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적완화가 양적 한계에 부딪쳤다. 이자율은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고 채권매입도 더 이상 사들일 채권이 없다. 중앙은행의 금리는 스위스를 필두로 해 유럽과 일본이 이미 마이너스로 되어 있고 이러다가 중앙은행의 대출금리도 마이너스로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지경에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채권매입 규모를 월 800억 유로로 증액하면서 매입대상 채권에 일반 회사채를 포함시키기로 했다. 일본이 계획하고 있는 연 80조 엔의 정부채 매입은 일본 국채 연간 발행 분량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이다.

이들이 양적완화에 이와 같이 매진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나? 이 진행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양적완화 실시의 든든한 논리인 "디플레이션의 도래를 막기 위해"는 얼마만큼의 설득력이 있는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처럼 1930년 세계 대공황의 경험이 이들 나라의 지도자들을 심신의학적 환자로 만든 것은 아닌가?

지난 2월말 상하이 G-20에서 각국 정상들은 오늘날의 문제가 만성적 수요부족에 있음을 제대로 인식했다. 이어 경기 회복의 책임을 중앙은행들에게만 부담 지우지 말고 정부도 그 동안 미루었던 구조조정에 힘을 쓰고 적자예산을 통해서 정부지출을 늘이는 등 경기회복 노력의 일선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같은 돈이라도 중앙은행의 채권매입과 정부의 예산집행은 경제에 미치는 승수효과(乘數效果)에서 차이가 있다. 정부의 돈은 다리와 도로를 보수하는 데 쓰이고 그 공사에 투입된 사람들의 주머니를 채운다. 가족들은 늘어난 구매력의 더 많은 부분을 그 동안 미루었던 소비를 위해 사용한다.

중앙은행은 이러한 승수효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채권매입으로 시중에 풀린 돈은 일반 재화를 구입하는 데 사용되지 않는다. 다른 한편에서 중앙은행의 저금리 정책도 이자로 생활하는 중산층 은퇴자들을 어렵게 할 뿐이다. 부자들은 은행 금리로 생활하지 않는다.

멈추지 않는 양적완화의 질주

수요 부족의 원인에 대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교수의 설명은 압권이다. 경제적으로 윤택해질수록 추가소득에 따른 추가소비량이 낮아지는 '한계소비성향 체감의 법칙'이 작용하는데 양적완화는 자산가격 인플레이션을 초래해 가진 자와 가지지 않은 자의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이것이 수요 부족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원로 지성,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는 이러한 충돌을 케인즈(정부의 역할 강조)와 신 자유주의(시장의 역할 강조) 간의 대결로 파악한다. 그에 의하면 신 자유주의 기류에 편승하고 있는 오늘날의 주요국들은 일정한 임계점(臨界点)이 지나면 다시 케인즈 이전으로 되돌아 간다고 한다.

즉 비대해진 정부를 다시 작은 정부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 재정적자와 공공부채를 더 이상 커지게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 그리고 정부의 개입보다는 시장의 기능에 맡겨야 한다는 주장이 득세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임계점이란 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되었다고 자만하는 시점이다.

실제로 G-20 이후 벌어지고 있는 양상은 중앙은행은 중앙은행대로 양적완화의 매진, 정부는 정부대로 재정적자 축소 쪽으로 거꾸로 가고 있다. 일본은 판매세 인상 계획을 접지 않고 있고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는 독일마저 정부지출 확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G-20의 약속(?)에 충실한 것은 중국뿐인 것 같다. 경제성장률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는 와중에 상하이 주가지수가 금년 들어 대폭 하락하는 등 여러 경제지표가 적신호를 보내는데도 중국 중앙은행이 취한 양적완화 조치는 작년 10월의 금리 소폭인하(4.6%에서 4.35%)와 금년 2월의 은행 지준율 0.5% 포인트 인하(17.5%에서 17%)가 전부다. 채권매입 같은 것은 물론 없다.

케인즈 대(對) 신 자유주의

3월초 중국 전국인민대회는 13차 5개년 계획(2016년-2020년)을 발표하며 금년의 적자예산을 GDP의 3%로 늘리는 반면(작년은 2.3%) 통화증가율은 13%로 낮추기로(작년은 13.3%) 했다. 철도, 고속도로, 수력발전, 송유관건설 등에 지출을 늘이고 부가가치세 감면 확대 등으로 세수는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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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
최근 국제투자자금들이 신흥 시장으로 회귀하면서 우리 원화를 비롯한 신흥국 통화강세 및 자산가격 상승의 기미를 보이고 있다. 국제원유가의 회복, 달러화의 약세 이외에 중국 발 수요 창출의 기대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한계까지 치닫고 있는 양적완화의 결과물로 보인다. /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

* 이 글은 <내일신문> 4월 14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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