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일홍의 세상 사는 이야기 ㊴> 이스라엘·요르단·이탈리아 성지 순례기(聖地 巡禮記)

성경을 열 번 이상 읽었다는 사람을 만나면 부럽다 못해 존경스럽다. 나는 성경을 한 번 반, 곧 1.5번 밖에 읽지 못했지만 대강 감이 잡힌다. 구약은 이스라엘 민족의 장대한 역사가 펼쳐지는 ‘대하 드라마’이고, 신약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행적을 그린 ‘휴먼 드라마’이다.

오래 전부터 나는 그 드라마의 현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내가 제주화북교회(담임목사 강은철) 성지순례단의 일원이 된 건 이런 이유 때문이다. 2016.5.16.~5.25.까지 9박10일의 일정으로 17명의 순례자들은 인천공항을 떠나 장도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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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사역지인 갈리리호수에서의 선상예배 장면 ⓒ 장일홍

□ 이스라엘 최고의 휴양지, 가이샤라

순례 첫째 날, 우리는(로마 경유)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까지 장장 15시간을 비행하여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 출발지인 가이샤라로 향했다. 이 도시는 지중해를 낀 휴양지로 유대의 분봉왕 헤롯이 로마 황제(카이사르)에게 충성하기 위해 세운 곳인데, 수도의 예루살렘과 함께 유대의 중심도시였다고 한다. 콜로세움(원형극장)과 전차경기장의 흔적이 남아 있고(로마가 지배한 곳은 어디나 원형극장이 있다) 빌라도 총독의 집무실이 있었다는 유적(비석)이 보인다.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로마 황제의 밑구멍을 핥았던 헤롯, 아기 예수를 죽이려 했고, 세례 요한의 목을 딴 그 자의 망령이 떠도는 가이샤라. 우리가 사는 이 땅의 헤롯은 누구인가?

□ 세계 최초의 영양갱 성찬식

둘째 날, 갈릴리 호수에 배 띄우고 성찬식을 겸한 선상예배를 드렸다. 떡을 준비하지 못해서(가이드의 실수) 김복자 전도사가 가져온 영양갱으로 떡을 대신했다. 영양갱 성찬식은 아마 세계 최초(?)가 아닐까? 달콤한 영양갱과 달콤쌉싸레한 포도주는 궁합이 잘 맞는다. 아무쪼록 제주화북교회가 최초로 시도한 영양갱 성찬식이 세계만방의 교회로 전파되기를….

강은철 목사의 우렁찬 설교와 오승홍 장로의 간절한 기도가 끝나고, 확성기에서 찬송가가 울려퍼지자 사모(윤문선)와 권사·집사들(강애자, 이춘자, 오복란, 강복희, 조복자, 성순심)은 노래에 맞춰 춤추며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했다. 이 광경을 유심히 바라보던 오대은 장로의 한 마디. “이번 순례에서 가장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은 권사·집사님들입니다.”

배에서 내린 후, 나는 갈릴리 호수에 발을 담갔다. 남은 생애에 다시는 이곳에 올 수 없으리라는 슬픔이 가슴에 차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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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요사역지인 갈리리호수에서의 선상예배 장면 ⓒ 장일홍

□ 인생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라

셋째 날, 뱃산 국경으로 이동하여 요르단의 수도이자 창세기에 나오는 고대도시 암만에 도착했다. 암만에서 버스로 4시간 달려 페트라 유적지로 가는데 끝없는 황무지가 펼쳐진 광야를 지나게 된다. 한국인 순례자들에게 “이집트·요르단·이스라엘 성지 중 가장 은혜로운 곳은 어디냐?”는 설문에 ①시내山 ②갈릴리 바다 ③예루살렘 십자가의 길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목사·신부 등 성직자에게 묻자 이구동성으로 ‘광야’를 꼽았다.

