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로 터전을 옮기는 이주민의 숫자가 한해 1만명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특히 이들 중에는 적지 않은 문화예술인들이 청정한 자연환경에 매료돼 바다 건너 제주로 향한다. 여기에 제주사회는 자연, 사람, 문화의 가치를 키우자는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유례 없던 이런 변화 속에 제주문화의 미래를 고민하는 목소리 역시 높다. 전통과 변화 사이에서 제주문화의 정체성을 지켜내면서 끊임없이 진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런 고민을 녹여내기 위해 제주출신 양은희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가 [제주의소리]를 통해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⑩ 유행처럼 늘어난 뮤지엄, 유행에 사라질수도

그동안 제주 문화관광의 주축이었던 도내 뮤지엄(박물관과 미술관)이 총체적인 문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최근 감사원은 제주의 등록 사립박물관과 사립미술관 68곳 중에서 30곳이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에 따라 두도록 된 학예사가 없으면서도 국고지원사업을 따내서 운영한 바 있어 “등록, 취소 권한을 가진 시·도지사가 지도, 점검을 해야 한다”라는 감사보고서를 발표했다. 사실 다른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경기를 제외하고 대략 50%에 달하는 전국의 사립박물관·미술관이 학예사를 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 뮤지엄 한국의 민낯이다. 

지난 달 열린 '2016 제주박물관포럼'의 발표내용에도 뮤지엄 제주의 적나라한 민낯이 담겨 있었다. 관광 패턴의 변화와 지나친 박물관의 증가로 경쟁이 심해지면서 입장료 덤핑이 일어나는가 하면, 질이 낮은 콘텐츠와 학예사도 두지 못한 박물관이 대거 등장하면서 그 경쟁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폐업하는 곳이 늘고, 시설이 노후화하면서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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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24일과 25일 열린 2016 제주박물관포럼.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설상가상으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의 사립박물관 평가인증제를 시범 실시한 결과 4개의 기관이 우수사례로 선정되었는데 여기에 제주의 사립박물관은 한 곳도 포함되지 못했다. 시범실시이기는 하나 68개 중에서 한 곳도 선정되지 못할 정도로 상황은 심각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위 포럼에서는 해결방안으로 공립 박물관·미술관의 입장료와 사립 박물관·미술관의 입장료의 차이를 현실화하고, 교수·예술인보다는 전문가로 구성된 박물관·미술관 심의위원회를 만들어야 하고, 평가인증제를 도입해야 하며, ‘공동 학예사’를 도입하는 방안을 언급한 바 있다.

열악한 현실에서 적절한 대우를 하지 않고는 학예사를 둘 여력이 없고, 그러니 권역을 만들어 공동으로 학예사 1명을 두어서 법이 요구하는 자격을 유지하고 싶다는 것이다. 투자한 사업의 생존을 위해 고육지책으로 나온 안이기는 하나, 현실을 들여다보면 문화산업을 진흥시키고 체계적으로 관리하고자 정부가 내놓은 제도들이 박물관·미술관이라는 제도의 혜택을 보려는 사업자와 충돌하는 양상이다. 

제주도는 이런 현실을 행정으로 정리하고자 ‘제주도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계획’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하나, 평가인증제 도입하고 등록 기준을 강화하는 한편, 공동학예사 제도를 도입하는 정도만 언급되고 있다. 결국 제주도박물관협의회의 요구를 들어주는 선에서 정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도입된다고 하더라도 제도와 현실의 충돌은 앞으로도 끝나지 않을 것이다. 향후 도내 박물관·미술관법의 적용을 받는 곳들은 시장구조 속에서 더 많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 가장 큰 원인은 관광문화 트랜드가 바뀌면서 단체 관광객보다 개별 관광객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제주의 가치를 박물관·미술관에서 찾기보다 작은 마을의 소담한 농가, 신선한 공기가 피어나는 곶자왈 등 다양한 곳으로 가고 있다.

