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개불알풀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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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불알풀꽃. ⓒ고봉선

꿈, 희망, 생명……. 봄은 역시 활력을 가져다주는 긍정의 계절이다. 무심코 짓밟고 지나던 잡초에 꽃이 피어 되레 우울한 내 가슴을 어루만진다. 발길을 멈추고 무릎을 구부렸다. 마치 신선의 세계에서 내려온 별들이 오종종 모여앉아 봄날 일기를 쓰는 것 같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식물들에도 글씨체가 있다. 예를 들면, 붓꽃은 궁서체, 등심붓꽃은 명조체, 광대나물은 안상수체, 요 녀석 개불알풀꽃은 굴림체다. 나는 과연 어떤 글씨체로 살아가고 있을까,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며칠 전, 혜승이가 내 일터로 놀러 왔다. 오래간만에 왔는데 밥이라도 사 줘야지 싶다. 근처 식당에 갔다가 돌아오는 외도초등학고 뒷길. 서쪽 모퉁이 클린하우스 옆 텃밭 입구에서 파랗게 빛나는 개불알풀꽃을 만났다. 접사로 끌어당길 때마다 녀석은 봄날 일기를 쓰면서 히죽히죽 웃는다. 동안의 삶이 녹록지만은 않았던 내게 뭔가를 들려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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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불알풀꽃. ⓒ고봉선

마치 봄소식이라도 전하려고 온 전령마냥 파랗게 빛나는 꽃. 아마도 이들의 소리는 눈으로 들어야만 하는 것 같다. 노숙의 계절로 보낸 시간이 만만치는 않았으련만, 천진난만함이 묻어나는 그 미소를 보자니 왠지 코끝이 맵다.

개불알풀꽃. 썩 정겨운 이름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얄궂기까지도 하다. 씨앗이 맺히면 그 모양이 개의 음낭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사실 일제강점기에 붙은 이름이다. 지금은 국내 식물학자들 간의 이견으로 “봄까치꽃” 혹은 '봄까지꽃'이라 많이 불린다. 개인적으로 난, 봄이 될 때부터 봄이 저물 무렵까지 피기 때문에 "봄까지 피는 꽃"이라는 의미로 가졌다는 ‘봄까지꽃’이 정겹게 느껴진다.

봄꽃은 따사로운 햇볕만으로 피지 않는다. 때론 찬바람도 맞으며 볕과 같이 어우러져야만 핀다. 이 작은 풀꽃의 가르침을 나는 오늘 눈으로 듣는다. 삶이란 희로애락이 곁들여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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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불알풀꽃. ⓒ고봉선

개불알풀꽃

동글동글 굴림체로 봄날 편지를 쓴다
웃다 보면 없는 정도 솟아날 거라면서
풀꽃은 잡것이라 해도 히죽히죽 웃는다.

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조차 없을까
눈이 없다 해도 보이는 게 있는 법
천하다 비웃던 그 꽃, 되레 나를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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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불알풀꽃. ⓒ고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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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불알풀꽃. ⓒ고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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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불알풀꽃. ⓒ고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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