왜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을 물도 식량도 부족한 광야에서 40년 동안이나 방황하게 한 걸까? 광야에서는 오로지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광야의 고난과 시련을 겪으면서 유대인들은 갈급하게 전능하신 신을 찾게 된다. 그때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 주셨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도 이 거친 인생 광야에서 하나님을 찾고 만나야 한다-이것이 그가 우리에게 주시는 절체절명의 지상 명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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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만에서 페트라로 향하는 길에 거쳐간 광야. 건너편에 사해가 보인다. ⓒ 장일홍

□ 신의 손으로 조각한 도시, 페트라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선정된 페트라는 거대한 바위로 둘러싸인 천연요새인데 1812년 오스트리아의 탐험가에 의해 발견돼 1986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페트라가 중요한 이유는 ①사도 바울의 첫 번째 선교지 ②아브라함의 약속이 이뤄진 곳 ③로마에 못지 않은 문명도시이기 때문. 아레타스왕의 신전에는 그리스·로마 신화가 벽화로 새겨졌고 산을 통째로 깎아 만든 세계 유일의 원형극장이 남아 있다.

곡괭이와 호미밖에 없던 그 옛날, 어떻게 이런 신전과 극장을 지었는지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나는 페트라를 ‘신의 손으로 조각한 도시’라고 명명했다.

□ 사해(死海)에 둥둥 뜨는 비곗덩어리들

넷째 날, 우리는 모세가 숨을 거둔 느보산에 올라 사해 건너편에 있는 가나안(이스라엘)을 조망하고 알렌비 국경으로 이동하여 다시 이스라엘로 들어갔다. 여리고 옆에 있는 사해는 누우면 몸이 둥둥 뜨는 바다. 지구상에서 염도가 가장 높은 바다로 눈에 짠물이 들어가니 어찌나 따가운지 혼났다. 환갑을 넘긴 권사가 사해 바닥 진흙을 비닐 봉투에 담아 호텔로 가지고 와서 며칠 동안 머드팩을 했다니 아름다워지려는 여자의 본능은 나이 불문이다.

요르단강물이 갈릴리 호수로 흘러가고 갈릴리 물이 사해로 흘러간다. 다른 곳은 물을 주고 받는데, 사해는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다. 흐르지 않으므로 그곳은 죽은 바다(死海)가 된다. 인생도 마찬가지. 나누고 베푸는 삶이 살아있는 거고 혼자 틀어쥐고 사는 사람은 살아도 죽은 인간(死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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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바타 왕국의 페트라신전. ⓒ 장일홍

□ ‘십자가의 길’에서 여덟 번 넘어진 불쌍한 예수

다섯째 날, 예수가 돌아가시기 전 피땀 흘리며 기도했던 겟세마네 동산에 세워진 기념교회에서 기도를 마친 우리는 ‘비아 돌로로사(고난의 길)’를 걸었다. ‘십자가의 길’, ‘골고다의 언덕’이라고도 불리는 이 길은 800미터에 달하는데, 예수는 로마 병정들에게 심하게 채찍질을 당하고나서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이 길을 가다가 여덟 번이나 넘어졌다고 한다. 100미터에 한 번 넘어진 셈인데 ‘사람의 아들’ 예수가 알마나 고통스러워 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현재 이 길은 아랍 상인들이 운영하는 잡화점으로 그득해서 순례자들과 상인들이 뒤섞인 돗데기 시장을 방불케 한다. 이곳에 무슨 십자가의 고난을 상징하는 평화와 경건함, 혹은 성스런 분위기나 은혜로운 정경이 있겠는가? 잡상인들의 호객 소리만 난무하는 이곳이 바로 ‘소돔의 거리’가 아니고 무엇이던가?

□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와 오드리 햅번

여섯째 날, 텔아비브를 출발하여 로마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콜로세움을 둘러봤다. 콜로세움은 영화 ‘스팔타쿠스’나 ‘글래디에이터’를 통해 익히 알고 있다. 최근 이탈리아 정부가 콜로세움 밑까지 지하철을 연결하려다 벽에 균열이 생겨 당장 공사를 중단했다고 한다. “콜로세움이 무너지면 로마가 망한다”는 것. 어느 나라나 관료들이란 무모한 발상을 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로마의 콜로세움은 기독교 박해 말기 때 50만 명의 기독교인들을 이곳에 몰아넣고 사자밥이 되게 했던 순교터다. 사자의 아가리 속에 들어가면서도 순교자들은 찬송가를 불렀다. 아! 불멸하라, 신앙인의 위대한 용기여!

세상에서 제일 깜찍한 여자, 오드리 햅번이 주연한 영화 ‘로마의 휴일’로 만인에게 알려진 트레비분수에 얽힌 일화 하나. 이 분수에 동전을 한 번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고 두 번 던지면 사랑이 이뤄지고 세 번 던지면 이별하게 된다는 속설이 있다.

