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극장을 지켜야하는 이유] (1) 임찬익 감독 "경제논리만 좇다보면 '유산 파괴' 오명"

옛 현대극장(제주극장) 매입 문제가 쉬이 해결되지 않을 조짐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지어진 이곳은 문화환경이 척박했던 제주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문화공간이었습니다. 그뿐인가요, 제주 근현대사가 스며든 의미 있는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보존이냐, 철거냐 운명의 기로에 놓인 옛 현대극장을 두고 제주 출신 영화인들이 목소리를 내는 이유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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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찬익 영화감독. <사진출처=체포왕 공식 홈페이지>
주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의 영화 ‘시네마천국’은 로마에서 활약하고 있는 유명감독 토토가 영사기사 알프레도의 부고를 듣고 3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시작된다. 어린 시절 영화가 세상의 전부였던 소년 토토는 학교 수업을 마치면 마을 광장에 있는 낡은 극장으로 달려가 영사 기사 알프레도와 우정을 나누며 영사기술을 배운다. 이제 은발의 토토가 고향으로 갔을 때 여전히 그를 반기는 것은 아직도 남아있는 ‘시네마천국’이라는 영화관이다.

나의 고향집은 일명 서사라라고 불리는 삼도1동이다. 어린 시절 관덕정 옆에 위치한 우체국에 아버지가 근무하신 덕에 남초등학교를 거쳐 현대극장을 지나 우체국에 왔다갔다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당시 현대 극장은 제주에서 유일하게 만화영화를 상영했던 공간이기도 했다. 나는 그곳에서 로보트 태권브이와 똘이 장군 같은 만화영화를 보았고, 그것이 아마도 내 인생의 최초의 영화가 아닌가 싶다.

‘시네마 천국’의 토토와 같은 세계적인 영화감독은 못됐지만, 그래도 고향 제주를 찾을 때면 어릴 적 추억을 찾는 것은 토토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학창시절 제주도에서 개봉하는 영화는 다 봤다고 자부하는 나에게 코리아극장, 동양극장, 제일극장, 피카디리 극장 같은 곳이 다 사라져버린 것은 어린 시절 나의 꿈들이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일이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를 코리아 극장 2층에서 보고는, 계단을 내려오면서 탑동 앞바다에서 마치 죠스를 본 듯한 감흥에 빠지기도 했고, 동양극장에서 동시상영하는 성인영화를 가슴이 콩닥콩닥 대면서 본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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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현대극장. ⓒ제주의소리
그런 가운데 여전히 외관이 유지되고 있는 현대극장을 볼 때면 내 인생 첫영화를 보여준 성지처럼 여겨져 아직도 마음 한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이제 나만의 성지가 없어질 것이란 이야기를 선배 영화감독인 오멸감독을 통해 듣게 되었다. 비단 현대극장은 나만의 성지가 아닐 것이다. 나와 동시대를 살던 모든 이에게 현대극장은 인생의 첫 영화를 보여준 추억의 장소일 것이다.

더군다나 현대극장은 제주도 현대사의 역사적 순간들을 함께 한 공간이 아닌가? 자료를 찾아보니 조일구락부(구 현대극장) 옛 건물은 4.3의 아픈 기억과 함께 민주주의민족전선 제주도위원회 결성, 조선민주청년동맹 창립대회를 가진 역사와 문화가 스며있는 곳이라 기록되어 있었다.

최근 원도심 재생이 화두가 되고 있는 마당에 제주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지닌 건물이 한 순간 무너진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안전평가에서 E등급을 받아 철거가 불가피하다면, 복구라도 해서라도 안정성을 높여 보존할 생각을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지난 2005년 12월에 서울 중구에 있던 스카라극장이 한순간 철거되는 일이 있었다. 나도 이 극장에서 수많은 영화를 보았는데, 1992년 서울 생활의 외로움을 달래려 봤던 <파 앤 어웨이>는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영화뿐만 아니라 스카라 극장의 거대한 반원형 외관과 70mm 거대한 스크린은 아직도 인상이 뚜렷하다. 

70여 년 동안 도심의 영화관으로 시민들의 발길을 끌었던 스카라극장은 모더니즘 건축양식으로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돼 철거 한 달 전 근대 문화재로 등록이 예고됐다 하지만 개발을 원하던 건축주가 철거 절차가 복잡해지는 문화재 등록 전에 철거를 강행한 것이다.

철거된 지 십년여년이 지난 지금 충무로는 예전 같이 인파가 북적이도 않으며 그나마 옛추억을 만끽하고 싶은 노년층도 발길이 뜸해진지 오래다. 결국 눈앞의 이익을 쫓아 경제논리로만 일을 처리한다면 우리는 후대에 넘겨줄 유산을 파괴한 세대라는 오명을 쓰게 될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스카라 극장의 예와 같이 새로 건물을 짓는 것이 그 지역 활성화의 대안이 아니라는 답도 있지 않은가. 근대문화유산을 보존함으로써 얻은 이익은 비단 추억거리만은 아닐 것이다. 냉정한 판단으로 제주의 가치를 올릴 수 있는 선택을 제주시가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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