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희, 제주사름으로 살기] ③ 성공적인 제주 정착의 비결을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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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4월3일 찾은 비오는 평화기념관. ⓒ조남희
당신이 입도한지 이제 한 달쯤 되었지요. 
그것도 참 쉽지 않은 달, 4월에 제주로 왔네요.
제주4.3에 이어 세월호 사건이 있는 4월은 왠지 매일이 제삿날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입도하자마자 며칠 지나지 않아 4.3평화기념관을 찾은 것을 보고 참 잘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제주도민이 되어서 알게 되는 4.3의 무게는 여행자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니까요.

지난 4월 16일, 시청에서 있었던 세월호 추모행사의 전단지를 보고 다시 한 번 생각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2년 전 4월, 인천에서 제주로 오려 했지만 오지 못했던 배에는 단원고 학생들 외에도 우리처럼 짐을 싣고 제주에서 살기 위해 오던 분들이 있었지요. 제주에서 귤농사를 지으며 살기 위해 오던 그들은 9명의 미수습명단에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금악에 살 집을 마련해두고 제주로 넘어오는 중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분들은 그저 우리 이웃 중 하나가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작년에만 제주로 이주해왔다는 인구 10만 명 중의 하나로 말이죠.
4년 전, 차 한 대에 짐보다 생각을 더 많이 싣고 내가 이곳에 왔듯이, 그리고 당신이 얼마 전 그렇게 왔듯이 말입니다.

참 많은 이들이 제주에 살러 들어온다지만 정작 결심으로 옮기는 것은 사실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서울에서 제주로 살림살이를 옮기는 것부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은 겪어보아서 잘 알 테지요. 그렇게 힘들게 제주로 들어왔는데 오래지 않아 다시 떠나는 이들도 많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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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16일 제주에서 열린 세월호추모제. ⓒ조남희

어쩌다가 ‘육지것’소리를 듣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랍니다. 
사실 제주도는 물가도 싸지 않은 편이고, 임금수준도 상대적으로 좋지 않은 편입니다. 서울의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세련된 유흥가도 없지요.
나 또한 제주에 살고 있으면서도 제주로 오기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재삼 생각하기를 권하기도 합니다.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이 제주로의 이사에 큰 동기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하고 삶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왜 누군가는 다시 떠나고, 누군가는 정을 붙이고 살아가는 것일까요?

 ‘성공적인 정착’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내게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그럴 때마다 ‘성공적인 정착’이 무엇이냐고 되묻곤 합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성공적인 정착을 나는 하지 못했고,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습니다.
내가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몹시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문득 찾아올 때가 여전히 적지 않습니다. 육지에 있는 그리운 얼굴들이 마음을 힘들게 할 때도 많습니다.
길 위에 서 있는 여행자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서 서울로 오면서, 안정적으로 날던 비행기가 구름을 통과하는 순간 여지없이 불안하게 흔들려대더군요.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를 넘나들며, 아니 경계에 사는 듯 외지인으로서의 삶은 그렇게 사정없이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모적이었던 삶의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도록 마음을 먹게 해주었던 공간으로서 때마침 제주가 내게 존재해주었다는 것에 참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나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보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살 수 있게 해준 기회를 준 곳이라는 것에 감사하며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각자의 삶의 배경이 다르기에 각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가겠지만, 그래도 해주고 싶은 말들이 조금 있습니다.

삶의 속도를 이곳 제주에 맞춰 봅시다. 이 섬만큼 대한민국에서 정신없이 급변하는 곳도 없겠습니다마는, 그래도 이곳의 삶의 속도가 서울 같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당신이 보았을 때 답답하고 당장 바꾸어야 할 것 같은 것들이 적잖이 눈에 들어오겠지만, 그리 쉬운 일이 아니더군요. 사실 우리와 우리 이웃들은 당장 소화해야 될 것이 많아 체할 것 같은 상태이니 서로 등을 두들겨 주기로 합시다.

‘곱을 가르지’ 않고 살아가보도록 합시다. 여기서는 그렇게 표현을 합니다. 편을 가른다는 뜻이라고 해요. 
살다보면 생각보다 육지사람과 제주토박이를 가르고 구분 짓고 평가하고 하는 것을 보고 듣게 되는 것이 많지요. 
처음에는 그런 것이 눈과 귀에 많이 들어오겠지만, 살다보니 그런 구분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편가르기가 이 섬을 위해서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실제로 이곳의 부동산 문제를 비롯한 여러 중요한 문제들이 어느 한쪽에 기인한 것이라고 이제는 이야기 할 수 없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살고 있는 이상 책임이 있는 것은 우리 모두니까요.

우리가 사는 마을의 어느 담벼락에 ‘삶은 지속된다’라는 글귀가 커다랗게 써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그런 것을 그렇게 크게 붙여놓았을까 궁금해하면서 오가며 고개를 끄덕이곤 합니다. ‘삶은 지속된다’는 말은 제주말로 하면 ‘살암시민 살아진다’ 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긴 호흡으로, 제주에서의 삶을 잘 지속해봅시다. 
당신이 익숙해지지 않고 있는 제주의 바람도, 곧 익숙해질 겁니다. 뒤늦게나마 입도를 환영합니다. 당신의 제주 라이프를 응원합니다.

 조남희 시민기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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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년 넘게 쭉 서울에서만 살았다. 잘 나가는 직장, 꽤 많은 월급, 떠들썩한 도시의 삶은 그녀에게 허울 좋은 명함, ‘소맥’을 제조하는 기술, 만성적인 어깨 통증과 뱃살을 남겼다. 삶이 전혀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던 어느 날, 미치도록 좋아하던 제주로 왔다. 이곳에서라면 숨통이 트이고, ‘조남희’다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푸른 섬 제주에 정착한 지 4년이다. 제주살이에서 겪은 다사다난 좌충우돌 이야기를 ‘서울 처녀 제주 착륙기’라는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연재해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과 응원을 받았다. 셰어하우스 ‘오월이네 집’을 운영하기도 했다. 제주에서 살아보려는 이들과 ‘개념 있는’ 정착을 꿈꾼다. 일하고 글 쓰고 가끔 노래하며 살고 있다. '푸른섬 나의 삶' 저자, 제주행복나눔마트협동조합 기획팀장, 온라인쇼핑몰 베리제주 점장을 맡고 있다. 2016년 <제주의소리>를 통해 ‘조남희, 제주사름으로 살기’를 연재하고 있다. *'사름'은 사람이란 뜻의 제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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