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극장을 지켜야하는 이유] (4) 김태일 제주대 교수

옛 현대극장(제주극장) 매입 문제가 쉬이 해결되지 않을 조짐입니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대 지어진 이곳은 문화환경이 척박했던 제주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문화공간이었습니다. 그뿐인가요, 제주 근현대사가 스며든 의미 있는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보존이냐, 철거냐 운명의 기로에 놓인 옛 현대극장을 두고 제주 출신 영화인들이 목소리를 내는 이유입니다. 이번 차례는 영화인은 아니지만 옛 현대극장(제주극장)의 건축적 의의를 짚고자 김태일 제주대 교수의 원고를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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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일 제주대 교수. ⓒ제주의소리
건축문화는 눈에 보이는 실체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살아있는 실물의 모습과 촉감, 그리고 공간적인 분위기로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건축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건축이 존재할 수 있는(혹은 존재할 수밖에 없는) 측면중의 하나가 구조체라는 인식과 실물의 모습을 이루는 물체 즉 구조체에 의해 구체화되어진 공간을 건축으로 인식하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공간은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거나 사회적 수요에 대응해야 할 필요에 의해 건축의 기능을 실현가능하게 하는 것이 공간이다. 따라서 상징적인 의미와 사회적 요구가 변화해 가면 공간 그 자체는 남게 되거나 새로운 의미와 요구에 따라 전화(轉化)하게 된다. 이에 대응하지 못하게 되면 소멸(消滅)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공간만이 건축은 아니다. 인간의 생활, 사회생활 등을 지탱하는 기반으로서의 공간과 그것에 부속하는 기능, 그 공간을 지상에 구체화해 정착하게 하는 물체로서의 건축물이 있는 것이다. 건축물이 내구성을 상실하게 되면 그것을 기반으로 하는 공간도 소멸할 수밖에 없다. 특히, 역사성과 기념비적인 성격이 강한 건축물일수록 구조체의 내구성이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조체가 노쇠한 건축은 사라질 것 같으면서도 그렇지도 않은 속성도 가지고 있다. 건축에는 역사적인 각 시대의 사람들이 형성해온 양식, 사회적 요구에 의한 공간제작의 필연성과 형태, 그리고 기술이 함께 스며들어 있다. 

그러한 건축물이 집적되어 있는 곳이 역사도시이자 문화도시인 것이다. 도시는 우리들의 삶의 공간이며 그 곳에는 세월의 흐름에 살아왔던 사람들의 흔적들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고 그 흔적들의 축척으로 표출되는 것들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제주의 원도심은 탐라의 흔적뿐만 아니라 근대와 현대를 거치면서 크고 작은 역사적 흔적이 남아있다. 때로는 건축으로 때로는 장소로 제주의 역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일종의 타임캡슐과 같은 귀중한 역사문화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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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현대극장 건물. ⓒ김태일
옛 현대극장은 그 대표적인 근대건축물중의 하나이다. 옛 현대극장은 1940년대 초 가설극장으로 시작돼 1943년 연극영화 및 부대사업을 하기 위한 기업으로 조일구락부(朝日俱樂部, 구락부는 ‘클럽’을 가리키는 일본식 영어 표현)라는 이름으로 일본인 추원순장(萩元駨藏)이 설립해 오현고 설립자인 황순하가 이사를 맡았다. 

1943년 개장 초기에는 의자 없이 가마니를 깔고 공연을 관람했다. 유랑극단, 악극단, 연극, 학교의 예술제 공연의 무대이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는 이승만 정권의 출범에 따른 좌익계열 진영들이 연대조직을 만들어졌는데 제주도에서도 1947년 2월23일 ‘제주도 민주주의 민족전선’이라는 정치집단이 결성되었는데 그 장소가 조일구락부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후에는 ‘조선민주청년동맹’도 조일구락부에서 창립대회를 가지기도 하였는데 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이른바 정치세력이 집결되었던 중요장소로도 활용되기도 하였다. 특히 4․3사건 당시 악명 높았던 ‘서북청년회 제주지부’ 역시 조일구락부에서 발족식을 가지는 등 좌익과 우익 단체들의 중요한 거점 활동 장소였던 점에서 제주 근대사, 정치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장소라 할 수 있다.

1948년 10월17일에 좌석 375석 입석 100석(총 475석)규모로 제주극장(대표 김진수)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탄생하게 되었다. 기존의 가설건축물시대를 벗어나 극장다운 건축물을 건립하여 운영하게 된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3년 12월 20일에 영화전용관(대표 이인구. 전무 김진수)으로 개관해 운영되다 1970년대 현대극장으로 명칭을 변경하게 되었다. 현재의 건축물은 1970년대 현대극장으로 명칭변경과 아울러 새롭게 건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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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물 2층 내부 모습. 계단식 객석부분이 보이며 1층과 오픈된 2층객석앞부분을 막아 수납공간으로 사용했다. ⓒ김태일

옛 현대극장은 제주시민들에게 영화를 통해 인생사의 고달픔을 달래주었던 중요한 문화공간이었지만 경영난을 겪다가 1987년 1월30일 마지막 무성영화를 상영하고 폐업하게 되었다. 개장 43년 만이었다. 현재 인쇄소로 사용되고 있으나 내부는 마감 재료와 난간, 공간 등이 여전히 당시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고 과거 화려했던 문화공간의 흔적을 잘 보여주듯이 정면 좌측에는 매표소의 창구가 잘 남아있기도 하다. 

옛 현대극장은 제주 최초의 극장이자 제주도민의 문화공간으로 다양한 역할을 하였던 대표적인 문화시설중의 하나였다. 동시에 정치적 이념공간으로서의 가치도 갖고 있다. 즉 근대건축물로써 문화재적 가치보다는 제주의 근현대사에 있어서 사회변화의 큰 획을 그었던 활동의 중심지, 즉 장소적 가치성을 갖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구 현대극장은 제주도 최초의 공연장이자 무성영화시대의 마지막 극장이라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있는 옛 현대극장이 철거될 위기에 놓여있다. 옛 제주대학교 본관, 옛 제주시청사 등 근대건축물이 철거되면서 제주 근대사의 흔적 소실과 장소성의 훼손 등으로 이어져 더욱더 문화적 빈곤의 도시가 되어버렸다. 옛 현대극장 역시 철거보다는 조사 작업이 이루어져 자료보완과 철저한 검증을 통해 문화재로 등록 보존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단순한 보존이 아니라 역사적 상징의 교육장으로 관광객과 제주도민들에게도 홍보되어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행정당국의 지원과 관심이 더욱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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