20년 전에 나는 이 분수에 동전을 던졌고 다시 왔다.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던졌는데 죽기 전에 또 다시 행운이 찾아올까?

□ 폼페이의 사창가

일곱째 날, A·D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 대폭발로 사라져버린 도시 폼페이는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로 잘 알려졌다. 1861년 4~6미터 두께의 화산재로 뒤덮인 폼페이가 발굴되면서 2천년 전 고대인의 생활문화가 고스란히 드러나 이곳은 ‘고고학의 보고’가 되었다. 발굴 당시 2천구의 시신이 발견됐는데 주로 노약자와 노예들이었고 물건들은 모두 이탈리아 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건물 잔해의 벽체에 남자 거시기가 돌출된 곳은 사창가인데, 복도에는 춘화가 그려져 있다. 터어키에 있는 고대도시 코린토의 사창가는 입구에 발을 집어넣는 홈이 있는데, 발이 작은 자는 미성년자로 판단되어 출입이 금지되었다. 여기서는 ‘청소년 입장 불가’ 같은 제한은 없었던 듯하다. 성매매의 역사는 인간의 역사 만큼이나 유구한데 “언제나 남자들이 문제”라고 내 아내는 투덜거렸다.

□ 나폴리, 마피아의 소굴

나폴리는 기원 전 8세기 경, 이곳을 점령한 그리스 사람들이 세운 도시다. 한때(1880년대까지) ‘세계 3대 미항’으로 나폴리 항구를 꼽기도 했지만 다 옛날 얘기다. 현재 나폴리는 가난의 표상이고 이탈리아 반도 북쪽 사람들이 하는 가장 심한 욕은 “이 나폴리 놈의 새끼”다. 최근에는 마피아가 시칠리아에서 나폴리로 본거지를 옮겼고 그 최대 조직은 ‘카모라’다. 마피아 일제 소탕령을 내렸을 때 카모라 조직원 7천명이 일시에 검거된 적도 있다.

20년 전 내가 나폴리를 방문했을 때만 해도 봐줄 만 했는데, 이번에 보니 제주시 탑동만도 못하고 중문(서귀포)의 주상절리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나폴리를 보고나서 죽어라!”고 찬탄했지만 나는 말한다. “죽어도 나폴리는 가지 말아라!”

□ 바티칸시국-세계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큰 나라

마지막 날, 순례의 끝은 바티칸 시국. 면적은 여의도의 삼분의 이. 바티칸 시민권 소유자는 1천명(성직자)에 불과하다. 세계에서 가장 작지만 가장 영향력이 큰 나라인 까닭은 12억5천만 카톨릭 신자의 수장, 교황이 버티고 있기 때문.

바티칸의 중심은 세계 최대의 베드로 대성당과 세계 3대 박물관의 하나인 바티칸 박물관이다. 베드로 성당의 핵심은 피에타상과 베드로의 무덤이고 바티칸 박물관의 핵심은 시스틴성당인데 이곳에 미켈란젤로의 작품인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 있어서다.

‘피에타(자비)상’은 미켈란젤로의 걸작품으로 십자가에서 내려온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상의 조각이다. 천지 창조와 최후의 심판은 시스틴성당의 천장화인데, 피에타상과 천장화를 보기 위해 전 세계의 미술 애호가와 순례자들이 매일 2만명 이상 바티칸을 찾는다니 놀랍다.

사랑(Roma를 거꾸로 읽으면 아모르가 된다)의 도시, 로마를 떠나며 나는 중얼거렸다. “로마여, 안녕! 나를 위해 울지 말고 그대를 위해 웃어라!”

□ 순례를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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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일홍 극작가.
성지 순례의 뜻은 성경에 나오는 역사의 현장과 예수의 복음사역의 현장을 답사하는 것이다. 순례는 그 역사와 사역의 현장을 보고 믿음의 조상들과 예수의 고난에 동참하는 고행(苦行)이며, 어제의 죄와 허물을 벗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다짐하는 참회와 속죄의 수행(修行)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2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우리의 시간여행은 무의미하다. 해서, 나는 이제 가리라. 남은 여생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향하여 두려움 없이 가리라…. / 장일홍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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