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풀뿌리 민주주의에 던지는 질문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 <귀향>과 <동주>를 규모가 작은 군 소재지의 작은 영화관에서 볼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서울에서도 보기가 어려운 저예산 독립영화다. 지역마다 올레길, 둘레길, 마실길, 에코길로 호명되고 있는 도보길이 생겼다. 길들마다 많은 예산을 투입하여 매력있는 길 만들기에 정성이 넘쳐난다.

매년 전국에서 1000개가 넘는 축제가 열린다. 일부는 단체장 치적용이라는 비판을 받지만 김제 지평선축제, 함평 나비축제, 화천 산천어축제, 보령 머드축제, 화성 해양축제는 지역특성과 자연 환경을 창의적으로 융합시켜 명품 브랜드가 됐다. 음악이 흐르고 정원처럼 꾸민 지방의 공중 화장실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각 지자체는 자기 고향 출신의 문화예술인의 문학관, 기념관, 생가 복원사업을 통한 소프트 파워 경쟁을 치열하게 벌이고 있다. 이러한 성과들은 지방자치단체의 노력 덕분이다.

올해로 25년 된 지방자치의 겉모습 이면에는 한계와 문제점을 담고 있는 짙은 그늘이 있다. 모든 자치단체가 자기지역을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지방자치를 긍정적이면서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지방자치는 앞날이 불투명할 정도로 사정이 매우 열악하다는 평가가 중론이다. 현 시점에서 지방자치를 평가하여 지방의 창조적 역량을 강화하고 주민들이 자부심과 신뢰를 갖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서울 중심의 공간배치를 변화시키는 균형발전 움직임이 있었는가. ‘시장의 구조에 공간이 끼워 맞춰 있다’는 칼 폴라니의 말처럼 경제가 집중된 서울의 확고한 지배구조에 균열이 생겼는지는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세종시와 혁신도시로 상징되는 균형발전 전략이 서울의 우월한 지위를 미세하게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서울의 확대판이냐 아니면 지배적 지위의 약화냐 하는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는 속단할 수 없다. 서울 중심의 수직 계열화는 흔들리고 있고, 저출산 고령화와 인공지능의 발전은 지금까지 익숙한 공간 패턴을 바꿔 나가는 데 일익을 담당할 것이다.

둘째,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예속으로부터 얼마나 벗어났는가. 소위 중앙 독재의 강화와 식민지화가 지속되고 있다는 시각이 우세한 편이다. 중앙정부는 아직도 지방정부를 유아수준으로 취급하여 각종 제도적 장치를 통해 옥죄고 있다. 헌법, 법령, 조례로 수직 계열화된 시스템과 운용상의 경직성은 중앙정부가 지역 주민의 일상생활에 세세하게 간여하는 틀로 이용된다.

재정자립도는 2014년 44.8% 수준이고, 지방세 수입으로 인건비를 충당 못하는 지자체는 2014년 127곳이 됐다. 중앙의존도의 심화는 지방정부가 청년일자리, 성장과 복지, 무상보육 같은 과제에서 창의성을 발휘할 기회를 빼았고 있다. 분권과 지방책임제는 말로만 남아 있는 형국이다.

셋째는 지자체의 과도한 성과주의는 지역의 창조적 역량과 지속가능한 발전을 훼손하고 있지 않는가. 경제효과를 부풀린 상징물의 건립, 축제, 대형이벤트 유치와 같은 과시적인 치적 쌓기 사업은 지자체에 많은 부채를 남겨 지역발전을 억누르고 있다. 전남 F1그랑프리, 태백 오투리조트, 인천 아시안게임이 대표적 사례다.

지역 축제에 사람을 모으기 위해 서울의 유명 아이돌그룹을 불러와 1회성 공연에 많은 비용을 탕진하는 일은 다반사가 되었다. 사람들은 유명연예인에 몰입할 뿐 지역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러한 성과주의는 지역 소통과 자원배분을 왜곡하여 지역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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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영후 소통기획자.
중앙정부의 거센 견제를 받고 있는 서울시와 성남시의 청년지원 제도는 지역의 창조적 정책이다. 생활임금제, 주민참여 예산제도, 행정정보공개는 지방정부가 국가 혁신을 주도한 본보기다. 경제민주화, 양극화 해소, 인구절벽, 1인가구 증가와 같은 시대적 핵심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자체의 창의성이 발휘된다면 중앙정부의 독점구조는 허물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역의 과도한 성과주의는 합리성, 효율성, 공정성, 장기성을 기준으로 개혁돼야 한다. 지역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풀뿌리 지방자치는 장기지속적으로 국가 발전을 이끌어갈 것이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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