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과 중국이 해상에서 영유권 분쟁으로 불편한 관계에 있는 시점에 미국 대통령은 이번 아시아 여러 정상과의 만남의 첫 기착지를 베트남으로 정하고 5월 23일 대 베트남 살상무기 판매금지를 풀었다.

슈퍼파워, 즉 패권국가(覇權國家)의 힘은 군사, 경제, 정치, 문화라는 네 개의 축으로 이루어진다. 이 중 문화부분을 하버드대학의 죠셉 나이(Joseph Nye)는 소프트 파워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프트파워란 무력과 같은 하드 파워가 아니라 신뢰와 소통을 통해 상대방을 설복시키는 힘을 말한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슈퍼파워로 행세하던 영국을 1956년 '수에즈 위기' 이후에는 아무도 슈퍼파워라고 부르지 않는다. 이집트 나세르 정권의 수에즈운하 국유화에 대응해 이스라엘을 앞세워 무력 개입했다가 미국과 소련으로부터 거꾸로 설복을 당해 군대를 철수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이어진 미국과 소련의 양대 슈퍼파워의 시대는 1991년 소련의 붕괴로 종식됐다. 그렇다면 미국 단독의 슈퍼파워 시대가 온 것인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우선 경제력을 보자. 현재 미국과 중국의 GDP 격차는 각각 18조 및 11.4조 달러로서 1.6배에 달하지만 미국이 연 2%. 중국이 연 6.5%의 속도로 상장을 거듭한다고 가정하면 2030년에 이르러 중국의 경제규모가 미국을 능가하게 된다.

소프트 파워는 어떤가? 8년 전 오바마 대통령을 탄생시킨 미국은 "이란이 주먹을 펴면 우리도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할 것이다"라고 말하며 무력의 힘에 더해 도덕적 힘까지 겸비하는 듯했다. 그러나 같은 시점에 발생한 서브프라임 금융위기는 이제껏 미국의 뒷덜미를 잡고 미국의 모양새를 구기고 있다. 경제력을 잃으면 소프트 파워도 잃는다.

경제력과 동행하는 소프트 파워

미국이 최근 도널드 트럼프라는 대통령후보를 배출한 것도 이변이 아니다. 4년 전 미국 대선에서도 미트 롬니 후보는 오바마의 소프트 파워를 폄하하여 "사과는 없다"라고 말하면서 편협한 미국 우월주의를 드러냈었다.

국제 무대에서도 미국이 주도한 여러 프로젝트들은 성과가 변변치 못하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작년 10월 12개국의 서명을 받는 데까지는 성공했으나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와 인도네시아, 태국 등이 빠졌다.

반면 TPP와 따로 추진되고 있는 "역내 포괄적 경제동반자협정(RCEP)"에는 아세안 10개국에 중국 한국 일본을 추가한 아세안 플러스 쓰리(APT), 그리고 인도 호주 뉴질랜드까지 추가해 도합 16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중국이 주도해온 아시아 인프라투자은행(AIIB)은 도합 50개 창립회원국이 출자해 작년에 출범했다. 미국과 일본은 불참했고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국인 우리나라 영국 호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은 참여했다.

미국의 하드 파워는 어떤가? 중국이 남중국해 일대에서 벌이는 행보는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위압적이기까지 한 것이 사실이다. 남해구단선(南海九段線)이라는 선을 그어놓고 중국여권에 이것을 그려 넣었다. 9개의 직선 안쪽의 바다는 남중국해의 약 80%에 달하는 면적이다. 필리핀이나 베트남 출입국관리소에서는 이러한 여권에 비자를 찍어주면 그 지도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 될 것을 우려해 별도의 종이에 스탬프를 찍어주는 촌극을 벌이고 있다.

남해구단선 안에 위치한 남사군도(南沙群島; 스프래틀리제도), 서사군도((西沙群島, 파라셀제도) 등은 이름이 말하듯이 주로 모래 섬이나 산호초들로 구성되어 있는 해역들이다. 수백개의 작은 섬들을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중국 등 여러나라들이 나누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다.

지금 중국은 그런 섬들을 이용해 총 7개의 장소에 인공섬을 구축하고 있다. 비행기 활주로를 포함한 각종 시설 및 군대를 배치하려는 것이다.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확대하는 거점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남중국해의 미-중 하드파워 대결

이를 저지하려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서는 항공방위구역설정으로 대응하려 하고 있다. 종국적으로 핵 보유국인 중국에 대한 미국의 선택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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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
서두에 언급한 설복(說服)이란 "알아듣도록 말해 수긍하게 만드는"것이다. 이제는 어느 슈퍼파워에 의한 일방적인 설복은 힘들게 되었다. 힘은 다원적으로 분산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상호 신뢰와 소통의 가치가 더욱 중요하게 되는 새로운 세계질서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 김국주 곶자왈공유화재단 이사장

* 이 글은 <내일신문> 5월 25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도 게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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