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6) 오리 두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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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밭에 키우는 오리 두 마리. 오일장 출신이다. ⓒ 김연미

귤나무 아래 실뭉치 두개가 굴러온다. 밭에 깔아준 지푸라기 색깔과 비슷한 두 마리 오리다. 짧은 다리를  빨리 움직일수록 좌우로 흔들리는 엉덩이의 반경이 몸 전체를 흔든다. 마음이 급했는지 양 날개를 벌려 속도를 가속시켜 보려 하지만 펼친 날개 역시 몸통을 감당하기엔 터무니없이 작다. 허리춤에 살짝 손 하나 얹은 모양으로 붙어 있는 날개는 아직 깃털조차 제대로 자리잡지 못했다. 파다닥 거리는 소리만 요란할 뿐  속도에 변화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들은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려온다.

그들의 달리기는 나를 일미터쯤 남겨두고 문득 멈춰 섰다. 다른 생각이 났다는 듯 방향을 바꾼다. 그리곤 주변을 둘러본다. 마치 밀당을 하던 남녀가 상대방에게 속마음을 들키기 직전 딴전을 피는 것처럼. 이제는 다 삭아버린 마른 짚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기웃기웃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제 동료는 어디쯤 있나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 옆에 저와 똑 같은 자세로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오리 곁으로 걸음을 옮긴다. 천천히 주변을 맴돌며 다음 행동을 판단하는 모양새다. 몇 번 먹이를 주었다고는 하나 아직 나를 다 믿지는 않겠다는 의지의 다른 표현이리라. 주인의 발자국 소리가 난 후 맛있는 먹이가 생긴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오리들은 이렇게 문 여는 소리가 들리기 무섭게 달려오는 것이다.
 
오일장에서 오리 두 마리를 사다 놓은 지 보름쯤 되었다. 한 마리에 칠천원이라는 주인 여자의 얘기를 듣고도 태연히 오천원 짜리 한 장을 건네고 잔돈을 달라며 손을 내밀었었다. 자연스러움과 당당함으로 무장한 내 얼굴에 혼란스러운 주인 여자는 얼마를 거슬러 줘야하는 지 한 참을 망설였다. 그리고 내가 얼마짜리를 건네주었는지를 다시 물었다. “그냥 삼천 육백원만 주시면 되요”  주인여자의 혼란스런 머리 속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는 여전히 당당하게 대답한다. 다시 복잡해지는 얼굴. 옆에서 나와 비슷한 이유로 오리 다섯 마리를 고르시던 아저씨가 중재에 나서기 전까지 우리 둘은 서로 그렇게 엇갈린 계산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이런 사소한 것들마저도 신경을 놓으면 안된다는 것.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며 하나의 해프닝이었다고 치부해 버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그 해프닝 앞에 시원히 웃을 수 없었다. 종종 그러기 때문이다.
 
그런 씁쓸함과 같이 들여온 오리는 하우스 안에서 벌레를 잡아먹으며 살았다. 특히 나무 꼭대기까지 기어 올라가서 열매의 모양을 이상하게 만드는 달팽이는 오리의 주된 먹이였다. 달팽이도 잡아먹고, 풀도 뜯어먹고, 농부의 손이 미치지 못하는 아주 작지만 중요한 것들을 오리들은 해결해 준단다. 아무 것도 모르는 오리들을 이용해 내 이득을 극대화시키는 것이 처음엔 내키지 않았다.

그러나 좋은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농부가 내미는 손에 한계가 있어서는 안된다. 그게 프로농부의 지름길. 처음 접하는 비닐하우스에서 그나마 덜 외롭고 서로 의지가 되라고 두 마리를 골랐다. 이왕이면 암수 한 쌍이었으면 좋겠다고 했을 때 주인여자는 어림없다는 표정이었다. 오리는 커봐야 암수를 구별할 수 있어서 운에 맡기는 수밖에 없단다. 이해하기엔 좀 애매했지만 손에 잡히는 대로 상자에 옮겨 놓는 주인 여자의 손아귀를 그냥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게 사실이 아니어도 반박할만한 근거도 없었다.
 
한참 한라봉 꽃을 따다 봤더니 오리 두 마리가 물통에 들어가 놀고 있다. 물에서 노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고무대야에 물을 받아 놓았더니 그새 그 물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분명 아침에 새물을 받아놓았는데 녀석들은 흙탕물을 뒤집어쓰며 놀고 있다. 고무대야 가장자리에는 말할 것도 없고 반쯤 남은 물에 거짓말 좀 보태면 흙이 반이다. 그런대도 좋댄다.

짧은 날개를 퍼덕이고 고개를 물속으로 쳐박았다 솟구쳐 올리고 난리다. 검은 흙탕물이 오리 털 위로 줄줄 흐른다. 이런 지저분한 녀석들. 좀 깨끗하게 사용하면 안되냐. 고무대야의 물을 쏟아내고 새물을 받아준다. 투덜거리는 나보다 잘 놀고 있는데 왜 물을 함부로 쏟아버리냐는 오리들의 항의가 더 크다. 이 녀석들도 내가 어리숙하다는 걸 그새 눈치 챘나. / 김연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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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서귀포시 표선면 가마리에서 감귤 농사를 시작한 ‘초보 농부’인 그는 <제주의소리>에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를 통해 하루하루 직접 흙을 밟으며 겪은 일상의 경험들을 풀어놓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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