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극장을 지켜야하는 이유] ③ 홍영주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옛 현대극장(제주극장) 매입 문제가 쉬이 해결되지 않을 조짐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지어진 이곳은 문화환경이 척박했던 제주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문화공간이었습니다. 그뿐인가요, 제주 근현대사가 스며든 의미 있는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보존이냐, 철거냐 운명의 기로에 놓인 옛 현대극장을 두고 제주 출신 영화인들이 목소리를 내는 이유입니다. 이번 차례는 프랑스 파리 8대학 영화과 박사 과정 수료하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 프로그래머와 전주국제영화제 사무국장을 지낸 홍영주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의 원고를 싣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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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영주 부산국제단편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제주극장이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고 한다. 제주극장은 1944년에 만들어진 도내 최초 영화상영관으로 알려져있으며, 해방 이후 좌우의 굵직한 집회들의 개최지로 활용되는 등 제주 현대사의 중요한 정치, 문화적 사건들을 경험한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이다. 

제주도는 건물의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여 이를 보존하고 의미 있게 활용해보고자 예산을 확보하고 관련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이 건물은 철거 또는 재건축을 해야 하는 안전 최하 등급인 ‘E’등급을 받은 상황이며, 토지 경계와 임대권 문제로 2건의 민사소송마저 진행되고 있어 제주도가 재건 사업을 추진하는 데 난항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와 유사한 문제들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산을 지켜내며 새롭게 가치를 부여한 몇 몇 도시들의 사례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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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파리의 룩소 극장.
우선 1921년 건립되어 한 때 호황을 누리다 1988년에 폐관된 프랑스 파리의 룩소 Le LUXOR 극장이 이 경우에 해당될 텐데, 이 극장은 1981년에 문화 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파리시는 2003년에 지역 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여 이 극장을 인수해 대대적인 내부공사를 거쳐 민간사업자에게 운영을 맡기며 새롭게 문을 열게 했다. 그 후 이 극장은 예술영화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고전영화와 다양한 토론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면서 현재 그 지역의 문화 예술의 구심점으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올 해 4월에 파리시는 VOD와 인터넷의 발달로 개인관람형태가 늘어나면서 점점 영화관을 찾는 관객이 줄어들고 있는 현 시점에서 영화 문화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지역의 36개의 예술영화전용관을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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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리옹의 라 푸르미.
프랑스의 또 다른 도시, 리옹시는 1914년 개관 후 리옹의 극장문화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한 영화관 ‘라 푸르미(La Fourmi, 개미)’의 재개관 사업을 지원했다. 34석·39석·63석 규모의 초소형 영화관으로 재개관한 ‘라 푸르미’는 신규 개봉 영화, 장기상영작, 디지털 필름으로 복원된 고전영화 등을 상영하며, 오전 시간에는 론알프주의 공공문화정책의 하나로 유아 및 초중고 학생들의 단체관람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사업은 시 당국이 직접 추진하거나 공적자금을 지원하지 않고 영리법인 ‘시네마 뤼미에르’를 설립해서 인수 작업을 추진한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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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완 타이페이시의 홍루극장.
또한 타이완의 타이베이시는 도심재생활성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1908년 건립된 홍루극장을 2007년에 매입해 극장 및 예술가들의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면서 지역의 랜드마크로 만들어냈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제주극장은 철거되느냐 보존되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물론 제주극장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넘어야 할 산들이 많다. 또한 제주도에는 이 문제 이외에도 당장 해결해야 될 시급한 현안들도 산재해 있을 것이다. 최근 우리는 서울에서 도시 재개발이라는 미명하에 단성사, 국도극장, 스카라극장이 차례대로 철거되어 사라지는 것을 목격했다. 게다가 단성사는 한국 최초의 상설 영화관이었다. 

제주시에서 영화를 다루는 문화적 상황은 더욱 더 암울하게만 보인다. 옛 코리아극장을 리모델링해 운영하고 있는 제주영화문화예술센터를 제외하고는 과거의 역사와 기억들을 가진 대부분의 극장들은 이미 사라졌고, 이제 획일화된 체인형 멀티플렉스 영화관만이 존재한다. 코리아극장 역시 매각이 돼 그 마저도 존재 여부가 불확실한 실정이다.

경제정책이 항상 문화정책에 우선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선 도시의 사례들이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은 문화와 예술이 또 다른 방식으로 지역에 활기를 불어 넣으면서 새로운 경제 가치를 창출해 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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