃
동글동글 굴림체로 봄날 편지를 쓴다
웃다 보면 없는 정도 솟아날 거라면서
풀꽃은 잡것이라 해도 히죽히죽 웃는다.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조차 없을까
눈이 없다 해도 보이는 게 있는 법
천하다 비웃던 그 꽃, 되레 나를 달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