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㊳>

136710_154113_3329.jpg
▲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좋은 포도주처럼 익어가는 것”이라는 말처럼 늙을수록 삶은 더 풍요로워진다. 사진은 지난 2013년 11월 열린 제2회 제주도 오카리나 경연대회 참가자 중 한 명. 60대는 이처럼 음악을 가슴 깊이 즐기기에도 걸맞는 시기다. ⓒ 제주의소리DB

K형. 사진첩을 정리하다가 우리가 소년시절에 찍은 빛바랜 흑백사진을 보고 문득 형이 그리워져서 펜을 들었어요. 어언 50여년의 세월이 속절없이 흘렀네요. 얼마 전 신문을 보니까 90대의 철학자 김형석이 “인생에서 어느 때가 가장 좋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65세 쯤”이라고 대답하더군요. 문학평론가 김시태는 65세에 교수직을 은퇴하고 나서 4.3소설 「연북정」을 썼지요. 그는 “문인에게 정년퇴임은 하느님의 은총이고, 지금이 가장 행복한 인생의 황금기”라고 했어요.

K형, 60대가 되면 좋은 게 뭔지 알아요? 세 가지(일·피붙이·욕심)에서 해방될 수 있지요. 대부분 60대가 되면 직장이나 일의 올무에서 벗어나고 이때쯤 부모는 돌아가시고 자식들은 결혼해서 독립해요. 죽을 때까지 노욕(老慾)을 붙잡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거개는 욕심을 버리게 되지요. 권세·명예·재물…

한 줌도 안되는 그 따위 너절한 것들에 욕심을 부려봤자 더 이상 가질 수 없고 그 모든 게 허망하다는 걸 깨닫기 때문이에요.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 제일 많이 나오는 말이 “욕심과 집착을 버려라”예요. 집착도 욕심이니까 결국 부처가 수행자들에게 던진 강력한 메시지는 ‘탈욕심’ 혹은 무욕이지요. 바그너의 말처럼 “모든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는 우리의 마지막 구원”이 아닐까요?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는 인생의 피크(절정)는 66~80세라고 했어요. 불멸의 업적을 남긴 사람들 중 60대가 35%, 70대가 23%, 80대 6%로 60대 이상이 전체의 64%가 된답니다. 흔히들 경기에 비유해서 60대를 하프타임이라고 하지요. 100세 시대에 인생의 전반전은 50대까지이고 70대 이후가 후반전이면 60대는 후반전을 준비하는 시기란 거죠.

어떤 작자가 60대를 뒷방 늙은이로 취급하고 고자처럼 쓸모없는 존재라고 말하면 난 화를 낼 거에요. 나도 젊을 적에는 누가 “인생은 60부터다”라고 하면 픽 웃어 버렸죠. 그건 노인들의 자기위안이거나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보니 늙을수록 삶은 더 풍요로워진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나이 들면서 생의 이면이 보이기 시작했고 세상을 보는 눈이 더 깊어지고 넓어졌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게 아니라, 좋은 포도주처럼 익어가는 것”이죠. 아아, 이제야 난 깨닫게 됐어요. 새벽보다 황혼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공자님은 “예순 살에는 귀로 들으면 족족 이해하게 됐다”고 해서 60을 이순(耳順)이라 했지요. 산전수전, 공중전, 지하전까지 다 겪어서 세상사에 통달하게 되니 “사리통달하면 심기화평(心氣和平)”은 당연지사죠. 이순을 절집 말로 하면 견성오도(見性悟道)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나이고 시쳇말로는 도사가 되는 연배에요.

174671_198915_0653.jpg
▲ 장일홍 극작가.
K형, 우리 인생의 절정은 헛되이 보내지 말자고요. 저녁 노을이 서녘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것처럼 우리의 말년을 휘황찬란하게 물들이며 살아봅시다. 걸을 수 있을 때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고, 아직은 오장육부가 튼튼하니 술도 양껏 마시면서 유유자적 강호지락을 즐길 수 있으니 이런 호시절이 언제 있었나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롭고,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우아하게 살면서 매일 매일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보내고 있으니 하느님께 엎드려 절을 올립니다. 감사, 감사… 내 잔이 넘치나이다!! / 장일홍 극작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