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 (10) 너도나도 땅을 팔아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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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너편 과수원의 비닐하우스가 헐리고 있다. 원래 농사를 짓던 땅 주인은 높은 가격에 이 땅을 팔았다. ⓒ 김연미

비닐하우스 하나가 헐리고 있다. 몇 명의 일꾼들이 하루 종일 하우스 위에 올라가 비닐을 걷어내고 철 구조물을 해체하고 있다. 작년 겨울 냉해 피해를 입은 귤나무들이 발갛게 목숨을 다한 채 무심하게 서 있다. 그 옆으로 미처 다 뜯어내지 못한 비닐쪼가리가 바람이 하자는 대로 몸을 흔들다 말다 한다. 작년 겨울 풍성하게 열매를 매달았던 귤나무들이 불안한 미래를 짐작했음인지 꽃도 없이 표정을 지운 채 서 있다. 희망을 놓친 것들의 무기력감. 철구조물 해체되는 소리가 덜컥덜컥 가슴 안으로 떨어지고 있다.

우리 과수원 길 건너에 있는 오천평 규모의 한라봉 하우스 밭이 팔린 것은 작년 겨울쯤이라고 했다. 남편의 동네 선배였던 그 밭 주인은 우리가 농사를 짓겠다고 할 때부터 여러 가지 도움을 주신 분이셨다. 남편과 내가 과수원에서 일할 때마다 찾아와서 비료는 어떻게 해야 하고, 약은 어떻게 쳐야 하며, 꽃과 열매는 언제부터 따라는 등, 한라봉 재배와 판매까지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다. 늘 우리보다 먼저 밭에 나가 계셨고, 늘 우리보다 늦게 집으로 돌아가셨다.

벼락처럼 내리쳤던 신공항 예정부지 발표 후, 얼마 되지 않아 싱글벙글한 낯으로 우리가 일하는 과수원에 오신 그 분은 당신의 과수원을 팔았다고 자랑하셨다. 생각보다 서너 배 높은 가격에 팔았다는 목소리에는 기쁨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땅 판 돈으로 저 위에 좀 작은 땅 하나 사고, 제주시에 원룸 몇 개 사 놓았다며 이제 노후 생활은 걱정 없다고 하셨다. 그러셨군요. 잘 되었네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씁쓸한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더 이상 농사에 대한 조언을 들을 수 없다는 것보다도, 너도나도 땅을 팔아대는 현상에 이분도 동참을 하셨구나 하는 안타까움에서였다.

이미 이 동네에도 외지인 소유로 넘어간 밭이 부지기수다. 평당 백이십만원에 팔렸다는 우리 밭 남쪽 과수원도 올 봄에 비닐하우스를 다 해체해 놓았고, 그 동쪽 밭에는 리조트인지 펜션인지 공사가 한창이다. 농사를 짓던 땅들이 모두 건물 두어 채씩 짓고 앉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땅이 팔리면서 새로 지어진 집, 새로 포장된 도로, 동네는 깔끔하게 단장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런  동네모습이 결코 반갑지가 않다. 꼭 남의 집에 초대받지 않고 들어온 것처럼 기분이 어정쩡하다. 

제주도 전체가 공사중이라는 팻말을 붙일 만큼 곳곳에 건물을 짓고, 택지개발을 하고 있다. 그 공사의 주인은 대부분 외지인이거나 중국인들인 지금, 제주도 땅 소유주가 어떤 사람들인가에 대한 논의는 이미 유효기간이 지난 얘기인지도 모른다. 몇 십년간 정체되었던 제주도 인구가 급속히 늘어난다고 좋아했지만 정작 조상대대로 제주도민이었던 사람들은 땅을 팔고, 집을 팔고, 결국에는 외지로 나가야 될 판이다. 제주도에 고향을 두고 외지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다 노후에 고향에 내려와 살 계획을 가졌던 사람들이 그 사이 서울 땅값과 집값에 맞먹을 정도로 올라버린 제주도 부동산 가격에 내려와 살기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생겨난단다. 부모님이 물려주신 집이라도 한 칸 있는 사람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발길을 돌려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천정부지로 올라버린 땅값에 우리처럼 농사짓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땅이 없어 농사를 포기해야 할 판이다. 평당 십만원 이십만원이면 족하던 주변 땅값이 백만원을 주고도 사기가 어려우니, 설사 땅을 산다 하더라도 백만원 주고 산 땅에다 어떻게 농사를 짓는단 말인가. 수지가 안맞는 일이다. 어쩌면 신공항 예정부지 옆에서 농사를 짓고 살겠다는 우리 생각이 애초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

제주도의 농지를 다 없애가며 지어지는 건물들, 곶자왈을 훼손하면서 진행되는 택지개발과 도로건설. 늘 하는 얘기지만 누구를 위한 개발이고, 무엇을 위한 개발인지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는 개발정책들에서 우리는 위기감을 느낀다. 이러다가는 우리도 제주도를 떠나야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 내가 아니면 우리 아이들은 제주도에서 살아남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 쓸데없는 생각이라고 떨쳐버리고 싶지만 어딘지 간질간질한 가려움처럼 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초록색 귤나무 밭들이 하나 둘 하얀 건물들로 변해가고 그 건물들이 둘러싼 가운데 저 혼자 초록색을 유지하고 있는 우리 과수원. 키가 큰 건물들이 조그마한 우리 과수원을 위압적으로 노려보는 그림 한 장이 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 위에 덜컥덜컥 하우스 철구조물 떨어져 내리는 소리가 덧칠되고 있었다. / 김연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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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미 시인은 서귀포시 표선면 토산리 출신이다. 『연인』으로 등단했고 시집 『바다 쪽으로 피는 꽃』을 펴냈다. 2010년 제2회 역동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젊은시조문학회, 한국시조시인협회, 제주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서귀포시 표선면 가마리에서 감귤 농사를 시작한 ‘초보 농부’인 그는 <제주의소리>에 ‘어리숙한 농부의 농사일기’를 통해 하루하루 직접 흙을 밟으며 겪은 일상의 경험들을 풀어놓을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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