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경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질문이다. 21일자 블룸버그 뉴스는 일본중앙은행 간부 출신으로 현재 다국적 투자은행인 크레딧스위스 금융그룹의 이코노미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히로미치 시라카와의 기발한 아이디어를 소개했다. 기업이 사내에 유보하고 있는 현금에 대해 과세를 하여 이들이 그 돈으로 투자 또는 임금인상을 하도록 유도하라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미국이나 유럽보다 더 강력한 양적완화를 실시했는데 그것의 거의 유일한 성과는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경쟁력을 높인 것이었고 이에 따라 수출기업들이 큰 덕을 보았다. 이들의 현금유보에 2%의 세금을 매길 경우 기업의 지출이 늘어나 일본 GDP가 0.9% 추가 성장할 것이라는 계산서까지 제시했다. 재정적자 개선이라는 부수적인 효과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런 맹랑한 발상이 실행에 옮겨 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고 다른 나라들에서 시도했던 몇 가지 유사한 발상들이 기대했던 결과를 얻었는지 잠시 돌이켜 보자.

우선 금리 인하. 기업의 투자 결정에 있어 금리가 중요한 한 변수임은 사실이다. 그러나 차입금리를 낮추면 돈을 더 빌려서 장비도 사고 공장도 짓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일반론에 불과하다. 기존 공장들이 놀고 있고 그 속의 장비가 녹슬고 있는데 돈이 싸다고 이것에 더 투자하겠는가? 많은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두고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는데 싼 금리가 있으니 돈을 더 빌리라고 말하는 것이 가당한가? 돈을 깔고 앉아 있는 기업들의 다른 한편에는 돈은 절실하지만 은행이 요구하는 신용등급도, 이를 보완할 물적 담보도 없어 은행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수많은 중소 내지 영세기업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금리가 높을 때나 낮을 때나, 그리고 금리가 마이너스일 때도 사정은 변하지 않았다.

정부의 시장개입이 실패한 사례들

금리가 낮아지면 모아놓은 저축으로 노후를 지탱하려 계획했던 은퇴자들은 지갑을 더 잠그고 열지 않는다. 저금리가 기업의 투자지출과 가계의 소비지출을 늘일 것이라는 기대는 망상으로 판명되고 있다.

다음,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한 양적완화는 어땠는가? 홍콩대와 중국 청화대에서 가르치고 있는 앤드류 셩(Andrew Sheng) 교수가 26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07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영국, 일본 및 유로존의 중앙은행들이 찍어낸 돈은 총 7조2000억달러에 달하고 이로 인한 통화량 증가는 약 9조달러로 추정되는데 이 중에서 민간부문에게 융자된 금액은 1조8000억에 그쳤다. 나머지는 금융자산의 신규취득 또는 기존자산의 가격을 인상시키는 데 기여했을 뿐이어서 양적완화가 기대했던 경기부양 효과는 극히 미미했다. 돈 풍년으로 생긴 자산가격의 거품이 영구히 지속되지 않는 한 이것은 또 하나의 위기의 씨앗으로 남을 것이다.

브라질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가 한참 진행 중이다. 저변에 깔린 불만은 경제다. 브라질 경제가 어려워진 원인에 석유, 가스 및 광물 등 상품가격 변동을 빼놓을 수 없는데 2012년 이전의 상품시장의 호황에 브라질정부가 기여한 것이 별로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2013년 이후의 세계 상품가격 폭락도 브라질정부가 책임질 일은 아니다.

2003년 집권한 '룰라 다 시우바' 전 대통령과 그가 속한 노동자당은 풍족한 재정을 배경으로 시장경제에 너무 깊게 개입했다. 공공요금을 대폭 깎아주고 개인과 기업에게 각종 보조금을 늘렸는데 이러한 정책은 같은 당의 후임 대통령에게 승계되었다. 그리고 경제상황이 악화된 이후에도 수정되지 않았다. 거기에 부패와 뇌물, 재정적자 은폐까지 겹쳤다.

경제 대통령이 되겠다고?

경제 대통령이 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대통령은 경제를 너무 좌지우지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부가 경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대답은 의외로 간명하다. 민간부문이 할 수 없는 일을 맡아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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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
국방과 치안, 도로, 교통 등 사회간접 자본의 공급, 환경 보호, 사회적 약자의 구제, 이런 공공재(公共財)들은 개인이나 기업이 맡아서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앞서 가던 선진국들이 겉으로는 시장기능을 철저히 존중하자는 신 자유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실제로는 전례 없는 규모로 화폐금융시장에 개입을 자행하고 있다. 브라질과 다를 게 무엇인가? 정치가 자기 할 일에만 충실하면 안 되는 것인가? /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

* 이 글은 <내일신문> 4월 27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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