또한 현재의 박물관 시설 안에 담긴 물건이나 전시품이 과연 빠르게 변하는 취향의 시대를 버티고 살아남을 정도로 전시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유행에 따라 만들어진 공간은 다시 유행과 함께 사라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이렇게 변화무쌍하며 다양한 가치들이 공존하는 시대에 정부에서 만든 박물관·미술관 법은 지나치게 포괄적이어서 과연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분류기준을 보면 동물원, 식물원, 전시장까지도 ‘박물관·미술관’의 범주로 포용할 정도인데, 전시물의 가치가 검증되지 않은 다양한 시설들을 건강한 문화 자본으로 구축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느슨한 분류는 법의 행간을 이용하도록 유혹하고, ‘박물관·미술관’이라고 분류되기에 부족한 곳을 확대할 뿐이다.  

뮤지엄은 원래 지식이 소수의 권력에 집중되었던 시대의 산물이다. 귀족과 왕실은 진귀한 책, 보석, 미술품, 동물, 식물 등, 잘 보존해서 후대에 널리 알릴만한 가치가 있는 것들을 수집했고, 이런 컬렉션은 18세기 계몽기를 거치면서 박물관으로 진화했다. 제국주의의 확산과 경쟁 속에서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의 강국들은 저마다 자긍심을 높이고자 박물관을 만들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세기 초 쓰러져가던 대한제국도 서구 근대박물관의 모델을 본받아 왕실 컬렉션을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이후 문예에 조예가 깊던 간송 전형필도, 미술을 사랑한 이병철 회장도 뮤지엄을 만들었다. 이런 뮤지엄은 소수의 자본과 문예를 보유한 계층이 진귀한 물건을 사들여 보존하고 연구하고 전시를 통해 보여주면서 사회공동체에 봉사하는 데 목적이 있다. 대부분의 박물관·미술관이 미미한 입장료 수익으로 운영할 수 없는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문을 열고 있는 것은 창립자의 주머니에서 나온 사재와 국민의 세금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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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벨기에 왕립미술관 내부의 모습. 뮤지엄은 한 국가 도시의 자존심이다. 제공=양은희. ⓒ제주의소리

관광 제주에 문을 연 사립 박물관들도 진정한 박물관·미술관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반성해 볼 때이다. 법의 느슨한 정의를 이용해 문을 열고, 세제 혜택을 받고 소장품, 전시품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데 치중하고 있다면, 뮤지엄 제주에는 미래가 없다. 차라리 솔직하게 테마가 있는 문화상업공간이라고 고백을 하고 그에 걸맞는 고객 유치에 애를 쓰는 편이 낫다.

유럽과 아프리카, 미주 대륙까지 전 세계에서 온 진품과 복제품, 상품과 먹거리 컬렉션이 세제의 혜택을 받고 ‘박물관·미술관’으로 불리는 현재, 결국 돌아온 것은 관람객의 주머니를 열어야 하는 절박함과 스스로 정비를 부탁해야 하는 평가관리제,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공동 학예사’라는 개념뿐이다.

▲필자 양은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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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교 시절 미술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고, 영어교육학으로 대학을 졸업했지만 예술과 철학에 대한 호기심을 포기할 수 없어서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까지 공부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까지 졸업한 뒤 서울, 뉴욕 등 세계를 다니며 공부와 일을 병행했다. 그동안 큐레이터, 갤러리 디렉터, 프로젝트 매니저, 교수 등 미술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하면서 예술과 사회의 역학관계를 체험하고 연구하고 있다. 11년간 체류한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조명한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를 저술했으며, 『개념미술』(2007)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현재는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를 돌면서도 언제나 마음은 고향을 향해 있었다. 특히 요즘 문화예술의 섬으로 떠오르는 고향 제주를 주목하고 있다. <제주의소리>를 통해 글로벌 시대의 제주의 문화예술 비전을 고민하는 일은 또다른 고향사랑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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