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먹고 자라는 식물원] 등심붓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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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심붓꽃. ⓒ 고봉선

내게는 우렁각시 손이 하나 더 있지
벌나비와 종일토록 마당을 맴돌다가
구십 줄 다다른 당신 내리사랑 피어나

볕이 들면 얼굴 펴고 흐린 날은 저도 아파
꽃잎조차 펴지 못해 굽은 허리 두들기며
저물녘 쌀을 퍼내어 치대기는 손끝에

붓끝으로 쓰지 못한 당신의 마음결이
전기밥솥 그 안에서 밥알로 날 반기시네
등신아 이제 알았니, 죽어 여한 없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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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심붓꽃. ⓒ 고봉선

해마다 5월이면 전령인 듯 내 집 마당에선 등심붓꽃이 피어난다. 뭘허자고 허드렁헌 검질덜만 주워다 심느냐고 타박하던 어머니께서도 이들이 피어난 걸 보면 흐뭇하신지 미소를 감추지 못하셨다. 그러나 작년 5월엔 어머니께서 이 꽃이 피는 걸 보지 못하셨다.

딸년 내외, 손주 녀석 모두 나가고 없는 텅 빈 집. 언제나 어머니께선 굽은 허리로 혼자 집을 지키셨다. 종일토록 그렇게 지내시다가 저물녘이면 빨래를 걷어 개키고 쌀을 씻어 안치셨다.

내리사랑이 무엇이기에, 굽은 허리 마다하고 윤기 자르르 흐르는 밥알로 나를 반기시던 어머니. 그러던 어머니께서 이젠 아이가 되고 난 보호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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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심붓꽃. ⓒ 고봉선

딱 일 년. 밥은 소화가 안 되어 죽으로만 연명하고 계시다. 혹시나 영양이 결핍되면 어쩌나, 야채며 등등 갖은 재료로 딴엔 영양죽이랍시고 챙기지만 언제나 마음이 아프다.

올해도 5월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마당 역시 등심붓꽃으로 가득찼다.
지난 해 배수로 공사로 잔디가 패여, 이봄에 예초 작업을 했음에도 삐죽삐죽 잡초들이 자랐다. 그래도 내눈엔 예쁘기만 하다.

어쨌든, 봄은 내 눈을 즐겁게 하고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아침이면 하늘에서 별들이 내려와 소꿉장난을 하다가 밤이 되면 다시 밤하늘로 올라가는 것은 아닐까.

마당 여기저기 잔디 위에 피어난 꽃들이 때론 낮별이 되어 때론 붓끝이 되어 저들만의 언어를 주고받는다. / 고봉선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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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심붓꽃. ⓒ 고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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