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8) 보리콩의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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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멘트 길과 돌담 사이에서 자라난 보리콩. ⓒ 김연미

과수원 입구 길가에서 자라는 보리콩. 동생이 준 씨앗을 심어놓고 저게 언제 싹이 나지, 싹이 나긴 할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 지 일주일. 싹이 나왔다. 통통한 초록빛깔 쌍떡잎 두 개가 아침이슬을 머금고 말끔히 나를 올려다보는 그런 모습과는 거리가 한참 먼. 찢기고, 몽그라지고, 이파리인지 줄기인지 구분이 안 되는 식물체들이 땅을 붙잡고 바짝 웅크려 있었다.

이게 뭐야. 얘가 콩이야? 세상의 모든 것들의 유아기는 다 곱고 귀여운 게 아니었어? 하얀 쌀밥 위에서 선명한 초록색 자태를 뽐내던 보리콩. 그 싹과의 첫 대면은 그렇게 놀람과 의구심을 안겨주었다. 보리콩 싹이 원래 그런 모습인지, 아니면 흙 반 자갈 반, 그리고 시멘트 길과 돌담사이에 폭 30센티가 안 되는 곳에 뿌리를 내린 환경 탓이었는지 아직 나는 알 수 없다. 하긴 보리파종과 같은 시기에 파종하여 보리수확과 같이 수확이 된다 해서 제주에서는 보리콩이라 하지만, 표준어로는 완두콩이라 불리는 것도 최근에야 알았다. 상대를 제대로 알려고 하는 대신 의심의 눈초리만 더 키우고 있었다. 얘 몸에서 콩이 열린다고?

농촌을 농촌답게 만드는 것들 중 하나, 부지런한 농부들이 길가의 공터를 이용해 콩이나 팥, 배추 등을 심어 놓은 장면이다. 오가며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저렇게 길가에 콩을 심어보리라 했었다. 잡초 하나 없이 깔끔한 땅 위에 오로지 콩들만 여유롭게 바람에 흔들거리는 모습. 정복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도열해 있는 젊은 군인들이 저렇게 아름다울까. 나도 그들의 사열을 받으며 아침저녁마다 출퇴근을 해 보리라 했었다.

그런데, ‘부지런한’의 의미를 내가 너무 우습게 봤다. 잡초는 엄청나게 많이, 빨리, 올라왔다. 땅에 웅크려 있는 보리콩의 싹은 일어설 줄을 모르는데 주변의 잡초는 돌아서면 이만큼 자라 있었다. 호미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땅이어서 맨 손으로 잡초를 뽑아냈다. 내가 본 주변의 그 길가처럼 말끔하게 하려면 아마 아침저녁마다 잡초를 뽑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용을 쓰면서 잡초를 뽑고 있는 데도 보리콩은 땅 위에서 뒹굴뒹굴 굴러다니며 빈둥대고 있었다.

이파리와 줄기가 한 데 엉켜 바람 불면 바람 부는 대로, 내가 손으로 밀치면 밀치는 대로 굴러다녔다. 뿌리가 땅에 제대로 박혀 있는 것인지 가끔 의심을 해야 했다. 4월에 접어들면서 주위에서는 한바탕 꽃을 피우느라 난리도 아닌데, 아니, 꽃을 피웠다가 다 지고 있는데, 몸체도 커지고 그랬으면 이제 저도 꽃 피울 생각 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열매도 맺고 그럴 텐데 도대체 꽃 피울 생각은 하지도 않고 여전히 뒹굴거리기만 하니, 혹시 얘는 땅 속에다 열매를 키우는 앤가? 땅콩처럼?

그랬다. 기대는 실망을 낳고, 실망은 의심을 낳고, 의심은 조바심을 낳고, 조바심은 다시 의심을 낳아 안 그래도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느라 힘든 보리콩을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모두 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쌀나무’ 조차 구분 못하는 도시 태생은 결코 아니다. 이래봬도 ‘산디 밭에 검질’을 매어본 사람인데, 그런데도 그랬다.

남들 다 꽃 피고 난 뒤 힘겹게 보리콩 꽃이 피었다. 방풍림 아래 자리 잡은 탓에 햇빛이 부족해서 늦었던 것 같았다. 하얀 나비가 앉은 것처럼 초록색 사이사이 하얀색 꽃을 피운 보리콩은 아름다웠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줄기와 이파리들이 제 동료들과 스크럼 짜듯 어깨를 걸고 있어 더 이상 바람에도 굴러다니지 않았다. 하얀 나비들이 하나 둘 날아가고 그 자리마다 작은 콩꼬투리가 남았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납작하던 꼬투리가 날마다 날마다 부풀어 올랐다. 햇빛을 머금고, 흙의 양분을 빨아올리고, 바람의 숨을 한데 모아 보리콩은 살뜰하게 열매를 키워내고 있었다.

수확은 언제 하지? 콩꼬투리에 콩알의 모양새가 잡히기 시작하자 보리콩 앞에 앉아서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기어이 통통한 열매 몇 개를 따냈다. 콩꼬투리 째 삶아 먹어보고 싶었다. 손가락 사이에서 오돌토돌하게 만져지는 콩알의 느낌이 재미있었다. 제법 많이 자란 것들만 골라 한 줌 정도 따고 집에 와서 삶았다. 쪄내야 하나, 처음부터 넣고 끓여야 하나. 고민하다 팔팔 끓는 물에 풍덩 넣고 데치듯 삶아 건져냈다. 물이 줄줄 흘렀다. 꼬투리에 손을 대자마자 흐물거리며 형체를 잃어버렸다. 너무 삶았나. 

그렇게 삶아낸 보리콩은 식구들 중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 나 혼자 식탁에 앉아 콩꼬투리를 깠다. 생각보다 알맹이는 작았다. 밥알보다 작은 초록색 알맹이가 하나나 둘 정도 껍질 안에 들어 있다가 미끄러져 나왔다. 껍질을 먹어야 하나, 알맹이를 먹어야 하나. 어디선가 여린 콩꼬투리를 통째로 이용해 요리하는 걸 본 것 같기도 한데... 입 안에서 잘게 부서지는 알맹이. 달콤하고, 비릿하고, 신선한 풀 냄새 같은 맛이 입안에 퍼진다. 맛있네... 빈 껍질 몇 개 쌓이고 있었지만 여전히 줄어들지 않는 삶은 콩꼬투리가 식탁에서 슬프게 식어가고 있었다. / 김연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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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서귀포시 표선면 가마리에서 감귤 농사를 시작한 ‘초보 농부’인 그는 <제주의소리>에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를 통해 하루하루 직접 흙을 밟으며 겪은 일상의 경험들을 풀어놓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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